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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의 라이벌론 3부작 | 독서세대 지식인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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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부모보다 시대를 더 닮는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빛나는 의승장, 사명당 유정(四溟堂 惟政)의 다면불(多面佛) 항마행(降魔行)을 유학자 가문 출신 불승의 관점에서 조명한 신학상의 선언이다.「사명당의 생애와 사상」(1982, 1994 서문) 한때 이 땅을 세차게 유린했지만 물러간 지 오랜 줄 알았던 낡은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신지식인' 아들(영복)에게 보내는 '구지식인' 아버지의 애탄(哀歎)이기도 했다.

글 읽기와 쓰기가 지식인의 본령인 시절이 있었다. 지식인이라 함은 세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명감과 부채의식 두 가지 덕목을 갖춘 저자와 독자를 지칭하던 시대였다.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는 그만큼 정치적 후진사회라는 평가도 있었다. 게다가 지식인은 뿌리 없는 부평초처럼 주체성 없는 존재로, 어쩌다 건진 지식을 마치 제 것인 양 착각하고 감히 대중의 계도에 나서는 얼치기를 지칭하기도 했다. 후진국 지식인의 전형으로 평론가 백모씨를 내놓고 거론한 학자도 있었다. 어찌 백씨 혼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었을까!

설령 '사이비' 지식인들이 대거 횡보했었지만 그 시절이 그리운 사람들도 많다. 더 이상 한국사회는 지식인을 거론하지 않는다. 대중민주주의의 횡행과 함께 분야와 주제마다 '전문가'들이 양산되었다. 이들에게는 과거의 지식인처럼 역사적 소명감과 부채의식을 기대하지 않는다. 근래 들어 인간의 지적활동에서 문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약화되고 있다. '영상세대' '관객세대' 또는 '휴대폰 세대' 대신 '독자세대'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누가 날더러 한국 독자세대 지식인을 두 부류로 나누라면 김윤식교수의 글을 많이 읽은 사람과 덜 읽은 사람으로 나눌 것이다. 그의 글을 모두 읽은 독자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특종기사 감이다. 김윤식을 전혀 읽지 않은 사람은 어떤 기준으로도 독자도 지식인도 아니다. 한갓 법률가 나부랭이도 지식인 반열에 끼고 싶으면 김교수의 에세이집 한 권쯤은 읽었어야 한다. 지난 해 9월 기준으로 147권의 저서, 200자 원고지 10만 매에 달하는 김윤식의 수묵(手墨)은 대한민국 독서세대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김윤식의 필경(筆耕) 60년, 그의 글 속에 근대한국의 지성사가 농축되어 있고 지식인들의 행장과 삽화가 풍부하게 곁들여져 있다. 검인증 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초기 문인들은 물론 거의 모든 현역 작가들의 작품에 김교수의 붓이 스쳐갔다. 김윤식의 평을 받지 못한 대한민국 소설가는 지식인이 관심을 줄만한 작가 축에 들지 못한다.

2.

"신은 죽었다!" 1882년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언이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질서는 '자연적'인 것이다. 개인의 삶도 자연의 질서와 함께 그 무정형, 무질서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관성과 인습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죽은 신을 대신을 새로운 존재를 갈구한다. 누가 신의 자리를 대신할 것인가? 니체는 정식으로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았다. '허무주의' '영겁회귀' '권력에의 의지'로 '초인'의 등극을 갈망했을 뿐이다. 니체의 선언 후 130여년, 여전히 종교와 세속의 관계는 끈끈하다. 더러는 거북함으로, 더러는 전율적인 신비함으로 사람들은 신이 머물던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른바 세속국가 현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도스토엡스키, T. S. 엘리어트, 사무엘 베케트와 같은 작가들은 신이 사라진 뒤 남겨진 황량한 세계를 바라보며 느끼는 참담함을 작품으로 그렸다. 이 눈물의 선지자들이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것은 공포감이었다. 진정한 지식인은 무신론자라야 한다는 등식이 탄생하기도 했다. 신의 이름으로 목숨을 걸고 저지른 불합리하고 잔혹한 행위들을 보면서 무신론자들은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연전에 작고한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종교적 무신론'을 주장했다. 종교란 반드시 신에 대한 믿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본질적 의미와 자연의 내재적 아름다움 대한 경건한 자세가 핵심적 요소다. (Ronald Dworkin, Religion without God (2013)

