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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용하는 9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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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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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단지 읽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사실 희귀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책을 좋아하고 자신의 지갑을 열어서 돈을 주고 책을 산 사람들은 읽는 용도 이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책을 원래의 용도로 이용하지 않는 부류들은 돈을 주고 책을 사지 않는다. 책 읽기를 좋아하면서도 마치 사디스트처럼 책을 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만 들었지 내가 직접 본 일이 없으므로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읽기가 아닌 다른 용도로 책을 사용하는 경우는 아무도 읽을 가능성이 없는 낡은 책이나 졸업하기 전에 미처 팔지 못한 전공 관련 책 또는 부모님이 젊었을 때 읽었던 문학 전집 따위가 그 대상이 되겠다.

가장 전통적인, 읽기가 아닌 다른 용도의 책 사용 사례는 아마도 베개가 아닐까 싶다.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우겠다고 책을 문자 그대로 책을 한 쪽씩 씹어 먹는 영웅담이 유행했던 시절 사전을 베고 자면 사전 속의 영어 단어들이 자신의 뇌 속에 이식될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토테미즘을 신봉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 특이한 친구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은 두꺼운 책을 베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에게 흔히 회자하는 것처럼 두꺼운 책을 베개로 사용하는 것이 쾌적할까? 몇 번 시도해본 나로서는 책을 베개로 사용하는 것이 절대 쾌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목침에 익숙한 조선 시대 사람이 아니라면 돌처럼 딱딱하고 각진 책을 베고 잠들기 어렵다. 두꺼운 책은 차라리 벽돌에 가깝지 베개와는 거리가 멀다. 굳이 책을 베개로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 사람을 위해서 권하고 싶은 책은 '열린책들'의 <뿌쉬낀 전집>이다 물려 1,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뚱뚱보다. 또는 '책세상'에서 나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합본호도 매우 두꺼운 책이다. 무려 1,235페이지에 두께는 8.7cm이다.

그러나 이 두 책은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목침보다 더 두꺼워서 베개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더구나 이 두 책은 절판이 되어서 구하기도 어렵다. 특히 <뿌쉬낀 전집>의 경우 상태가 좋으면 20만 원 이상을 줘야 손에 넣을 수 있다. 최고급 럭셔리 베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나마 현실적인 베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책들이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많이 나온다. 이 출판사 사장이 벽돌 책 마니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베개로 쓰기에 적당한 두께의 책을 많이 낸다.

그래서 굳이 책을 베고 자고 싶다면 이 출판사의 책을 권한다.

다만 이 출판사의 출간 목록을 잠시라도 살펴보면 두께뿐만 아니라 내용도 매우 훌륭해서 베개로 쓰기엔 아까운 면이 있다. 굳이 수면을 위해서 책을 사용하고 싶다면 수면 안대의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권한다. 수면 안대라는 상품이 있지만, 책으로 대체하는 것이 더 안락하다. 수면 안대는 가볍고 수면에 들도록 최적화된 물건이지만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잠을 청해보라.

적당한 무게감과 방안에 자신만을 위한 또 하나의 방이 더 마련된 것 같은 포근함이 여러분들을 감싸준다. 수면안대 대용으로 두툼한 벽돌 책을 사용하는 바보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용도로는 얼굴이 좀 작은 편이라면 시집을, 얼굴이 크다면 화보나 얇은 잡지가 좋다. 새 책 냄새를 좋아한다면 새 책을 헌책 냄새를 좋아한다면 오래된 책을 사용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책을 수면제 대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수면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책이라는 수면제는 부작용이 전혀 없으니 이 또한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 두꺼운 책보다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처럼 얇은 책이 좋다. 난이도는 어려운 게 좋다. 책을 읽다가 졸음이 쏟아질 때 언제든 침대 주변에 대충 던져 놓아도 몸을 뒤척일 때 걸리적 거려서 수면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수면제용으로는 얇고 약간 난해한 책이 좋다는 게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성석제나 천명관 같은 작가의 책을 수면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책은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서 오히려 수면을 방해하는 역효과가 난다.

