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協治하자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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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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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3일, 20대 국회의원 총선 결과는 박근혜 정권에 보낸 국민의 경고였다. 야당 분열의 어부지리로 압승을 장담하던 새누리당은 참패했다. 얻은 의석은 과반을 훨씬 밑돌았고 원내 제1당의 지위조차도 잃었었다. '여소야대'의 결과 국회의장과 부의장 한 자리도 야당에 내주게 되었다. 청와대와 여권은 '협치(協治)'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그런데 '협치'는커녕 청와대의 '독치(獨治)'가 도를 더해가고 있다. 여당 대표를 지명하다시피 세를 몰아 뽑았다. '친박' 배지를 가슴과 이마에 단 새 대표에게는 국회에 파견된 청와대의 대변인이라는 냉소가 따르고 있다.

이런 판에 9월 1일, 개원 첫날부터 20대 국회에 파동이 일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내용을 문제 삼아 여당 의원들이 집단행동으로 나섰다. 의장의 발언 중에 퇴장하는가 하면, 70여명 패거리가 의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의장의 성명을 빗대어 'XX균'으로 비하하는 치졸함도 드러냈다. 사전에 배포된 의장 연설문임에 비추어 보아 원내대표의 체계적인 지휘 아래 일어난 소요는 아닌 듯하다. 어쨌든 여당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정 의장의 발언에 '정파적 내용'이 담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 전체의 '대변인'(speaker)을 자처하여 민심을 정부에 전달한다는 국회의장의 나름 사명감을 한 번쯤 넘겨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국회의장은 국회의 의사일정을 관리하고 입법 과정을 총괄하며 원내 질서의 유지를 포함한 포괄적 권한을 갖는다. 그럼에도 대외적 위상이 미미하다. 우리 헌법은 국회를 행정부보다 앞서 규정한다. 입법, 행정, 사법의 순서가 민주헌법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선행 부처인 국회의 의장은 무언가 '직격(職格)'에 상응하는 국민적 의제를 주도하고 싶은 욕망을 품을 수 있다. 역대 국회의장들이 '개헌' 카드를 드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회의장의 당적(黨籍) 보유를 금지하는 국회법 조항(20조의 2)은 2002년 이만섭 의장 재직 시에 신설되었다. 입법부의 수장이 행정 수반의 '얼굴마담' 내지는 '낙하산'에 불과하다는 국민적 냉소를 불식하기 위한 입법 조치였다. 한마디로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장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 조항 덕분에 여당 출신 의장들도 나름대로 중립, 독자적인 행보를 걸을 수 있었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의 첫 행보가 다소 돌출적이었더라도 수용했어야 옳았다.

어쨌든 여와 야, 의회와 행정부 간의 '협치'는 시대적 요구이자 현실적 조건이다. 절대다수당이 없는 국회는 협치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연정' 실험은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내년 대선 이후에도 국회에는 현재의 구도가 유지된다. 협치 없이는 국정도, 의정도 불가능하다. 협치의 성패는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강경 일방통행 일변도다.

우병우 수석 문제로 정국이 경직된 상태다. 그런데도 야당이 주도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으로 판정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그것도 해외 출장 중에 전자결재로 매듭지었다. 정무수석은 물론 다른 어떤 채널을 통해서도 국회의 양해를 구하는 모양새도 갖추지 않은 것 같다. 반발한 야 3당은 해임 건의안을 제출할 모양새다. 극한 대립과 충돌이 우려된다. 새로 선출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메아리 없는 구애에 그치고 말 것 같다. 박 대통령의 눈에는 국정의 '파트너'가 없다. 오로지 지시하고 비판할 대상만 있을 뿐이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대통령은 청와대에 5년 동안 전세 든 세입자에 불과하다. 청와대에 있는 동안 부디 한 번만이라도 보여주시기 바란다. 대통령이 떠난 후의 나라에 어떤 협치의 꽃이 필 수 있을지 작은 시연(試演)이라도 보여주시기 바란다. 끝내 협치의 미덕을 보여주지 못하면 국민의 뇌리 속에는 몹시 실망스러웠던 대통령으로 오래 각인될 것이다. 모르면 모르되 그런 안타까운 일을 반길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