신이 죽은 자리를 누가 메우는 일, 그것은 지식인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무였다. 맨 먼저 시인이 그 자리를 자임했다. 위대한 시인은 곧바로 하나의 대안정부였다. 니체 이전에도 시인이 비공식 입법자라던 영국 셀리도, 시인은 시대의 판관이라며 〈푸른 온타리오 호반〉을 읊조린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도 있었다. 니체 이후에 시인 신들이 양산되었다. 폴 발레리(프랑스), 리처즈 (I. A, Richards 영국),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스페인), 예이츠 (아일랜드) 등등 무수한 시인이 죽은 신의 후계자임을 자처했다. "사람이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린 뒤, 삶의 구원으로서 그 믿음의 자리를 대신하는 본질은 시다." "세상에서 가장 주된 시상(詩想)은 언제나 신이라는 관념이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의 사제다. 시는 음악을 넘어서 텅 빈 천국과 그 찬가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법으로 밥벌이하던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의 어록이다. 시인만이 아니다. 소설가, 평론가도 동참했다. 신의 후계자, 그것은 응당 문학의 몫이어야 했다. 신이 창조했던 세계는 새로운 창조자가 아니면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다. 근대적 의미의 분화된 직업과는 거리가 있다. 높고 참된 의미에서의 문학하기다." (본서 99쪽)

한때 사회주의가 새로운 신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Selig sind die Zeiten...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할 길을 하늘의 별이 지도 몫을 하고, 그 별빛이 우리의 갈 길을 훤히 비추어 주던 시대는 복되도다." 루카치의 문제작「소설의 이론」(1916)의 첫 구절이다. 지상의 인간이 천상의 질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각이 필요하다. '위대한 망집(妄執)'의 '황금시대', 인류는 그 때문에 온갖 희생을 다 바쳤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살해되었다. 모든 민족이 이것 없이는 살 보람도 느끼지 못하고 죽을 보람도 생각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조차도 "사람은 가슴마다 라파엘을 안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도스토에프스키는 드레스덴의 미술관(Gemäldegalerie)에서 클로드 로랭(1600 ~ 1682)의 작품〈아시스와 갈라데아'(Acis And Galatea)〉를 보고 황금시대의 환각을 체험했다.(「내가 읽고 만난 일본」41-50쪽.) 김윤식도 그랬다.「설렘과 황홀의 순간: 김윤식 예술기행」(1994). 셰익스피어의 구절을 빌리면 "미쳤거나, 사랑에 빠졌거나, 시인들의 머릿속에 상상이 가득 차 있다." (the lunatic, the love and the poet) (William Shakespeare, A Midsummer Night's Dream, 5.1.7-8)

"신이 지상에 인간과 더불어 공생하던 시대, 그 황금시대가 끝났다. 신이 떠난 어두운 세상에 등장한 것이 작가다. 창공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암흑으로 가득 찬 것. '문제적 인간'의 길 찾기는 소설(장편)쓰기다. (루카치) 「내가 읽고 만난 일본」46쪽) "나의 길을 찾아 나선다." (I go to prove myself.)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이 새로운 신인(神人)의 행보를 인도해 줄 것이라 믿었다.

3.

"가장 고귀한 비판은 적이 아니라 라이벌에게서 나온다." (The most noble criticism is that in which the critic is not the antagonist so much as the rival of the author. (Isaac D'Israeli, 1766 - 1848) "가시 없는 장미가 없듯이 라이벌 없는 사랑도 없다"(터키 속담)

김윤식 교수의 근래 노작 세 권을 묶어 감히 〈한국문학사의 라이벌론 3부작〉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한 무면허 법학도 독자의 월권행위다.「문학사의 라이벌 의식」(2013)에서 다섯 짝의 라이벌을 제시했고, 이어서 후속편인 본서에서 여덟 짝을 덧붙였다. 두 권에 앞서 펴낸「내가 읽고 만난 일본」(, 2012)에서 모든 논의의 밑바탕을 깔아 두었다. 3권을 함께 읽으면 한국근대문학 60년 (1920대-1980대)의 흐름, 막힘과 뚫림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 3부작은 미리 써둔 김윤식교수의 자서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자신의 임무가 단순한 '문학비평'이 아닌 '문예비평'이어야 하는 연유가 있다. "문학은 이데올로기다. 철학과 마찬가지로 인류사의 나갈 길을 가리키는 지도나 별, 지침서다." 김윤식의 문학비평(문예비평)은 이데올로기의 운동에 맞서는 내면화의 작업이었다. 정치적 격동의 시기에 몇 차례 굴욕은 당했지만 드러난 큰 외상없이 넘기면서 내공을 다진 원로의 의연함과 여유가 넘친다. 그의 문예비평은 철학이 받쳐주고 미술이 술을 달아준다.

