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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맞이하면서 교육문화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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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승규(우석대 명예교수, 좋은정치디딤돌 대표)

어린이들이 스스럼없이 '바보멍청이'라고 한다!

지난주 어린이날을 맞이했다. 손주들을 다 볼 수 있었다. 아이들 셋이 놀면서 주고받는 말들에서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말이 있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제일 큰 아이가 두 동생들에게 변신하는 장난감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너희들은 이런 거 모르는 거야! 너희들은 바보멍청이야. 너희들은 몰라!" 하는 것이다.

아이들끼리 주고받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어린아이들이 함부로 동생들을 경멸하며 놀려댈 수 있을까 하고 놀랐다. 순간 나는 혼자말로 '학부모 교육이 필요해! 아니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교사교육이 필요해!' 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의 엄마인 내 딸에게, "ㅎ가 두 동생한테 뭘 모른다고 '바보멍청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요새 어린이집에서부터 그런 말을 다 써요!"라고 하면서 너무나 태연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반응이 또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게 우리 교육문화의 현실이다!

이 말은 다시 전날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손자가 '아파트 일층은 곰팡이가 나서 안 좋은 집이라고 친구들이 말하더라!'고 한 말과 연결되었다. 어린 아이들이 친구들이 살고 있는 집을 서로 비교하면서 비웃고 업신여긴다. 잘 모른다고 해서, '바보멍청이!'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 문화일까! 우리 사회의 교육과제다.

교직문화에서 '사람존중'을 생각해보자!

교직을 성직 노동직 전문직으로 보는 세 입장이 있다. 성직으로 보는 교직관에서는 교권이란 절대자를 대행하는 존재로서 교사의 권위는 만인에게 존경과 숭상의 대상이다. 성직으로 교직관이 등장한 시기는 지식과 정보가 소수에게만 개방되었으며 지식의 수명은 100년이 넘게 유지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교사는 엘리트로서 고급정보를 소유하고 이를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가리키는 일을 했다. 그는 뭔가 신비하고 완벽한 존재로서 학교안팎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노동직으로서 교직관에서는 평등이란 가치가 크게 부각되면서 노동조건보장을 주장하며 노동조합주의를 앞세운 교사운동을 우선시하였다. 전문직으로서 교직관에서는 성직관과 노동직관의 장점을 살려내 교육현상을 종합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강조된다.

성직으로 보는 교직관에서는 학생의 내면적인 면을 추상적으로 접근했다면 노동직으로서 교직에서는 교사의 노동조건과 교권보장을 강조했다. 그래서 학생의 삶을 우선하기보다는 교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운동이 전개되면서 상대적으로 학생의 내면적 삶이나 가치 등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하게 여기는 현상이 드러난다. 그런 반면에 전문직으로서 교직관에서는 교과교육에 관한 전문가적 소양과 미성숙한 학생의 내면적 계발에 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문화를 개선해 나가려는 특성을 드러낸다.

'스승의날'에 아이들을 다시 생각한다.

'스승의날'의 유래는 60년대에 강경 지역의 모 여학교 학생들이 병상에 계신 한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스승의 날을 정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그 학교에는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그런 운동의 결과로 80년대 초에 법률로 스승의 날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선택했다. 아마도 세종대왕이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스승으로 우리민족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발상은 아마도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컸기 때문이며 또 스승은 위대한 존재로 존경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스승의 날을 정하고 선생님을 모시고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하루라도 선생님의 은혜를 기리자는 큰 뜻이 담겨 있다.

교사의 날이 아니고 스승의 날이다. 교사는 누구나 쉽게 접하고 만날 수 있는 편한 분 같은데, 스승은 그와는 좀 달리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계시지만 좀 멀리 높이 존재하신 그 어떤 권위가 느껴지는 분이다. 스승의 은혜 노래 가사에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이시다'에서도 그러한 권위가 담겨 있다.

성직으로서 교사상과 노동직과 전문직으로서 교사상은 많은 차이가 있다. 스승이란 표현은 학생을 옆에서 돌봐주고 보살펴주는 친근한 선생님으로서 모습보다는 존경의 대상으로서 모습이 더 부각되어 보인다. 성직으로서 교사는 일방적으로 학생의 존경 대상인 반면에 노동직과 전문직으로서 교사는 일상적으로 쌍방의 교류가 더 강조되는 친근한 사람으로서 교사로서 역할이 더 강조되어 보인다.

성직으로서 교직관에서는 세속적인 활동을 지양하고 정신적 활동을 중요시 여긴다. 성직관으로서 교사에게 '사람존중'이란 가치는 성스러운 대상이다. 교사가 학생의 내면의 삶에 관해서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존중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큰 존재'에 의해서 주어진 가치를 지켜가는 대상으로서 '추상적 수준의 존중'이다. 이때의 '사람존중'이란 가치는 학생 내면에 관한 과학적 접근이 미흡했다.

반면에 노동직과 전문직으로 보는 교직관에서 교사는 성직자 아닌 일반직업인으로서 대우를 받는 존재가 된다. 권위주의 시대의 교사와 민주화 시대의 교사로 비유될 수도 있다. 성직관에 비해서 노동직관과 전문직관에서는 사람존중의 가치를 합리적 과학적 접근을 통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커지고 수평적 관계에서 학생을 이해하려고 하는 현상이 드러난다.

교육은 사람에 대한 '굳은 믿음'이 바탕이다!

현대 사회 교직에서 성직관과 노동직관, 전문직관의 세 입장이 공존한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가르치고 배우는 곳에는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교류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교사도 사람이고 학생도 사람이다. 교과를 가르치는 일이 교사의 몫이라고 강조하면서 정작 교사와 학생 간에 인간적 교류가 없다면 생생한 교육생명력을 잃고 만다. '사람존중이란 소중한 가치'가 경멸되고 있는 아이들의 행동을 누가 책임져야 할까?

모르는 것은 학습으로 채워질 수 있으나 사람을 경멸하는 행동은 사회 문화 차원의 과제다. 그런데 사람을 경멸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내가 나를 신뢰하지 못하다면 나의 재능을 키워낼 수 없다는 경험적 사실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이자 철학이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자신만의 고유한 빛깔과 향기가 내면에 숨어 있다. 교사는 이를 굳게 믿고 최우선으로 존중하고 키워내야 한다. 아이들의 내면세계를 깊이 존중하면서 살려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큰 국력이다!

글 | 강승규

국가발전과 학생의 내면 계발이란 양축을 균형있게 살려내는 교육이 실현되기를 바라며, 뒤쳐진 학생이 없는 학교를 만드는 일을 희망하며 학생 한사람한사람이 모두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제대로 찾기 위한 교육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교육학철학을 전공하고 가르쳤으며, 한국교육학회 이사, 우석대학교 대학원장, 전국사립사범대학장협의회 회장, 대통령자문교육혁신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고, 저서로 <나다움, 어떻게 찾을까!>, <학생의 삶을 존중하는 교사>, <교육의 역사와 철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