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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난 인종주의자였다. 이젠 그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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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ISM
A boy holds a sign which reads "Racism stop" during demonstration of members of Muslim community and groups fighting discrimination against Muslims after Paris attacks in Poznan, Poland, November 29, 2015. REUTERS/Lukasz Cynalewski/Agencja Gazeta ATTENTION EDITORS - THIS PICTURE WAS PROVIDED BY A THIRD PARTY. THIS PICTURE IS DISTRIBUTED EXACTLY AS RECEIVED BY REUTERS, AS A SERVICE TO CLIENTS. POLAND OUT. NO COMMERCIAL OR EDITORIAL SALES IN POLAND. | Agencja Gazeta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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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8세 때는 화를 많이 냈고 틀릴 때도 많았다. 지금은 화를 덜 낸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쁘지만, 지금도 나는 틀릴 때가 아주 많다. 안타깝게도 분노와 부정확함이 섞여 내가 자랑스럽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수치를 느끼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지만, 내가 가졌던 믿음 중에 내가 지금 수치를 느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아주 분노했던 것은 우대 정책,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대한 우대 정책이었다. 18세 때 나는 의대에 원주민 학생들을 우선 입학시키는 것에 대한 반대 시위를 했고, 커리큘럼에서 원주민 관련 이슈가 지나친 비율로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반대 시위를 했다.

나는 내가 가졌던 시각을 생각하면 불편해진다. 지금 나의 시각은 다르다. 나는 내가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고, 어떤 근거로도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런 좋은 것을 열심히 반대했을까? 그건 인종 차별이었을까?

그 당시의 나는 인종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에 기반해, 나는 성적이 더 낮은 원주민 학생이 성적이 더 좋은 원주민이 아닌 학생보다 우선적으로 입학한다는 것은 불공평한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커트라인 바로 밑에서 잘린 지원자를 생각하며 화를 냈다. 내 마음속에서 그 한 자리는 원주민 입학생이 차지한 자리였다. 나는 내가 꽤 공정하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이득을 위한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내가 고른 의대에 높은 성적으로 합격했으니, 나 자신을 위한 건 아니지 않나?

이제 나는 내가 틀렸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두 가지 큰 실수를 했다.

첫 번째 실수는 그 일을 별개의 일로 본 것이었다. 모든 우대 정책은 그 정책이 해결하려는 문제에서 떼어놓고 별개로 보면 정말 불공평하다. 소방차가 거리의 집 열 채 중 한 채에만 물을 뿌린다는 것은 정말 불공평하다. 그 집에만 불이 났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소방서는 논란이 되지 않는다. 한 집에만 불이 났다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에, 소방서가 공정하다고 쉽게 믿을 수 있다. 불은 눈에 잘 띈다.

나는 18세 때 의대 입학생 선정은 그 전 해 4월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수십 년 전에 시작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불리함은 불이 아니다. 불꽃이 치솟지도, 열기를 내뿜지도 않는다. 원주민 학생들은 비원주민 학생들에 비해 12년의 정규 교육을 마치는 비율이 낮다(원주민 학생들은 절반 정도가, 비원주민 학생들은 약 80%). 하지만 당신이 졸업반 학생이라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눈 앞에 없는 것을 깨닫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불꽃이 없으니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비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인들에 비해 24배 더 많이 수감된다. 그 반대의 경우였다면 관심을 끌었을지 모르나, 이 사실은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수감되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로 여겨지며, 수감은 나쁜 행동에 대한 처벌에 불과하다는 단순한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분노가 거의 생겨나지 않는다. 열기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포함한 여러 불리함이 의대에 지원할 때도 따라온다. 예전에 내가 깨닫지 못했던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원주민의 불리함은 워낙 만연해 있어, 우대 정책이나 대안 입학 제도의 반대 압력이 없었다면 아마 원주민 의사는 굉장히 적었을 것이며, 의대에서 원주민들은 거의 대표되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이러한 불리함은 실력에 따른 순위가 사실은 실력에 따른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력, 행운, 불리함이 섞인 것이다. 성적이 낮은 사람이 능력이 덜하거나 입학 자격이 없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이제 나는 우대 정책에 대한 견해를 잘못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조치 하나를 별개로 떼어놓고 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문제를 무시하면 우대 정책이 불평등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인식하고 나면 우대 정책보다 약한 정책은 불충분해 보인다.

나는 내가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첫째는 우대 정책에 대한 나의 이해였다. 두 번째는 내 자신에 대한 이해였다.

나는 성적이 낮은 원주민 학생과 성적이 높은데 탈락한 비원주민 학생 간의 문제에서 내가 중립적 관찰자라고 생각했다고 잠깐 말한 바 있다. 나는 의대 입학에서 밀려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내 시각에 편향이 없다고 확신했다. 그건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테리 프래쳇 경은 '첫 번째 생각'은 본능적 반응, '두 번째 생각'은 반론, '세 번째 생각'은 처음 두 생각들을 지켜보는 생각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내 첫 번째 생각은 원주민 학생이 성적이 더 좋은 비원주민 학생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내 두 번째 생각은 '저 비원주민 학생이 나였다면 어땠을까'였다. 내가 떠올리지 못했던 세 번째 생각은 나는 내 자신을 비원주민 학생으로만 상상했지, 원주민 학생인 나는 상상해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 자신은 탈락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론상의 원주민 학생보다 이론상의 비원주민 학생과 나를 동일시했다. 그래서 내 반응은 무의식적으로 편향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에 내가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내가 그토록 방어적으로 반응했던 이유 중 일부는 나는 이 조치를 잠재적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았고, 잠재적 장점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 중 최소한 일부는 내가 생각하는 내 인종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그런 결론을 내렸으면서 인종 차별적이 아니라고 말했던 걸 돌이켜 보는 건 힘들다.

내 견해는 부드러워졌고 변했다. 의대를 다니는 동안 내 시각은 넓어졌다. (특히 원주민 현장 실습 때, 파 노스 퀸슬랜드에서 선택과목을 들을 때, 원주민 문제와 토러스 해협 제도 문제에 대한 열정을 가진 앤드류 맥도널드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넓어졌다.) 나는 이제는 원주민 의학 교육 관련 우대 정책은 단지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과거에 가졌던 견해들, 내 믿음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생각할 때 느껴지는 불편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실 이건 불편함 이상이다. 수치다. 사과한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AU에 게재된 글 I Was Once Racist. Now I Am Ashamed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