1970년과 1980년, 10년 상거(相距) 두 연구년을 도쿄에서 보낸 행장을 일러 '문수보살 없는 선재동자의 편력담'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다섯 개의 그림'이라는 부제를 덧붙였다. 모든 이데올로기의 담론이 막혀 있고 지적 담론이 초라한 나라, 대한민국은 국립대학 조교수의 해외연수를 지원할 재원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멀리 하버드옌칭연구소의 원격 지원을 받았다. 1970년 11월 27일자 일기 구절이다. "와이프에 편지하다. 나보다 수개월 먼저 파리에 유학 간 와이프의 주소가 그대로인지 궁금." (내가 읽고 만난 일본」37쪽) 막막했다. 루스 베네딕트의「국화의 칼」을 번역하고 루카치를 발견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차 체일에서 내가 얻은 것은 방향상실감이었고 잃은 것은 순진성, 소박성, 미숙성이었다. 잃은 것은 내 젊은 오기였고 얻은 것은 문예비평에 대한 공포증이었다. 문예비평, 그것을 블랙홀과 같아서 한번 빠지면 헤어날 방도가 없는 것이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409쪽)

첫 장벽은 이광수였다. "이광수에게 일본은 무엇이던가? ... 일본 그것은 그에게 길을 가르쳐주었고 동시에 길을 막았다. 그에게 희망의 앞자락을 보여주었지만 또 절망의 뒤꿈치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총독부에 야합하기도 맞서기도 한 근대문학의 아버지, 춘원 이광수를 어떻게 부정할 것인가? (「내가 읽고 만난 일본」743쪽) 일찍이 셰익스피어의「줄리어스 시저」에 재생된 로마인들의 연설(3막 2장)을 번역, 소개한 그가 아니었던가! (1926년 1월 1일 동아일보). 청년시절 춘원도 시저- 안토니오의 전제군주제 대신 브루터스의 시민공화주의 이상의 소유자였다면 턱없는 비약일까? 어쨌든 비판하고 항거하더라도 춘원 이광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근대한국문학사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노릇이다. 춘원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망외의 소득이 겹쳤다. 루카치였다. "본질을 절대로 찾아야 한다. 그 본질은 절대로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소재로 하는 소설만이 시간은 형식과 더불어 주어진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741쪽)

막막하고 망망한 여정에 길잡이들이 나타났다. 루카치에 더하여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1902-83) 에토 준(江藤淳, 1933-1999), 모리 아리마시(森有正, 1911-1976), 루스 베네딕트 (Ruth Benedict, 1887-1948), 그리고 리처드 미첼 (Richard H. Mitchell). 장장 10년이 걸렸다. 1980년, 45세의 중년 정교수로 한국문학의 아비, 이광수의 평전에 착수할 만큼 내공을 다지기까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8시부터 12시까지 하루 20매 리듬으로 썼다. 하루 70매를 썼을 때는 그 후 사흘을 앓았고 하루 3장도 못 썼을 때 또한 사흘을 앓았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749쪽). 「이광수와 그의 시대」(1981) 이후로 일망무제, 이날까지 내쳐 달려온 필경 대장정이다. "자 이제 지체 없이 떠나라, 나의 손오공이여. 문수보살이여. 그래 내 아이야, 이젠 혼자서 가라. 더 멀리 더 넓게! (So mein Kind, jetzt gehe allein weiter!" 김윤식의 독립선언이자 후세인에게 건네는 작별인사다. 아이여 아비를 떠나라!

4.

김윤식교수의 라이벌론은 한국문학사를 분석하는 또 다른 틀과 유형을 제시한다. (1) (2)권에 걸쳐 열세 짝의 리어벌이 출연한다. 1920년대에 1980년대까지 다루는 셈이다. 작가와 작가, 평론가와 평론가뿐만 아니라 동일 작가의 소설과 희곡(최인훈), 같은 작품 속의 인물들(「지리산」)을 호적수로 지목한다. 다른 평론가(김현)와 저자 자신의 관계를 조망하기도 한다. 때로는 스스로를 '주'(主) 와 '객'(客), 자아(自我)와 가아(假我)로 분화시킨다. 지성사에서 라이벌은 '승인 욕망' '대응욕망' '위신을 위한 투쟁', 즉 창조적 작업에 관여하는 '문제적 개인'의 지적활동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무릇 창조적 활동을 수행하는 '문제적 인간'은 또 다른 '대립적 자아'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위신을 위한 투쟁을 수행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1. 2권 서문 공통) 시쳇말로 라이벌은 창조적 행위로서의 문학이라는 사랑의 왕관을 노리는 구애자들인 것이다. 굴곡과 격동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우려에 찬, 그러나 따뜻한 시선이 빛난다. '청춘의 감각, 조국의 사랑' 그것은 그가 일찌감치 부터 선인들의 행적에서 애써 찾으려던 관념이요 실체였다. (「교토문학 기행」, 1999)

5.

