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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교장의 꼰대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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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필

모두들 생활지도가 어렵다고 한다. 사고치는 아이들을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혹 생활지도를 열심히 하면 아이들이 바뀔까? 겉으로만 잘 길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의 분노와 반항심이 터져 나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아이들 내면의 힘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만수는 이른바 중학교 건달이다. 물론 중학교 남학생들이 다 건달은 아닐 것이다. 여기 이른바 범생이인 영호도 있다. 범생이들은 자신이 뭘 좀 안다는 티를 내는 성향이 있다. 만수가 말이 안통하면 주먹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영호는 '잘난 척'을 참지 못한다.
중학교 3학년 교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각 모둠에서 해결할 물음을 던진다. 만수는 모둠 친구들을 믿고 역시나 엉뚱한 답을 한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답을 찾아가는 재미난 과정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영호는 이 상황을 참지 못한다. 답이 뻔한 데 왜 또 빙빙 돌아서 시간만 낭비하느냐 싶다. 그래서 답을 즉시 말해버린다. 영호가 또 잘난 척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만수는 짜증이 확 난다. 막 째려보지만, 수업시간이니 어찌 하지는 못한다.
수업이 끝나고 만수가 영호를 조용히 복도로 부른다.
"야, 니가 뭘 좀 안다고 그 대목에서 꼭 나서야 되겠어?"
그런데 영호도 할 말이 있다.
"니가 뭘 모르면서 나서니까 한참을 돌아가야 되잖아?"
"뭘 모르면서 나선다고?"
만수 입장에서는 참을 수가 없다. 바로 주먹이 나가고 영호 이빨이 두 개 부러졌다. 아이들 사이에선 피(?)가 나면 판이 커진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이고 선생님들도 모이고 난리가 났다.
담임선생님이 만수를 데려갔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이 때 만수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1학년 때부터 뭘 좀 안다고 꼭 티를 내고 잘난 척하는 영호 때문에 짜증나는 게 많았고, 오늘만 하더라도 영호가 자기 이야기를 자른 것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영호가 쭉 꺼내고 싶은데, 담임선생님이 묻는다.
"왜 이빨이 부러졌는데?"
거두절미하고 이 질문만 던진다.
어? 그럼 1학년 때 이야기는 빼고, 오늘 수업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생각한 만수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한 이야기를 꺼내는데 담임선생님은 그의 말을 끊고 또 묻는다.
"그러니까 왜 이빨이 부러졌냐고?"
만수는 담임선생님의 반복된 '이빨' 이야기에 참을 수가 없다. 쌤한테 주먹을 쓸 수는 없으니, 책상을 뒤엎어버렸다. 담임선생님은 이제 손을 쓸 수가 없다. 학년부에서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나서는 것이 교장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만수를 교장실로 불렀다. 학생부장 선생님을 옆에 앉히고 교장실에서 기다린다. 드디어 만수가 들어온다. 만수가 자리에 앉고 난 후 3분 동안 나는 아무 소리도 안하고 그냥 바라만 본다. 만수는 점점 쪼그라든다. 속으로는 '야, 이거 안 되겠다. 1학년 때부터 이야기하지 말고 이빨 이야기부터 바로 해야 되나?' 생각하며 내 눈치를 쓰윽 살핀다. 올라갔던 눈꼬리가 살며시 내려가고, 긴장된 분위기에 맞춰 차분한 표정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먼저 학생부장이 목소리를 착 깔아서 시작한다.
"야~ 어떻게 됐는지 설명해봐!"
만수는 1학년 때부터 있었던 이야기, 오늘 수업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다 빼고, 바로 이빨을 어떻게 부러뜨렸는지 상황 설명을 두서없이 쭉 늘어놓는다. 듣고 있던 학생부장이 다그친다.
"육하원칙에 따라서 다시 설명해봐!"
만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설명한다. 교장은 담임 책상을 뒤엎은 건달이 어느 정도 숨이 죽었다 싶으니, 본격적으로 일장 훈시를 시작한다.
세상에는 멋진 말, 훌륭한 말도 참 많다. 교장이 한참 훈계를 늘어놓으면 만수는 요 대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안다. 다소곳이 고개도 숙이고, 깊이 반성하는 듯 긴 한숨도 쉬어가면서 분위기를 맞춘다.
정리가 된 듯싶으니, 학생부장 쌤이 만수를 데리고 가서 반성문을 쓰게 한다. 만수는 이거 대충 쓰다가는 몇 번을 다시 쓰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안다. 한 번에 끝내기 위해 학생부장 쌤이 무엇을 원하는지 머리를 굴리면서 마무리한다.
만수가 교실로 돌아간다. 울화가 치밀지만 그렇다고 교실에서 만만한 찌질이들에게 깽판을 치면 일이 다시 꼬일 게 분명하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저녁에 집으로 들어갔다. 이미 엄마는 담임선생님에게 소환통보를 받아 화가 나있고, 들어온 만수를 쥐 잡듯 한다.
만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다. 친구를 무시하고 놀리기까지 한 영호는 나무라지 않고, '이빨' 이야기만 하는 담임쌤, 게다가 교장까지 나서서 자신을 찍어 누르다니... 속상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나가서 동네 선배를 만나 담배도 한 대 얻어 피우고 술도 한 잔 걸친다. 그래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만만한 아이들 삥(?)도 뜯고 한 판 거하게 걸친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교장인 나는 학년부에서 감당이 안 되는 건달을 차분하게 만들어 반성문도 제대로 쓰게 하고 잘 해결된 것 같아 흐뭇해한다.
서너 달이 지났다. 만수가 더 큰 건을 터뜨려서 교장실에 끌려왔다. 이번에는 더 호되게 야단을 쳐서 확실히 잡아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에는 파출소에서 그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두 달 후에는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는 아이가 된 만수를 결국 자퇴시켰다. 2007년 여름까지 이렇게 자퇴시킨 학생이 무려 5명이 되었다.

