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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폐'와 잘못된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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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나서 한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한 끼 식사비가 3천원을 넘지 못했던 가난한 유학시절 동안 적극적으로 회피한 결과였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부모님은, 잠깐 다니러 온 사이에 유명하다는 불임치료 병원에 예약을 해 놓으셨다.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겨우 의사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곳을 잡아놓으신 정성을 외면할 수 없어서 건강진단이나 받는다는 심정으로 병원을 찾았다.

거기서 불임 부부들을 만났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으로 한 자릿수도 안되는 확률을 위해 시간과 돈과 몸을 희생해 가는 많은 부부들이 거기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틈만 나면, '불임 정당'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고 정치권과 언론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왔다. 논리적으로 비유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비유이기 때문이다.

황교익의 '사회적 자폐'가 논란이다. 〈수요미식회〉는 내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고, 황교익이 음식 문화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폐'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고, 앞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원래의 뜻과는 다른 비유적 표현인데다가, 디스패치라는 언론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도했다는 황교익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현상을 자폐에 비유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설령 황교익의 말대로 그것이 어떤 병리적 현상이라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특정 질병, 특히 사회적으로 터부시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에 비유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수사적인 측면이 있다고 해도 그렇다. '너는 병신'이라고 하지 않고 '병신 같다', 혹은 '사회적 병신'이라고 한들, 무엇이 크게 달라지겠는가.

'오래 전부터 인간 공동체에서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물을 섭취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데 모여서 정담과 공감을 나누면서 삶에서 필수적인 행위를 같이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혼밥에는 사회적 분업이 과도하게 강화되고, 학교나 학원, 회사에서 서로를 동료보다는 경쟁자로 혹은 갑을 관계로 인식하면서, 밥 먹는 시간과 공간에서라도 편해지고 싶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결코 바람직하거나 당연한 일로만 받아들일 것은 아니다. 이 현상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정도에서 그쳤다면 어땠을까? 그것이 황교익의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방송에서는 종종 의도가 지나치기도 한다. 편집이 안되는 방송에서 비유를 하다가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법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순수한 의도만을 강조하지 말고, 비유가 적절치 못했다는 점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황교익다운 뒤처리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