역사는 파괴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연속적인 발전 과정이다. 치욕스런 일제 조선의 역사도 엄연한 한국인의 역사다. 김윤식은 '전천후 세대' 비평가다. 1936년생인 그는 자신 세대의 포로가 아니다. "나 자신의 세대 의식은 없다" 스스로 고백하듯이 특정세대이기를 거부하고 객관적 투명성을 미덕으로 삼은 '구경꾼' 내지는 '방관자'의 특권을 극대로 행사한다.

"우리는 화전민이다. 우리들은 어린 곡물의 싹을 위하여 잡초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그러한 불의 작업으로 출발하는 화전민이다." 일본과 단절한 화전민 세대의 기수임을 자처한 이어령이나 "1960년 4월 19일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 걸핏하면 훈장처럼 4.19세대의 기수임을 내세우던 김현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김윤식이다. (「문학사의 라이벌의식」115쪽)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포개지는 것, 흐르긴 해도 포개지고 쌓인다는 것"이다.(본서, 154쪽) 모든 세대교체론에는 권력투쟁의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 모든 권력투쟁은 점진적, 평화적 교체로 이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살육이 따른다. 윗세대의 시체를 딛고서야 새 시대를 연다는 창조자 콤플렉스는 균형과 이성의 적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곧바로 저자의 지적 개안과 활동의 시기다. "나에게 조국은 없다. 산하가 있을 뿐이다."(이병주) 되찾은 산하에 두 개의 '조국'이 들어섰다. 산하의 반쪽에 세워진 '대한민국'은 나머지 반쪽을 어떻게 대할 것이며, 언제,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네, 굳이 말하라 한다면 이 산천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 (박경리 「토지」 1부 2권, 본서 177쪽에 인용) 대한민국 헌법사는 아홉 차례나 변태성욕자에 의해 능욕당한 가련한 여인의 일생이다. (황지우) 인류사의 관점에서 볼 때 근대란 국민국가 (nation state)와 자본재 생산 양식(mode of capitalist production)을 동시에 수행하는 역사적 단계이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문학은 국권상실기(1910-1945)의 특수성과 민족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세계사적 시선을 외면하고는 논할 수가 없다. 김윤식의 확신이다. (본서 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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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경성제국대학의 아카데미즘에 도전한 조윤제와 양주동은 라이벌보다는 분업을 통한 공범으로 규정하는 편이 적격일 듯하다. 경성제대 오쿠라신페이 (小倉進平)교수의 향가 논문(1929)은 동양 삼국의 고대 문학(詩經, 萬葉集, 三代目)을 동일반열에 올린 기념비적 업적이지만 '조선인의 직감'을 극대화하여 '망국인의 국문학'의 비애와 아이러니를 극복한 양주동(1937)의 분투에 새삼 경건한 자부심이 든다(「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50쪽). 법문학부 1회 단독 졸업생인 조윤제가 손진태의 민족사관을 모태로 삼아 역사성의 지적 가능성과 문화적 사실의 과학화를 시도한 것도 마찬가지다.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47쪽) 유진오의 자조대로 경성제대 졸업생은 친일파 아니면 공산주의자 뿐이던 시절이었으니 더욱더 그러하다.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55쪽)

김윤식이 번역한 리처드 미첼의「일제하의 사상통제」(1982)(Thought Control in Prewar Japan, Cornell University Press, 1976) 는 '사상전향과 그 법체계'라는 부제가 지시하듯 응당 법학자의 몫이었어야 했다. '국가학' '제도법학' '수험법학' 수준에 머물던 한국공법학의 구태가 새삼 수치스럽다. "도쿄대 법학부, 특히 법학과 교수들은 독창적이자 생경한 학문의 성취를 강의한다는 것. 그러니까 대중용 저서가 아예 없다는 것, 박사학위 따위도 아예 받은 바 없다는 것. 단독 논문으로 결판을 낸다는 것. 전 학기 법학과 대학원 세미나용이라는 각주가 붙어있다. 제목 그대로라면 일제시절에 일본국가가 행한 사상통제, 제국일본의 국가적 이념에 도전해오는 모든 이념과의 싸움, 더 좁히면 마르크스주의의 도입을 허용한 제국 일본이 이번엔 그것을 철저히 막아내야 하는 기획이 이 책의 연구과제였다." (「내가 보고 만난 일본」563쪽)

'전향'이라는 영민한 법 운영이 성공적인 사상통제의 관건이었다. 오래전에 확립된 도쿄대학의 학문적 독자성과 다양성이 시대의 자양분이었다. "이쯤 되면 두 개의 '국가'가 암암리에 용인된 형국. 천황제 일본국가 대 비 천황제 사회주의 국가의 내가 보고 만난 일본대결. 비록 사세 불리하여 천황제 파시즘에 굴복했지만 옥중의 6만명 사상범의 자존심만은 당당했다." (「내가 보고 만난 일본」572쪽). 사법성의 전향정책이 성공한 배경에는 개인주의적 사상과 보편주의적 이상보다는 집단의 단결과 자기중심적 사고가 깔려있었다는 성찰이 정곡을 찌른다. (「내가 보고 만난 일본」575쪽) "우리는 전향해도 돌아갈 국가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게 없다." 한 일본인 전향자가 조선인 동무들에게 건넨 동정 뒤에 깔린 문학과 정치의 함수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보고 만난 일본」583쪽)


7.

