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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기억하십니까? - '스프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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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임종을 앞둔 청년이 있다. 그는 다니던 대학도 때려치우고 어머니의 곁에 있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도 사고로 여의고, 곧 암이 발병한 어머니였다. 가족을 사랑했던 청년은, 그럭저럭 밝았던 미래와 멀어지며 병든 어머니를 모시며 동네 펍의 셰프도 아니고 수셰프(sous-chef)를 목표로 살아간다. 그렇게 하루하루 위태로웠던 어느 날, 문득 생각난 농담을 던지던 어머니는 그 농담처럼 침대 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딱 한 명뿐인 망나니 친구놈과 장례를 치르고 나니 세상에 홀로 남은 외로움, 모든 게 망가졌다는 허탈감,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등이 쏟아지며 멘탈이 흔들리고 만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사람을 때린다. 자고 일어나니 겁이 나기 시작한 이 청년은 다시 한 번 문득, 더 이상 동네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가장 빠른 시간의 비행표를 끊어, 이탈리아로 떠난다.

아론 스캇 무어헤드와 저스틴 벤슨이 연출한 <스프링>은 뻔한 사랑이야기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도피한 곳에서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에반은 그조차도 감싸 안으며 함께하고자 한다. 정말 뻔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가진 '그녀'의 문제를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만난 루이스는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 문득 갑자기 집으로 떠나기도 하고, 집에서 주사기가 발견되기도 한다. 에반은 그녀를 그저 '마약쟁이 변덕녀'로 생각 했지만, 실상은 조금 더 심각하다. 루이스는,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존재. 영원불멸의 육체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뱀파이어나 불사신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녀는 며칠에 한 번씩 인간을 벗어난다. 어떨 땐 좀비 같은 몰골로, 어떨 땐 문어, 형용하기도 어려운 뭔가 괴이한 형체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진화와 이를 통한 작용을 연구하며 본인 신체를 알아가려하지만 아직 모자란 상태다. 그녀가 에반에게 접근한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임신을 해야 20대 인간의 형태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에반은 루이스를 놓지 않는다. 임신 할 때마다 다른 모습의 20대로 돌아올 거라고, 너는 늙지만 나는 매번 다른 외형으로 젊음을 유지할 거라는 그녀의 말도 소용없이 에반은 사랑한다고 말한다. 조금씩 마음을 여는 루이스는 가족들을 소개해주겠다며 어딘가로 그를 데려간다. 과연 그곳엔 가족이 있다. 일종의 무덤인 그곳에서 에반은 자신이 사랑하게 된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는다. 시간.

<스프링>은 흔하디 흔한 사랑이야기에 조금은 엄한 소재와 어쩌면 너무 큰 주제를 섞는다. 하지만 그것들의 무게 배분이 영화의 톤앤매너에 적절하게 조율되어 있다. 영원을 사는 사람은 사랑을 믿지 않고, 사랑을 믿는 이는 영원을 우습게 본다. 어쩌면 각자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이 교차는, 비록 현실적으로 비극적일지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영화 속에서 루이스는 사랑했던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에반은 상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정말 상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삶에서 사라져가며 남겼던 시시껄렁한 농담이 그에 대한 따스함으로 남은 것처럼, 그녀의 말 역시 같은 것이었을 테니까.

정말 별거 아닌 거 같은 이야기에, 시답지 않은 재주를 부린 것 같은데 묘하게 심금을 울리는 영화들이 있다. 내게는 <스프링>이 가장 최근에 그런 영화였다. 사랑하기 힘든 시대라고도 하고 살아가기가 너무도 어려운 시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 안에서 우리는 결국 사랑해야 할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