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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에드만〉 뜨거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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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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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내용 노출에 민감한 분이라면 '리뷰'라는 것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몇 주 전, 〈토니 에드만〉을 먼저 본 나의 선배는 영화의 내용을 대충 이야기 해 주었다. 시덥잖은 농담이나 해대는 귀찮은 아빠가 있는데, 어느 날 가짜이빨과 가발을 쓰고는 나타나 뜬금없이 "안녕하세요? 토니 에드만입니다?" 하는 거 아니겠어? 토니 에드만은 누군데요? 몰라. 그냥 토니 에드만이래. 근데 웃긴 게 이 딸도 지 아빠인 걸 분명히 아는데 그냥 남처럼 대하는 거야. 그래요? 코미디 영화인가?

코미디 영화인가? 하는 내 질문에 그 선배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 그런...가? 아무튼 영화가 묘해. 그런데 나는 마음에 들더라구. 칸 영화제에서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얻었다는 풍문도 풍문이었지만, 선배의 이 이야기를 듣고 극장에 가게 되었다. 기꺼이 웃어주겠다. 하는 심산으로 코미디 영화를 기대하며 앉아 있었다.

그러나 영화 시작 처음 5분 지점에서 내 짐작이 틀렸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이가 많이 들어 눈까지 멀어버린 반려견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빈프리트는 바보 같이 튀어나와(마치 심슨 가족의 스미더스의 입매를 연상케 하는) 웃기는 것을 의도하는 것처럼 보이는(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썼다) 가짜 이를 셔츠 주머니에 늘 소지하고 다니고 이유는 있었지만 어쨌든 해골분장을 한 채 동네를 그냥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영감이다. 그는 '유머'랍시고 이런저런 행동들을 하지만 그의 행동 때문에 즐겁게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개 놀라거나 할 뿐이다. 루마니아에서 회사를 다니는 딸 이네스는 그런 아버지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오랜만에 들른 집에서, 안 그래도 짧은 재회인데 그 짧은 시간이나마 더 줄이려고 전화 받는 척을 하다가 들키기도 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장난, 농담처럼 보이는 빈프리트의 행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연출에는 익살, 웃음기는 없다. 그는 왜 그러는 것일까? 문득문득 보이는 이네스의 눈물(그녀는 영화 통틀어 세 번 눈물을 흘린다. 그것도 대개 아버지의 장난이 진행되는 와중에.)은 왜 이다지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감을 전하는지.

기타노 다케시는 언젠가 가족에 대해 질문을 받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것" 〈토니 에드만〉은 마케팅 카피로 이 말을 가져다 썼다.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는 것 같기도 한데, 하여간 이 영화는 누가 누구를 가져다 버리거나, 뜨거운 가족애로 다함께 차차차하는 영화도 아니다. 가족을 사랑하자는 영화도 아니며, 혈연의 고리를 지우고 사회적 관계로 재정립하자는 영화도 아니다. 빈프리트의 '토니 에드만'이라는 얼터 에고를 내세운 일련의 장난들은 누군가에겐 그저 우스울 뿐인 농담이겠지만 이네스에게만은 절망의 끝에서 필사적으로 몸으로 남기는 유언에 가깝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가발과 가짜 이를 끼우고 거짓말을 하며 그녀 앞에 선다. 그 어느 것도 우습지 않고 짜증만 내던 그녀는, 문득 이 장난에 동조하기로 하고 장단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러자 눈물이 흐른다. "언제고 유머를 잃지 말거라"라고 말했던 아버지의 말이 와닿아서일까? 아니다. 결국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성공률에 상관없는 유머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빈프리트는 이제 너무 늙었다. 거대한 쇼핑몰도, 딸이 하는 일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자신이 선행이라고 여겼던 일이 결과적으로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곧 사라질 것이다. 토니 에드만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부활절 파티에 이네스를 데려가 노래를 하도록 만든다.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 사랑 중의 제일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 노래가, 토니 에드만의 장난과 유머를 통해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던 이네스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퇴장한다. 아마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노래를 시킨 부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해한 것 같다. 이내 곧 그녀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누가 보더라도 불가리아 인형을 뒤집어 쓴 빈프리트와 이네스가 조우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이 감동은 '화해'에서 오는 감동이 아니다. 빈프리트는 이제 거대한 인형탈과 털로 자신의 모든 것을 지웠다. 그때서야 이루어지는 그들의 포옹은, 아무리 혈연이라 하더라도 절대 섞일 수 없는 시대/세대의 간극과 개인으로서의 역사를 인정하고, 완벽한 개인으로서 분열/단절 '해야만'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이 주는 감정은 가족을 다룬 다른 영화들이 주는 것과는 그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따듯함이라는 형용사는 절대로 번지수가 틀린, 오히려 감옥을 벗어난 장기수가 느꼈을 첫 광명의 눈부심. 그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토니 에드만〉의 마지막 장면은 할머니의 장례식이 마무리 되고 아버지의 가짜 이를 끼우고 할머니의 모자를 쓴 이네스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겠다며 퇴장한 빈프리트는 돌아오지 않는다. 곧 모자를 벗고, 가짜 이를 빼고 혼자 서있는 이네스의 모습을 카메라는 오래 잡아 놓는다. 그리고 엔딩송이 흐른다. 노래의 가사는 빈프리트를 생각하게 한다.

THE CURE - PLAINSONG

당신이 말한대로 어둡고 비가 올 것 같아.
당신이 말한대로 마치 세상 끝에 있는 것처럼 바람은 거셌고
너무 추웠어, 마치 네가 죽고나서 잠깐 웃은 것처럼

당신이 말한대로 난 늙었고 고통스러워
당신이 말한대로 세계의 마지막처럼 다 망가져버렸어
너무 추웠어, 마치 네가 죽고나서 잠깐 웃은 것처럼
가끔 너는 내가 세상에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당신이 말한대로, 그게 내가 웃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