박태원과 이상의 라어벌론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오감도〉의 대칭구조 및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날개〉의 비대칭구조에로 전향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일본의 힘과 무게에 눌린 식민지 문사들의 정신적 망명처의 모색과정이기도 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식민지 서울의 다방 제비를 제국의 수도 도쿄로 옮겨 놓았다고 해서 달라진 점이 전무하다는 사실은 박태원의 글쓰기의 원점이 서울일 수 없음을 웅변함이 아닐 수 없다. 단장을 짚고 대학노트를 옆에 끼고 종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구보 씨의 행위란 실상 도쿄의 긴자(銀座) 거리 혹은 무사시노(武藏野) 숲은 걷고 있음과 등가이다. ... 제국의 수도 도쿄의 문학, 그리고 또 그것은 저 조국을 스스로 탈출하여 파리에서「율리시스」를 쓴 조이스의 글쓰기의 원점과 박태원의 원점이 등가라 함은 이런 문맥에서이다. 대작「천편풍경」이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대응된다는 시각은 이에서 말미암는다." (본서 31쪽)

8.

해방공간에서 정지용과 이태준의 엇갈린 행보를 강요한 민족적 비극이 새삼 아프다. "그런데 조선은 조선끼리 싸운다... 반드시 민주주의란 명목으로 싸운다. 왕도와 왕도의 싸움이 아닌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으로 誰知鳥之雌雄으로 돌리고 단념해야만 하는 것일까? 암수 구분 못하는 까마귀처럼." (본서 80쪽) 남로당 전향자, 정지용은 선(線)을 넘어 북조선예술총동맹의 부위원장이 된 이태준에게 편지를 쓴다. (1950. 1)"소설가 이태준군, 조국의 서울로 돌아오라" (본서 81쪽) 그로부터 반년 후 이태준은 인민군 복장으로 서울에 나타난다. "이태준과 정지용, 둘은 우리 문학사의 고유명사다. 두 사람은 함께 심봉사였다. 눈 뜬 심봉사의 비극이 정직하게 빛난다. (본서 83쪽) 민주주의끼리의 싸움은 너무나도 길다. 언제 끝날 지도 모른다.

김동리와 조연현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국체와 정체를 대변하는 문인들이었다. 작은 과(過)를 따지기에는 공(功)이 너무 크다. "헤겔에 따르면 인간의식의 절대성에는 예술, 종교, 철학의 세 가지로 나뉘고 그중에서도 주관적 감각적 차원의 예술이 가장 저급하다. 예술을 종교나 철학의 차원으로 승화하면 세속적 평가를 넘을 수 있다. 해석학자의 작업에 불과한 평론도 시나 소설처럼 될 수 있을까? 있다면 전제조건은 '형상화'다." (본서 103쪽) 한국문단사에 두 거물이 놓인 자리를 문학의 분화 이전과 이후로 가르고, '종교의 자리에 선 김동리', '문학의 자리에 선 조연현'으로 대비시켜 둘을 함께 봉안하는 원숙함을 보인다. "究竟的 생의 형식", 해방공간에서의 김동리의 자기모순성을 적시함과 동시에 문학을 초월하는 글쓰기의 전범을 제시한 거인으로 (김동리의 '산유화'론) (본서 106쪽)로 추존하는 유연함이 돋보인다. 누가 뭐래든 이승만과 맥아더의 공로를 기릴 수밖에 대한민국 정통 정치사가 연상되기도 한다.

9.

억쇠 박상륭과 득보 이문구 사이의 각별한 文友之情에는 자신의 신도이자 분신들을 감싸는 교주 김동리의 후광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251쪽)「죽음의 한 연구」(1995)「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2003), 박상륭의 별난 작품과 "아무리 빨갱이 자식이라도 김동리의 제자까지 함부로 어떻게 하리!" 소설을 수필이라고 우겨야 했던 (관촌수필」1977)이문구의 별난 생애가 오버랩된다.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240쪽) '독종' 농부의 막내 박상륭이 '정신적 귀족'으로 늘 '앞전'으로 살았다면 지식인(남로당)의 막내는 늘 '뒷전'이었다.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247쪽) '술 없는 천당보다 술 있는 지옥행'을 선호한 두 주우(酒友) 뒤로 비치는 목포 약종상 아들, '키 큰 평론가'(김현)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아비의 부재를 전제로 하여 그 아비의 몫을 생활면에서 감당하고 있는 어미상을 잔잔히 그려내는 것이 모계문학이라면' '아비는 종이었다.' '아비는 남로당이었다.'로 표상되는 아비상이란 절대 신에 준하는 터부의 일종이 아닐 수 없다. 밤의 논리인 모계문학과는 달리 대낮의 논리다. ..해방공간의 특수성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분열로 말미암아 두 가지 신이 군림하는 형국이었고 그 결과 하나는 대낮의 논리이며 다른 하나는 밤의 논리로 되고 만 것이다."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272쪽)

10.

