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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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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반가워한다. 요즘 사람들이 옆에 끼고 사는 스마트폰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임'은 드물지만 '독서 모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약간의 시간과 노력만 투자하면 당신 주변에도 독서 모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확실히 독서모임에 참가하다 보면 스마트폰에 빠진 동료들보다는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고, 지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괜한 자부심이 든다. 그리고 점점 위축되어 가는 자신들의 취미생활 영역을 사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를 참 귀하게 여기는 것이 역력하다.

인터넷 북카페만 해도 그렇다. 어찌나 다정하고 따뜻한지 마치 한 가족 같은 분위기다. 나도 취미가 다양한 편이어서 많은 카페에 가입되어 있지만 독서 관련 카페만큼 '다정이 병인양' 한 곳도 드물다.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동지에게 나눔 해주는 것이 가장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취미 카페에서 '나눔'이라고 하면 '팔겠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독서카페의 '나눔'은 그야말로 무료로 나눠주겠다는 뜻으로 통한다. 나만 해도 그랬다. 원래는 내가 도저히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서 나눔을 하기 시작했는데 하도 '나눔 천사'라는 찬사를 많이 듣다 보니 이제는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책도 나눔을 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숲이 나를 부른다>를 비롯해서 내가 참 재미나게 읽은 '빌 브라이슨'의 저작들, <노튼 삼부작>이란 별명을 가진 사랑스러운 고양이 '노튼'과의 추억을 그린 '피터 게더스'의 저작들과 심지어는 꽤 비싸고 주고 샀고 평생을 두고 반드시 완독하고야 말겠다는 전의를 불살랐던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나온 <모비 딕>을 기꺼이 내 돈으로 택배를 보내주는 친절을 베풀었었다. 어디 그뿐인가? 내 인생의 책이자 내 서재에서 가장 아끼며 무덤까지 함께 하고 싶은 <숨어 사는 외톨박이>도 아낌없이 나눔을 해주기도 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이라면서 나눔을 해주었는데 카페 회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더랬다. 그들은 내가 <숨어 사는 외톨박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여러 질을 소장하고 있었고 그중 한 질을 나눔 했을 뿐이라는 것을 모르고 딱 한 질 소장하고 있는 귀한 책을 아낌없이 나눠준 것이라고 오해했겠지만 말이다.

칭찬은 애서가조차 나눔을 하게 한다. 작가정신판 <모비 딕>의 경우 나눔을 한 것을 후회까지 했지만, 그 당시에는 내 책을 받고 즐거워하는 사람을 보고 행복했었다. 나눔을 하는 것은 제법 번거롭다. 나눔을 할 책의 목록을 게시하고 댓글을 보면서 책을 받을 사람을 선정해야 하고 더욱 번거로운 것은 일일이 포장을 해서 택배를 보내야 한다.

나눔을 할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참 힘든 시기였는데도 내 책을 받고 행복해하는 사람의 반응을 보면서 베푸는 삶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렇듯 뜨거운 동지애를 발휘하는 애서가들조차도 서로를 용납지 않는 두 부류가 있다.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와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부류가 그들이다.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함부로 다룬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심지어는 침을 묻혀가면서 읽는다. 또 읽다가 멈출 때는 스스럼없이 다음에 읽어야 할 부분을 접는다.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마치 보물처럼 다룬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고 반드시 책갈피를 사용하며 심지어 책 표지의 띠지조차도 소중히 여겨서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이런 부류가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을 보면 그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책을 그렇게 험하게 다룰 수 있냐는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책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에 속한다. 헌책에 적힌 전 주인의 메모를 그리도 귀하게 여기고 재미나게 읽는 편이지만 정작 나는 책에 메모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온건한 정신적 사랑 파에 속하는데 띠지를 소중히 여기지는 않아서 새 책을 받으면 띄지는 휴지통에 직행시킨다. 또 책갈피를 사용하지 않고 볼펜을 끼워두거나 그것마저도 귀찮으면 그냥 그쪽을 접는 편에 속한다.

나의 경우 책을 좀 함부로 다루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서평을 요청받고 강제로 증정 받은 책들이 그 대상이 된다. 애초에 내가 읽으려는 책이 아니었으니 그 책에 애정이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책은 마구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며 읽다가 멈출 때는 사정 없이 접으며 커피를 흘려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래전 흥미로운 사진집을 구매한 적이 있었다. 유머스러운 장면을 포착해서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한 엘리엇 어윗의 사진집인데 한 장면을 연속으로 촬영한 작품이 담겨있다. 연속으로 촬영된 사진을 빠르게 넘기면 마치 사진 속의 장면이 동영상처럼 보이는 멋진 책이다. 그런데 제법 비싸게 구매한 책인데 작은 흠집이 보였다. 속상해서 판매업체에 항의했는데 교환을 해주겠단다.

그런데 그 담당자의 말이 내게는 문화충격이었다. "흠집이 있는 책을 '사용하다가' 새 책이 도착하면 반납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당시까지 내게 책이라는 물건을 읽고 보관하는 것이지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것이 무슨 도구처럼 사용하는 물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책을 단지 사용하는 사람은 갑자기 메모를 다른 사람에게 해줘야 하고 주변에 메모지가 보이지 않으면 스스럼없이 본인이 읽은 페이지를 찢어서 넘겨주는 사람이다. 급진적인 육체적 사랑 파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온순한 정신적 사랑 파에 속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가 다른 사람에게 읽었거나 단지 보관만 하고 있던 책을 선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가끔 무섭거나(티베트의 천장의 풍습을 담은 사진집) 너무 야한 사진집의 경우 그 책들을 욕심내는 사람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재미나게도 내 딸아이가 보면 제 아빠를 변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사진집을 한탄하는 글을 올린 적이 두어 번 있는데 유독 그 책을 탐 내는 사람은 모두 여자였다. 어쨌든 혹시나 아내와 딸아이가 볼까 봐 서재 깊숙이 보관했으며 조심스러워서 잘 펼쳐 보지도 않았던 책이었다. 그런데 받은 사람은 내게는 그저 '고급스러운 플레이보이'처럼 보였던 책 속의 사진들이 '우아하고 유머스럽다'라며 행복해했다.

그는 책 속의 사진에 대해서 감격해 했을 뿐만 아니라 책의 보관상태가 워낙 좋아서 내게 따로 고마움을 표했다. '보관의 아름다움'이라나. 새삼 그 책들을 고이 간직한 것은 무척 잘 한 일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서서히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책은 활용하고 사용하는 것이 맞겠다 라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