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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탄핵 판결의 근거가 되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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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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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탄핵 판결의 근거가 되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고, 여러 언론에서도 전문가들 역시 그렇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헌법에 명시된 성실의 의무는 규범적 판단의 대상이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헌재의 판단에 저는 동의합니다.

여기서 규범적 판단이란 정치적 판단을 포함하는 것이고, 또한 여기서 정치란 인민 주권이 확립된 나라에서는 모든 국민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일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판결에서 세월호 사건이 사법적 판단의 근거가 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유가족들께서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한 유가족의 말씀대로 생명권보다 다른 사유가 더 중요해서 세월호 사건이 탄핵의 사유가 되지 못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된 선고문의 문장을 다시 읽어봅시다.

"성실의 개념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추상적 의무 위반으로 탄핵소추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입니다."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성실의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였거나, 탄핵될 만한 수준으로 어긴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실이라고 하는 개념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개념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법적인 판단을 내리는 탄핵 소추의 직접적인 판단 대상이 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명백히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의무임에도 법적인 판단이 될 수 없는 성실의 의무를 판단할 주체가 법원이 아니라 다른 주체, 곧 헌법 1조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이 판결문은 담담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고문은, 사법적 판단에서 탄핵의 사유로는 세월호 사건이 채택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이 가진 한계를 밝히고, 다른 한편 탄핵이라는 사법적 판단에 이르게 한 규범적, 정치적 원인이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세월호 사건이었음을 역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법부의 판결이 있기 전에 이미 거리에서 '성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규범적, 정치적 판단에 따라 국민들에게 탄핵당했고, 여기서 성실의 의무가 적용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세월호 사건이라는 점을 그 재판관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이 내린 규범적 영역에서의 판단을 재판부로서는 감히 법적 영역에 포함시키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것이 재판부가 세월호 유가족을 존중하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법이라는 형식을 통해 여러분이 실제로 이룬 것을 승인할 뿐이며, 우리 스스로의 규범적 판단에 따라 이 판결이 내려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성실의 의무'를 잘 이행했는지의 여부까지 사법부가 법적 판단의 영역에 넣었다면, 우리 국민이 지난 몇 개월 간 거리에서 든 촛불은 규범적, 정치적으로 대통령을 사실상 탄핵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청원운동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선고문은 그래서 민주적 헌정주의에서 법이 관장하는 영역과 역할에 더해 그것의 한계를, 그리고 그보다 훨씬 넓고 깊은 정치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달리 말하면 이 선고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재판부의 판결이라는 법적 권력이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이 주축이 되었던 국민의 정치적 권력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준 것입니다.


관련 기사 |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선고문을 읽어보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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