김수영과 이어령, 이성의 뇌고와 감성의 촉수가 번뜩이는 한국문학의 두 귀재 사이에 벌어진 '불온시논쟁'은 거창한 제목에 비하면 실체는 부실했다. 빛바랜 역사에 지친 전전세대의 막내시인과 겨레말을 낫과 곡괭이 삼아 박토를 일구는 '화전민' 전후세대의 선두 비평가 사이의 설전은 실은 지향점이 동일했다. 종합지「사상계」와 일간지「조선일보」, 대조되는 두 무대가 독자의 호기심을 배가시켰지만 둘이 공유한 이상은 자유로운 창작활동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 (평자세대는 대체로 논리적 측면에서는 이어령의 판정승으로 규정했었지만, 김수영의 '자유인 + 자영인' 변론에 담긴 정서적 호소력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본서, 84쪽) "이어령은 한국문화를 위협하는 것은 문화 내부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데 반해 김수영은 참된 문학을 위해서는 정치적 자유가 필수이며 '모든 진정한 문학은 기성사회에 불가피한 위협이 된다."고 말함으로써 정치와 문학의 내적 연관에 관한 통찰을 제시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염무웅, "전환시대를 달군 참여문학 논쟁" 2016. 7.12 경향신문)

11.

최인훈의 장르 전환은 한국문학사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다. 초년의 소설과 후반의 희곡 사이의 유랑은 한 경계인, 망명 작가의 번민과 갈등의 소산이다. 4.19를 산파로 탄생한「광장」으로 일약 분단국 지식청년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최인훈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도 청년시절 한 때 세속의 권세를 찾아 법학도의 길을 더듬기도 했다. (그는 2004년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으로 선정되었다.) 요행히도 법의 질곡을 뛰쳐나온 그가 박태원의 격세 후계자를 자처하며 내놓은「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72)은 일용직 소설 노동자의 내면의 상처를 여지없이 긁는다. 창경원 나들이를 반복하는 (2장, 12장) 천변작가의 행로에 역사의 진애가 눅눅하다. 일제가 궁궐을 폐쇄하고 그 자리를 한갓 짐승에게 내준 바로 그 창경원이다. 빼앗긴 땅에서 구보가 망명자이듯이 'LST 남향세대' 최인훈도 망명의 땅, 남한에서는 어김없는 구보 신세다. 그러니 천형이 된 분단소설의 멍에를 벗어던져야만 했다. 희곡이 탈출구였다.〈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1976) '양간도(洋間島)'에 정착하여 영어로 소설을 쓸 각오로 떠난 땅을 3년만이 되돌아 온 그였으니〈세계문학〉이란 허명에라도 기댈 수밖에는. "흔히 시가 문학의 최후 도달점이라 말하고 있으나 실상은 희곡이고 무대이고 연극이다."(본서 290쪽) 한반도 탈출과 세계화에는 문자보다 무대가 백배 유리함은 불문가지다.「달아달아 밝은 달아」(1978), 「심청전」의 희곡화다. "용궁이란 바로 남경의 매춘부 집.. 과년한 딸은 장님 아니라도 홀아비 아비와 함께 살 수 없다. 근친상간을 피하려면 집을 떠나야 한다." (본서, 295쪽) 채만식이 앞섰고 황석영이 뒤따른 (2003) 심청의 한반도 송출과 귀환은 최인훈 자신의 운명이기도 했다.

12.

