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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검찰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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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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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 교수직을 떠났지만 추억마저 버린 것은 아니다. 모든 선생이 그러할 테지만 옛 제자들의 소식에 기뻐하기도 마음 상하기도 한다. 기쁜 마음은 잠시지만 상한 마음은 오래간다. 당자로서는 억울한 사연도 있겠지만 들어줄 기회가 없어 평생 절연 상태로 마감하기도 한다. 실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 무수한 법조인 제자 중에 검사들이 언론과 대중의 지탄을 더욱 많이 받는 것 같다. 전관예우 비리도 검사 출신이 더 주목을 받는다. '어떻게 가르쳤으면' 그 모양이냐고 희롱조 비판을 쏟아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교수가 가르친 것은 '지식'일 뿐 품성이 아니다. 대학생의 품성 교육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가정교육과 초·중·고 과정을 통해 거의 굳어진 품성이다. 게다가 선생이라고 해서 품성이 좋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법대 선생치고 학생에게 대놓고 권력을 휘두르고 부정을 주저하지 말라고 가르치겠는가? 옛 제자의 불행한 소식을 접할 때면 과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떳떳할 수 있었을까, 억지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씁쓸하게 자문해 볼 뿐이다.

법률가는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는 직업이다. 그것도 대체로 불행한 일에 관여한다. 법이 사람의 불행을 덜어주기는 어렵지만 더해주기는 쉽다. 그래서 법률가는 운명적으로 세인의 존경과 감사보다는 원망과 비난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검사가 더욱 세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범죄를 혐오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무고한 사람은 괴롭히지 않고, 죄지은 자에게 합당한 벌을 주는 것, 그것이 검사의 직분이다. 돈과 신분을 가진 '상위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 '개돼지'를 구분하지 않아야 국민의 검찰이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검찰은 권한이 매우 강하다. 모든 범죄의 수사권과 공소권을 독점한다. 내부적으로 철저한 상명하복 관계에 서고 남다른 엘리트 의식에 넘치는 소수 검찰에 국가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법무부 장관도, 청와대 민정수석도 대대로 검찰의 몫이다. 국민 생활과 직접 대면 관계에 선 경찰은 모든 사건에서 검찰의 지휘 감독을 받아야만 한다. 모든 권력은 남용될 소지가 있다. 그래서 국민의 감시가 필요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다른 권력이 필요하다. 검찰은 형사사건에서 '국가'의 입장을 대변한다. 국가의 입장이란 정권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이다. 정권은 수시로 바뀌지만 국가와 국민의 지위는 바뀔 수 없다.

권력은 검은돈의 유혹에 약하다. 400여년 전 셰익스피어도 금전을 최고의 군인이라고 풍자한 적이 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패하지 않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난숙하다 못해 부패한 현대사회에서 자본의 위력은 만악(萬惡)의 근원이 되기에 충분하다. 개인적 치부의 목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공직자는 가장 비열한 범죄자다.

정권 초기에 검찰은 대통령의 시녀가 되기 십상이다. 한때 검찰을 풀어주었던 어떤 대통령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는 듯 청와대의 검찰 통제는 국정의 제1수칙에 가깝다. 그런데 정권 말기의 검찰은 미묘하다. '정권은 유한하다. 그러나 검찰 조직은 영원하다.' 검찰의 속내일 것이다. 이제 1년 반 임기가 남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러기에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 묘한 긴장과 이완의 기류가 엿보인다. 야당의 주도 아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설치 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검찰-경찰 수사권 배분 등 해묵은 검찰 개혁 의제가 다시 부각될 조짐이다. 새삼 경청해야 할 해묵은 과제다.

우리 사회는 꾸준한 선진화의 노정을 걷고 있다. 불만과 아쉬움 속에서도 밝은 미래의 조짐도 보인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세칭 '김영란법'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초 원안의 일부였던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규정을 회생시킨 것이다. 현실적 애로를 차치하고서라도 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의미는 크다. 청년 세대에 희망을 주는 '새 정치'의 단면이기도 하다. 나라의 경제력에 비해 청렴도·투명성이 현저하게 뒤처진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는 대한민국이다.

검찰 개혁, 맑고 밝은 미래 한국을 위해 절실하게필요한 국민적 과제다. 대다수 검사는 여전히 청렴하고 정의로운 사명감에 불타 있다. 특히 여성 검사들의 대규모 성장은 몹시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 신세대 검사들의 자부심을 위해서라도 검찰 개혁은 단행되어야 한다. 20대 국회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과제가 검찰 개혁이다. 정권의 시녀가 아닌 국민의 검찰을 만드는 작업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