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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집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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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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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는 그 주인과 운명을 함께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서란 그 주인이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취향과 필요 때문에 '한 땀 한 땀' 일궈진 책의 컬렉션을 말한다.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읽지도 않은 책을 장식용으로 마련되었거나, 주위에서 선물을 받은 것으로 채워져 있거나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기호가 아닌 그냥 방치된 책의 무더기는 장서가 아니다. 그래서 장서를 잠시만 둘러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부모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항상 자식에게 고스란히 옮겨지는 것은 아니므로 부모의 장서라고 해서 반드시 자식에게 귀한 대접을 받지는 않는다. 부모가 죽으면서 자신의 장서 거취를 언급하는 경우는 명색이 책 수집가의 장서가 백 권이 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중세시대 이전의 일이지 현대에 들어와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진돗개가 그렇듯 장서는 한 주인만을 섬긴다. 주인을 잃은 장서는 안타깝지만,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주인이 세상을 떠나며 버림받은 유기견의 신세와 비슷하다.

장서가의 자식들은 돈의 분배로만 싸우지 장서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는다. 물론 그 장서가 문화재급의 희귀본이어서 '돈이 되는' 경우는 예외겠지만. 장서를 의도치 않게 떠안은 자식들은 대개 헌책방이나 고물상에 무게를 달아 팔아넘긴다. 장서의 수가 많지 않다면 재활용 상자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헌책이나 희귀본 수집가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대박의 기회는 다른 교양 있는 장서가의 죽음이다.

추리소설이라면 어린 시절 셜록 홈스 이후로 담을 쌓고 있는 내가 시리즈의 새로운 권수가 나오자마자 잽싸게 사서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다. 잘 읽지 않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요즘 보기 드문 고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고 또 독서광인 여자 주인(시노카와)의 책에 관한 지식의 향연 때문이다. 시노카와가 다양한 희귀본들의 가치를 설명하고, 수족처럼 그 희귀본들을 귀하게 여기는 구절을 읽을 때마다 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이야기들이 귀하고 반갑다. 여담이지만 사람의 취향은 다 비슷한가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시노카와의 인기가 많아서 피규어가 출시되었다. 소설 속의 인물이 피규어로 출시되었다니 과연 일본의 출판 시장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 맞다.

그런데 이 책에도 어김없이 고서점의 주인인 시노카와가 서재의 주인이 죽어서 책을 처분하고자 하는 사람의 집에 출장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서재의 주인이 죽으면 그 사람의 장서는 애물단지가 되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인 모양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의 고조할아버지는 운이 참 좋은 분이다.

무려 4대손인 내가 당신의 서책을 고이 보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화재급의 서책이 아니고 이름 없는 유학자의 문집이나 서책이 4대손에 의해서 소장되고 있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고조할아버지의 장서를 고이 모시고는 있기는 하나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온전히 고조할아버지의 장서를 보관한다는 것은 내가 그 책들을 읽고 감흥을 느끼며 활용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로지 한문으로만 된 고조할아버지의 서책들을 나는 단 한 권도 읽지 못한다. 그냥 후손이 된 도리로 보관만 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나의 후손이 내 책을 보관하고 있기는 하나 전혀 읽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내 서재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지금도 내 서재의 장서는 풍전등화 또는 백척간두에 있는 신세다. 집안에서 제일 큰 방을 서재로 쓰고 있는 데다 아내가 거짓말 다음으로 혐오하는 '먼지'의 온상이 내 서재다. 내가 죽고 나서 내 서재의 거취를 따질 신세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사를 하자는 아내의 의견에 애써 반대의견을 내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사를 하면 이 거대한 서재를 구축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다.

내가 처음부터 이 거대한 서재를 쉽게 마련한 것은 아니다. 거대한 서재의 아름다움을 미리 보여주고자 위 층 대학교수님 댁을 아내와 동행했고 아내에게 장식으로서의 책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래서 일단 그 교수님 댁처럼 집안에서 제일 큰 방을 서재로 삼았고 한쪽 벽면을 오롯이 책을 많이 꽃을 수 있는 맞춤 책장으로 채웠다.

아내에게 큰 경사가 있을 때마다 한 면 한 면 책장을 더 추가했고 마침내 남부럽지 않는 멋진 서재를 간신히 일궈낼 수 있었다. 물론 나의 숙원 사업은 남아 있다. 소파가 차지하고 있는 마지막 한 벽을 책장으로 채우고 싶은 야욕 말이다. 물론 서재의 소파에서 편안하게 독서를 하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그래도 장서가에게 일 순위는 '의미 있는 장서의 증가'이지 '독서의 안락함'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의 '서재개발 5개년 계획'이 미처 완료되기 전에 폐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죽은 뒤의 일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사치인가 말이다. 우선 급한 대로 '내 서재의 공익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딸아이의 과외 공부의 공간으로 서재를 사용하게 했으며,국어교사인 아내에게는 국어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니 서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홍보를 했으며, 아내가 어떤 책을 읽고 싶은데 내 서재에 그 책이 있는지를 물어보면 열 일을 제쳐두고 그 책을 찾아주었다.

그리고 서재에서는 항상 책만 읽고 집필만 하지 프로야구 시청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서재라는 곳이 가족들과 대화는 하지 않고 혼자 처박혀서 노트북으로 야구 중계나 보는 불순한 곳이라는 인식을 아내가 가지면 안 된다. 그리고 책을 살 때 아내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최고 권력자가 서재의 이로움을 몸소 느끼게 해야지 하층민의 이익에만 봉사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내가 서재를 방문해서 예전처럼 '읽을 만한 책이 없다' 나 '하나같이 책이 모두 고리타분해'라는 평가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아내 입에서 '혹시 *** 이라는 책이 있어?'라는 문의가 들어왔을 때 그 책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냉큼 아내의 손에 집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서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아내가 국카스텐에 심취해서 하현우가 가사를 짓는데 영감을 받았다는 <몰락의 에티카>가 서재에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 그 순간 내 인생의 독서와 장서 활동의 보람을 다 느꼈다. 아내에게 '그 책 당연히 있지'라고 대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 때문에 집을 떠나 멀리 포항에 있는 것이 천추의 한으로 느껴졌다. 전화로 그 책의 위치를 아내에게 오랫동안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설명해준 것으로 모자라 혹시 아내가 그 책을 복잡하고 어지러운 내 서재에서 찾지 못할까 봐 밤잠을 설쳤었다. 찾지 못하거나 혹시 아내가 찾다가 귀찮아서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별의별 걱정을 다 했더랬다.

그러나 아내에게 있어서 서재의 존재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를 따진다면 지식의 향유보다 더 우선되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청결'이다. 먼지로부터 자유롭고 홀아비 냄새가 나서 다른 청정지역을 오염시켜서도 안 된다. 우리 집의 VIP가 불시에 방문했을 때를 대비해서 내 서재를 닦고 조이고 기름치지 않으면 안된다. 서재를 구축하는 것은 쉬우나 그 수성은 어렵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