엄혹했던 군사독재 후반기에 백낙청과 김현이 크게 벌린 라이벌전은 지식인의 내적 개안과 결기 다짐을 대의로 내세운 '청년 문화'의 권력싸움이기도 했다. 문학사와 문단사가 중첩될 수밖에 없지만 잡지가 문학과 지성계 시장에서 벌인 치열한 쟁투는 현대 한국 지성사에 두 줄기 찬란한 섬광으로 각인되어 있다. 〈창작과 비평〉(1966)의 탄생은 하버드 유학생 백낙청의 죄의식과 사명감, 양지와 양심의 발로다. (「문학사의 라이벌의식」, 186쪽) 대항마로 등장한〈문학과 지성〉(1970) 의 '4K'의 결속은 미국과 영어 패권주의에 맞서는 구대륙 찬미자들의 집단저항의 성격도 간과할 수 없다. 선진 자유사회의 동경자․ 찬미자 이들 '외국문학도'들의 자부심의 근저에 깔린 것이 심리적 패배주의(참여파)이든 정신의 샤머니즘 (순수파)이든, 논리로서의 문학이든 해석으로서의 문학이든, 한국문학에 대한 열등감 또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새별들의 전장을 비교적 중립자의 자세로 관조했던 '한국근대문학 전공자' 김윤식의 지위는 특수했고, 그만큼 그의 몸값 또한 높게 책정되었을 것이다. 문외한 법학도의 무책임한 상상과 추론이 더듬어 낸 김윤식․ 김현 공저「한국문학사」(1973)의 탄생설화다. " '실증주의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어떤 궤적 -책읽기의 괴로움과 책 쓰기의 행복론." 한 마디 결구(結句)로 "色不異共空不異色." 먼저 백옥루(白玉樓)에 좌정한 동업자에 대한 남은 선비의 품격 있는 헌사다. (「한국문학사의 라이벌의식」 135- 163쪽)

13.

본서,「한국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2」의 중심인물은 단연 이병주다. 이병주는 흠이 많은 작가다. 그를 사랑할 이유만큼이나 미워할 이유도 많다. 그의 작품의 총합은 대한민국 국민의 삶의 총체이기도 하다. 그가 가꾼 거대한 회색의 정원에는 역사의 행간에 파묻힐 운명에 내몰린 무수한 작은 생명들의 사랑과 사상의 화초가 즐비하게 심어져 있다. 이병주만큼 생전에 부귀영화를 누린 작가는 드물다. 또한 그만큼 생전에 문단의 외면을 받았고 떠난 후에 깡그리 잊힌 작가도 드물다. 사람은 상황이 만드는 것, 인간은 문명의 이름 아래서만 죽을 수 있다는 그의 수사처럼 작가 이병주도 한국의 상황이 만들고 죽인 사람이다. 작가는 위인일 수는 있지만 초인도, 성인도 아니다. 위인이란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여 후세인의 삶에 큰 방점을 남긴 역사의 인물이다. 그를 미워하든 사랑하든 이병주는 결코 한국 문학사에서 잊혀서는 안 된다. 그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한국인의 역사적 책무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병주에 쏟은 애정은 유별나다. 전전세대 중 특수한 체험을 강요당했던 청년지식인들을 '학병세대'로 정명한 사람도 아마도 김윤식교수일 것이다. '지원'이라는 형식의 강제동원, 그것이 '內鮮一體'의 실체였다. 그 허위의 민낯을 '용병의 비애'와 '노예의 사상' 으로 밝혀낸 이병주의 공로를 어찌 간과할 수 있으랴. 일찌감치 '4.19세대'가 학병세대를 상대로 내질렀던 '일제잔재 청산론'을 청년의 조급함으로 규정했고, 이병주가「관부연락선」을 쓴 동기가 4.19세대와 구세대 사이의 단절감 잇기에 있었다고 판단한 김윤식이다. (본서, 152쪽). 학병을 거부하고 지리산에 들어갔던 하준수가 해방 후에 공산당 빨치산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비극중의 비극이다. 소설「지리산」이 하준수의 체포로 막을 내리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같은 학병세대라도 직접체험자인 이병주와 간접체험자에 불과한 선우휘는 작가로서의 지위가 현격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한국문학의 지리적 공간성을 학대한 공로에는 우열이 없다. '학병세대의 원심력, 선우휘가 향한 세계 속의 확산'이다. 영화「콰이강의 다리」의 원작에 영국포로에게 가혹행위를 주도하는 '고릴라처럼 생긴 조센징' '잔나비처럼 생긴 조센징'이 등장한다. BC급 전범으로 처형된 18명의 조센징의 전형일 것이다. 선우휘의「외면」에서 전범을 심문하는 청년미군장교 우드 중위와 일본인 통역 이끼소위, 승자와 패자로 처지가 다른 두 지식청년의 에고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이끼의 입을 통해 밝혀진 일본군 병사 하야시의 정체는 '조센징' '코리언', 임재수다. "일본군의 군복을 입은 '말도 소도 개구리도 아닌 '코리언'으로 세계 속에 놓이기이다." (본서 138쪽)

