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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 아저씨들의 '아사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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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감독의 <아수라>가 개봉했다. 예고편이 공개 되었을 때부터 심상찮은 기운이 흘렀다. 오 때깔 좋은데? 감독의 말, "우리 시대 중년들이 다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시사회가 진행됐다. 반응은 갈렸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아재라는 말이 등장했다. 인상적이었던 멘트는 "사나이 픽쳐스 라더니 이런 피만 튀기는 영화를 만들어서 사나이 인건가요?" 라는 식의 비아냥이었다. 누군가는 갈데까지 간다는데에 점수를 주었다. 누군가는 세기만 할 뿐 맥락이 없다며 비난하였다.

내가 본 <아수라>는 정말 아저씨같은 영화였다. 아재라고 안했다. 아저씨라고 했다. 이 영화는 김성수 감독이 지금 사회에서 '사회인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인 캐릭터인 도경(정우성)은 시장(황정민)의 이복동생인 아내를 보필하느라 일에 말려든 것 같다.(정확한 언급은 없지만 그런 식으로 묘사된다.) 도경은 원래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정말 나쁜 놈인 시장 박성배가 시켜서 그랬다고 한다.

선모(주지훈)은 순진한 형사였다. 도경의 일이 꼬이면서 도경 자신이 들어갔어야 할 시장의 수하에 선모가 들어가면서 그도 변한다. 최선을 다한다. 여기에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슬쩍 들어온다. 김차인은 시장을 잡아들이고 싶은 남자다. 자신의 사수인 오부장검사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안다. 승진을 위해, 한도경을 잡아다가 족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누아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까? 화면 어둡고 남자들 나오면 다 누아르인가? 아니다. 이 영화는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그냥 '막장'이다. 김성수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시대 중년남성들을 언급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묘사하고 싶었나보다. 그러나 이 영화엔 그런 애잔함이 없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는 '에이 알잖아'식의 아저씨같은 연출로 대충 뭉개고, 수 많은 욕이 동반된(그것도 매우 촌스러운. xxx 뱅뱅.. 같은 욕은 정말이지 30년만에 듣는거 같다) 극단적인 시퀀스들이 영화 전체를 이룬다.

이 영화는 정말 아저씨같다. 아저씨들은 맥락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에이 뭐 다 알면서 그래'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가 안 먹혀드는거 같으면 니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래! 라면서 혼을 낸다. 영화의 결말은 마치 아저씨에게 혼나는거 같다. (이 결말 때문에 영화의 호불호는 좀 갈릴 것이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그냥 불호에 그쳤을 것이다.) 이거봐! 이렇대두?!라는 소리가 들린다. 박성배는 한국영화에서 등장한 악한 중에 최악이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납득이 가는 캐릭터라면 나로선 주저없이 박성배를 지목할 것이다. 그만이 끝까지 갔고, 시작부터 끝까지 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징벌도 없다. (죽음을 징벌로 볼 것이냐는 논의의 여지가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감독은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이 <반성>이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진짜 그 제목으로 가려다가, 황정민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고 "이거 아수라판이네.." 하는 소리에 꽂혀 <아수라>로 변경했다고 한다.(아마 '아사리판'이라고 한걸 잘못들은게 아닐까 싶다) 차라리 <반성> 이었으면 어땠을까? 반성을 모르는 아저씨들이 남 얘기 다 무시하고 (한도경은 아내의 이야기를 꾸준히 무시했다. 그녀는 죽기직전 "오빠가 지은 죄 내가 받고 있는거야" 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그 동안 한도경이 한 짓을 그녀는 알고 있었으며 말리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지들 멋대로 하다가 걍 다 망한다. 이 영화엔 악인은 있지만 지옥은 없다. 지옥같은 상황은 펼쳐지지만 과정이 없다. 남는 것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힘이다. 오랜만에 한국 영화에 괴작이 나왔다.

P.S : 나는 이 영화를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끝까지 밀어부친 면은 내 취향 때문에 결말만은 신기했다고 하겠다. 이런 결말은, 최소한 한국영화에선 처음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