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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건 여자들이 아니라 예비역 남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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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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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자유주의 페이지가 게시한 '92년생 김지훈'이란 만화를 봤다. 소설 '82년 김지영'의 '미러링'이라는데, 군대에 관한 남자들의 설움을 절절하게 호소(?)하는 내용이고, 본 사람이 많을테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군인에 대한 처우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건 군 가산점에 반대하는 여자들이 아니라 예비역 남자들이다. 이 사람들 기본 정서는 억울함이다. 돌아오지 않는 청춘 2년을 버렸다는 박탈감에 젖어 있다. 예전에야 제대 이후에도 삶의 타임라인이 순조롭게 이어졌으니 '군부심'을 부렸겠지만, 지금은 등록금 마련에 취업난에 내 집 장만에, 결혼도 쉽지 않고 겹겹이 문턱에 부닥친다. 그 사이 잃어버린 2년이 너무 아까운 거다.


고통의 대물림을 끊는 건 너무 억울하다.


군대에 관한 예비역들 발언을 가만히 들어보면 죄 "내 청춘을 돌려 달라"다. "나만 당할 수 없다", "여자도 군대 보내자", "(실효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아무튼 대학과 취업에서 군필자를 대접해줘라". 군 복무 중인 장병들 인권과 복지를 향상하자는 포지티브한 내용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장병 복리 개선해봤자 제대한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고통의 대물림을 끊는 건 너무 억울하다. "나만 당할 수 없다"가 아니라 나만 당하는 꼴이니까.

정말로 큰 문제는 군대에 관해 발언할 수 있는 '당사자'가 예비역들밖에 없단 거다. 현역 장병들은 부대에 갇혀 있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데다 단체교섭 같은 걸 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예비역 개구리 마크를 상처 입은 훈장처럼 달고 세상과 '여가부'를 향해 인정투쟁을 벌이는데, 정작 실질적 쟁점은 논외 되는 소모적 논의의 쳇바퀴만 돈다.


군복무 경험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물귀신 심리에 빠져 있어 벌어지는 일이다.


예비역들은 후배장병들에게 형제애와 연대의식을 발휘하지 않는다. "군바리가 빠져 가지고" "요즘 군대 편해졌다" "군대 안 갔다 왔으면 군대 말하지 마라"처럼 먼저 매 맞은 사람의 몽니로 일관한다. 하다못해 군대 사건사고로 현역 장병이 다치거나 숨질 때도 "저런 지옥을 참아냈지만 대접받지 못하는 나"의 설움을 투사하기 급급하다. 이게 다 군복무 경험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물귀신 심리에 빠져 있어 벌어지는 일이다.

'군필'이란 이력은 이미 대접받고 있다.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 "군대 갔다 오더니 사람이 달라졌다" 같은 속설은 병역을 마치며 얻는 평판 자원의 방증이다. 군 입대는 '남자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는 성인임에도 '어린애' 취급 받지만, 군대를 다녀오면 한 사람의 어엿한 어른으로 대접 받는다. 군필은 호모소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준 받는 자격이며, 성실함, 참을성, 사회성 같은 사회적 능력을 가진 주체로 간주되는 경력이다.


열악한 막사에 장병들을 몰아넣은 게 누구냔 말이다. 여자들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다.


한국은 공적 부조 시스템이 허약한 나라지만, 그래서 사적 부문이 그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하는 나라다. 각종 취업에서 군필자를 우대하는 건 저런 상징자본의 효과인 한편 군 경력에 대한 보상이다. 취업 시 군복무 기간을 호봉으로 가산하는 관행이 있을 뿐더러, 편의점 알바를 구할 때도 "군필자 우대"를 표기하고, 진보정당의 대선 후보도 공직에서 병역 면제자를 배제하겠다며 군복무 경험을 특권화한다. 한국사회는 공적·사적 부문에 걸쳐 예비역들에게 유무형의 보상을 주는 시스템으로 굴러왔다.

물론 이런 저런 사유를 막론하고 군 생활은 그 자체로 고되다.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연애도 공부도 못 하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게 왜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열악한 막사에 장병들을 몰아넣은 게 누구냔 말이다. 여자들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다. 남자들이 군복무 경험으로 뜨거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는 건 '남자기 때문에' 겪은 차별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고, 자신이 발 디딘 기득권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