「지리산」은 사상소설이기 이전에 '교육소설'이다. 실로 명쾌한 진단이다. 주인공 이규와 박태영은 회색 지식인 하영근의 학생들이다. 제도적 보편성(이규)과 반제도적 보편성(박태영)의 대결은 무승부로 결말난다. 관조를 표방하나 실은 무력한 보신으로 대세 따르기에 급급한 서생과 '허망한 정열'로 막다른 함정으로 자신을 내모는 공산주의자 행동가, 둘 다 실패한 하영근의 학생에 불과하다. 또한 입당을 거부한 빨치산 박태영의 산중 일상은 이현상, 권창혁, 두 선생의 교과 내용 사이의 거리재기였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사상적 측면은 한갓 허망한 정열이었다." (본서 153)

어떤 의미에서든 이태와 이병주는 문학사에서 라이벌이 될 수 없다. 이태의「남부군」은 이병주의장대한「지리산」문학에 곁들여진 작은 삽화 내지는 각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둘을 대립당사자로 설정한 연유는 한때 대형작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표절시비'에 대한 권위적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병주와 황용주의 맞대보기는 특이한 발상이다. 이병주의 데뷔작,「소설․ 알렉산드리아」(1965)는 작가의 자전이라는 정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사건성' 글이다. 이런 단정에 작은 단초를 제공한 평자로서도 당혹스러운 선언이다. 황용주를 닮기 위한 이병주의 가아(假我)론은 작가에 대한 과도한 애정이 빚어낸 고육지책으로 비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 서면 황용주에게 박정희도 황용주 자신의 '가아'였을지 모른다. 비평가의 가아론이든 법학도 독자의 '심리적 자타혼합'이든 소설은 세상의 창조자, 신의 후계자인 작가의 '특권'과 '특전'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응당 그래야 할 것이다.

14.

김윤식은 살아있는 글쓰기의 신이다. 스스로 신을 자처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신으로 추존하는 후세인이 부지기수다. 그는 당대의 누구와도 다른 일상을 살았다. 부지런한 눈과 발로 앞선 신들의 행적을 더듬었다. 그 앞에 나타난 낯선 신들 중에 에토 준(江藤淳, 1933-1999)의 신화는 처절하다. 패전국 일본, "집안에 불치의 환자를 숨겨두고 살아가기에서 벗어나 태양 아래 한 점 부끄럼 없이 사는 방도는 없는 것인가." 이것이 전후 일본 문학의 과제였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 266쪽). 그의 일상은 오로지 독서, 사색, 그리고 집필뿐이었다. 자식도 만들지 않았고 아내가 죽고 글도 쓰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기 신분의 '혈연'을 단절하여 '가족'을 만든 근대지식인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혈연'이나 '국가'를 단념하고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세대'를 거듭하지 않고 '부부' 라는 단위에서 자신들의 생을 완결하겠다는 의지의 실천이었다." (「내가 보고 만난 일본」 332쪽)

김교수는 마치 자신의 전기를 쓸 후세인을 배려하듯 풍부한 자술을 남겨두었다. 치밀한 논리 뒤에도 감상의 여백을 잊지 않았고, 때때로 "병자(丙子)년 윤 정월 정오에 난 쥐띠 몸으로 강변 포플러 숲에서 자라 까마귀와 붕어를 속이고 길을 떠난 아이"가 속수무책으로 황망하게 풀어진 대낮 모습도 드러내 주었다. '선연한 헛것' '울림' '황홀경', '설렘', '환각'... 자신도 독자도 딱히 권위적 정의를 내리기 힘든 어휘들로도 정서적 공감대를 확산했다. 회의, 답사, 여행... 부지런한 발길에 지친 몸을 공항에서 어김없이 맞아주는 '늙은 마누라'를 자랑하는 어색한 애교도 감추지 않았다.

〈한국문학사의 라이벌론 3부작〉, 그 어느 저술보다도 독서세대 한국의 지식인, 육체도 정신도 오로지 글쓰기에 바친 인신(人神), 김윤식의 자술서이다. 행여 그가 더 이상 글을 못 쓰게 되면 어쩌나? 언젠가 그가 떠나고 나면 빈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 당장은 막막하지만 애써 불안을 거두자. 언제나 시대는 스스로 필요한 인물을 만들고 키워냈으니. 걱정할 문제가 따로 있다. 누가 '그 사람 김윤식'의 표준적 전기를 쓸 것인가? 흉중에 뜻을 품은 후생이 한둘이 아니지만 표준적인 김윤식 전기, 그것은 그의 필경 60년에 버금가는 버거운 작업일 것이다. 어차피 '표준'은 무익하고도 불가능한 일이다. 작품은 저자의 몫이고 평전은 평자의 몫, 그리고 해석은 독자의 몫일 터이니. 어쨌든 아직은 한참이나 성급한 일이다. 지금은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신비와 경의에 찬 눈으로 여전히 거침없는 글쓰기 신의 행보를 지켜만 볼 뿐이다.


* 김윤식 「문학사의 라이벌의식 2」, 그린비 2016. 9. 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