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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제도보다 대학을 먼저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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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 hxdbz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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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제도 논란이 뜨겁다. 한편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이 특목고나 자사고 등 문화자본이 든든한 상류층 자녀에게 유리하므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인해 무너져가던 일반고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다수가 지지하는 '좋은' 대입제도를 만들면 우리 교육의 많은 난제들이 풀릴까? 즉 교육을 통한 계층의 대물림 현상이나 시민의식 없는 시민의 양산,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사교육비 부담 등의 문제가 해결될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부분 앗아갈 2030년대 이후의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길러줄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전망이 밝지 않다. 기업과 교육부의 요구에 끌려가면서 대학은 고시촌이나 '영혼 없는' 회사원과 다수의 임시직 노동자를 양성하는 곳으로 변모해왔다. 대학생들은 영어 토익점수를 따고 학점과 스펙을 관리하는 데 목을 매면서 정작 독서는 못하고 있다. 더욱이 '나는 누구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지금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거나 토론할 겨를도 없다.

이렇게 우리 대학이 지지부진하다 보면 세계는 '신'이 되길 꿈꾸는 실리콘밸리의 엘리트들이 이끄는 대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그들은 기술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종착지는 사피엔스의 종말이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지난 100년간 인류를 지배해온 신념이 무너지는 세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대입제도를 어떻게 바꿀까 궁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제는 바로 대학의 근본적 혁신이다.

대학 혁신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볼 몇몇 사례들이 있다. 학생들을 이 시대의 반역자로 키우겠다는 '건명원',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고 이론과 실무를 동시에 익히며 교수와 학생이 협력하는 대안대학 '지식순환협동조합', 동아시아의 지혜에 바탕을 둔 디자인학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등이다. 변두리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하여 공룡처럼 거대한 대학들에 가볍게 잽을 날리는 이 대안대학들이 5~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자극을 줄지 기다려진다.

물론 기존 대학 내에서도 힘겨운 도전들이 있다. 경희대는 2011년부터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운영해 대학 교양교육을 혁신하였다. 학과의 입문 코스로 운영하던 교양과정에서 인문·사회·과학을 통합하는 융합적 중핵교과, 시민적 역량과 실천력을 키우는 시민교과, 사유와 표현 능력을 키우는 글쓰기, 소통역량으로서의 외국어 등을 필수교과로 정해 운영하고 있다. 또 고려대는 염재호 총장 취임 후 상대평가, 시험감독, 출석체크 등을 폐지하는 3무 정책을 실시하여 대학 개혁을 위한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며칠 전 교육혁신을 이야기하는 어느 모임에서 유쾌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학자분이 자신과 30여년을 함께 사는 분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같이 사는 분이 연애기간 2년을 포함해서 32년째 다이어트를 연구하고 고민한다. 그런데 정작 다이어트는 하지 않기에 다이어트는 연구하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6개월 동안 된통 혼났다면서 대학교육의 혁신도 연구만 할 게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뼈있는 말을 던졌다. 이제 대학 혁신에 대해 말만 무성하게 할 게 아니라 경희대와 고려대처럼 작은 실천이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대학이 '죽은 시민의 사회'에서 벗어나 '사피엔스'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시민, 놀 줄 알고 피와 살이 통하는 인간을 기르는 사회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