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관후 Headshot

촛불은 일상에서 쉬이 꺼지게 마련이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the

재작년 여름, 한 진보적 학자를 모시고 회의가 있었다. "날씨가 이렇게 더우니 오히려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되지 않아요?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 밤늦도록 있게 되니 말이에요." 네댓명의 비정규직 박사들은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개인연구실을 가져본 적이 없을뿐더러, 시간강사로 적을 둔 대학까지도 한시간 반 넘게 걸리는 서울 변두리나 경기도에 살고 있어서, 집 근처 공공도서관에 자리를 잡기 위해 새벽같이 나오는 어르신들과 매일 경쟁하느라 힘들다는 이야기를 막 끝낸 차였다.

그해 가을, 역시나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진보적 학술운동을 이끌어오신 선생님을 우연히 뵈었다. 선생님이 약간 꾸중하는 조로 물으셨다. "요즘 젊은 연구자들은 왜 이렇게 사회적 활동에 소극적이에요? 우리 때는 틈만 나면 같이 모여서 세상 이야기하고 그랬는데."

chair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낮은산)에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은행나무)의 저자 김민섭씨는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노하고도 광장에 나가지 않은 한 대학원생 K의 일화를 소개한다. 시국 선언을 하고 광장에 나간 자신의 지도교수가 실은 대학에서 '최순실'이기 때문이었다. 김민섭은 말한다. "K의 지도교수가 특별히 나쁜 인간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가 잘못된 일에 분노하고 행동할 줄 아는 보통사람이라고 믿는다." 다만 '주변으로 시선을 옮길수록 공감 능력이 오히려 퇴행'하고, '잘못된 구조 안에서 자신이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것을, 그래서 필연적으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관습이나 합리화'로 덮을 뿐이다.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레디앙)은 이 괴리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저자 이범연씨는 80년대에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위장취업을 해서 대기업에 들어갔다. 투쟁과 해고, 구속과 복직을 거듭하던 그는 이제 '귀족 노동자'로 불리게 되었다. 노동운동 활동가로 만났던 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결혼할 때는 많은 걸 희생하면서 어렵게 살아갈 줄 알았는데, 지금 보면 운동을 안 한 애들보다 더 잘살아.' 운동을 위해 대기업 생산라인에 왔고, 부당함에 항거하기 위해 복직투쟁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안온한 노후를 보내게 된 것이다.

이범연씨는 대기업 정규직의 보수화를 설명하면서 최저임금 1만원과 복지정책, 반값 등록금 투쟁의 사례를 든다. 많은 보수를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교육, 의료, 주거 부문의 복지는 기업복지의 형태로 쟁취했다. 자녀 대학 학자금은 단체협약을 통해 얻어냈기 때문에, 이들에게 반값 등록금 투쟁은 남의 동네 일이다. 노동자 연대는 거리에서만 존재한다.

<1987>은 큰 울림을 준다. 거리에서 시민들은 하나였다. 그러나 삶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삶에서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헬조선'을 맞이했다. 촛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촛불은 하나의 촛불이었지만, 또 모두 제각각 다른 촛불이다.

'촛불시민'으로 통칭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나는 종종 '촛불 광장에 나온 시민들과 나오지 못한 시민들'이라고 구분해서 썼다. 마음은 같았지만, 누군가는 광장에서 해방과 시민됨을 느꼈고, 누군가는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구분해야만, 광장에 나올 여유조차 없었던 시민들을 상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쉬이 꺼지게 마련이다. 올해 우리는 어디에서 촛불을 다시 켤 것인가?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