또 다른 전통적인 책의 다른 용도는 컵라면 뚜껑 누르기용이나 라면 냄비 받침대다. 내가 아는 한 컵라면 뚜껑 누르기용으로 책만큼 적당한 물건은 없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역시 두꺼운 책보다는 얇고 작은 시집이 좋다. 두꺼운 책을 사용하면 무게 중심이 조금이라도 맞추지 못하면 컵라면은 무게 중심을 잃고 여러분들은 아까운 라면을 버리게 될 뿐만 아니라 바닥에 라면을 쏟아져 청소까지 해야 한다.

라면 냄비용으로 책을 사용할 때는 두툼한 장정판을 권한다. 그래야 라면을 먹을 때 국물을 흘릴 확률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판형이 너무 큰 책은 권하지 않는다. 아이들이나 주의 깊지 못한 가족이 지나가다가 툭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의 사태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게다.

책을 인테리어로 사용할 때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콘셉트가 필요하다.

1970년대나 80년대에 유행하던 고풍스러운 고전문학 전집은 낡고 노년에게 맞는 콘셉트이지 요즘 시대에는 깔끔하고 세련된 책이 좋다. 고전문학 전집으로 도배를 하고 싶다면 '문학동네' 판 전집을 권한다. 인테리어용으로 내가 권하는 부류의 책은 뜻밖에 만화책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세련되고 질리지 않는 표지디자인을 자랑하는 만화책은 < H2 >와 <터치> 시리즈다.

요즘 젊은 처자들은 카페나 맛 집을 갈 때 콘셉트 샷을 찍기를 좋아한다. 음식 사진을 찍기 전에 수저를 들어서 음식의 모양새를 망가뜨리는 것은 마치 탕수육을 먹을 때 소스를 들이붓는 것과 진배없는 만행에 속한다. 단순히 음식 사진만 찍어서 SNS에 올리면 뭔가 심심한 느낌이 든다. 이런 콘셉트 촬영에 가장 애용되는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 1Q84 >다. 누구나 아는 책이고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작가라서 그런 모양이다. 자신이 트렌디하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의 사용법이다.

책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은둔자에게 좋은 방어벽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직장의 사무실에서 고개만 들면 직장상사와 눈이 마주치는 최악의 입지를 가진 사람에게 권한다. 책상 위에 책장이나 선반이 있다면 좋겠다. 고개를 들어도 상사와 눈이 마주치지 않는 높이로 책을 쌓아두면 여러 가지 이득이 생긴다. 우선 직장상사의 눈초리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잠깐 낮잠을 잘 때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또한, 아늑한 느낌이 들어서 마치 화장실에 있는 것 같은 안락함과 집중력이 보장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제목이 직장 상사에게 보이게끔 책등의 위치를 잘 배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직장상사의 시선에서 무슨 책인지가 확인이 안 되면 호기심이 많은 직장상사가 무슨 책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당신의 자리에 서성거릴 수 있으니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책의 장르도 중요하다. 실무에 관련된 책이라면 당신이 졸지에 그 실무에 매우 능통한 사람으로 낙인 찍혀 생각지도 못한 업무가 당신에게 배당될 수 있다. 제목만 봐도 책의 내용을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고전이 좋겠다. 그래야 무슨 책이냐며 당신의 자리에 일부러 다가와 책을 펼쳐서 당신의 평화를 방해하지 않고 당신이 매우 지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읽을 가능성이 없는 폐품 수준의 책들은 좀 더 가혹한 활용을 권한다.

두툼하고 하드커버를 가진 대학 시절의 전공 책들은 모니터 받침대로 사용하면 좋다. 매우 안정적으로 당신의 모니터와 시력을 지켜줄 것이다. 좀 더 창의적으로 책을 활용하고 싶다면 독서용 테이블을 만들 수도 있다. 책으로 4면을 같은 높이로 쌓고 다리미판을 올려보라. 당신의 취향과 독서 버릇 그리고 체격에 최적화된 독서대가 완성된다. 상황에 따라 높낮이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활용법의 또 다른 장점이다. 아울러 라면을 먹을 때 식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애완용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책으로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특히 고양이는 구석진 자신만의 공간을 좋아하는데 책을 적당히 쌓아서 고양이나 작은 개가 들어갈 만한 공간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특별한 건축학적인 지식이나 미적 감각이 필요 없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리모델링 할 수 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