그 동안 만수와 같은 아이를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됐다. 부모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애가 이렇게 된 게 다 부모 때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 '이 아이 때문에 전체 반이 망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5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그렇게 학교에서 쫓아내고 나니, 나는 또 다른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내가 어려운 아이들, 힘든 아이들을 깨우겠다고 학교를 시작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사고치는 아이와 차분하게 대화할 계획을 짰다. 내가 낚시꾼이니 사고치는 아이들을 두 명씩 2박3일로 충주댐에 있는 수상 좌대로 데려갔다. 물 위에 떠 있는 좌대는 작은 방도 있고 화장실도 딸려 있고 밥도 배로 배달을 해주기에 낚싯대를 내린 나에겐 천국이다. 하지만 녀석들 입장에서는 2평 조금 안 되는 좌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나랑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그리하여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대화 장소이며 회담장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내가 궁금했던 그들의 내면을 듣게 되었다.
교장실에 끌려온 만수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통박으로 대처하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어느 대목에서 눈꼬리를 낮추는지, 반성문을 한 번에 끝낼 궁리를 어떻게 하는지 등등.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말들이 아이의 자존심을 짓밟고, 눈치나 보는 쪼잔한 놈으로 만들었다는 것, 속으로는 열 받는데 겉으로만 끄덕끄덕하게 만들었고,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반성문이 아니라 항복문서 따위를 쓰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밖으로 나가서는 그 전보다 더 크게 깽판을 칠 수 있는 '동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을.
작은 사건을 점점 큰 판으로 키운 것도 나고, 결국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다고 쫓아낸 것도 바로 나였다. 지금도 그 아이들을 떠올리면 내 크나큰 과오에 울컥해 진다. 그것을 깨닫는 데 1년 반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보니까 아이들이 달리 보이게 됐다.
'요 대목에선 이놈이 뭘 생각 하겠다' 이런 게 읽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수'를 이해할 수 있게 되니까 어떤 아이가 사고를 쳐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다 싶었다.

이제 반성한 교장이 교장실에서 만수를 만나는 과정을 재구성해 보자.
사실 교장실에서 만수를 어떻게 만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동안 교장과 아이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됐느냐이다. 이미 교장이 자신을 이해하는지 안 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지 아닌지를 동물적 감각에 가까운 만수는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 말을 하는지는 전혀 상관없다. '이놈들 무슨 사고치고 다니나' 하고 째려보고 다닐 때 만수는 내 그림자만 봐도 눈 안 마주치려고 옆으로 슬그머니 피했다. 그런데 교장이 자신들을 이해하고, 마음이 통한다고 여길 땐, 운동장 반대편 끝에서도 자기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려고 '티'를 냈다.
마찬가지로 이 상황에서, 그러니까 이빨 이야기만 하는 담임선생님하고 한판 붙고 나서 교장이 부르게 되면 만수는 교장실로 달려가고 싶다.

교장실에서 교장이 "어떻게 된 거야?"라고 말하기만 하면 만수가 1학년 때부터 쌓인 이야기를 쭉 늘어놓는다. 그런 말들을 그저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끝이다. 이 때 감정코칭이나 비폭력대화법 등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번엔 일이 심각해서 부모님이 학교에 오셔야 해. 그냥 반성문 쓰고 때울 수 없을 것 같아. 부모님 입장에서 굉장히 곤란해 하실 것 같다."
이런 말을 나누면서 교장과 만수가 '함께' 부모 걱정을 시작한다.

만수보다 좀 더 심한 칠수라는 아이가 있다. 칠수가 지난번에 좀 더 큰 건을 터트렸다.
"요새 칠수 어떻게 지내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교장과 만수는 '함께' 반 분위기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한다. 만수는 이번에 자기가 좀 정신 차려서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3학년인데 이제 고등학교는 어쩌지?"
만수와 교장은 '함께' 만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제 만수는 비로소 현재의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막 나가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을 돌아본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만수는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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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우연이지만 그것을 성장의 계기로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대처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러나 실제 이 사건을 의미 있는 성장의 계기로 만드는 것은 그 동안 교장과 아이가 만들어 나갔던 '관계'이다.
그러나 관계가 형성됐다 해서 아이의 성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교사가 마음으로 전하는 공감과 위로, 격려, 자극의 메시지를 통해 아이가 자기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 분노, 슬픔과 마주하게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아이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내면의 힘을 키우게 된다.

나는 그렇게 그 아이들로부터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