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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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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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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경선(방송통신대 헌법학 교수)

5월은 영어로 May다. 제우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여성이고, 헤르메스의 어머니였다 한다. 하늘부터 땅 그 어디를 둘러봐도 약동하는 생명과 넘치는 신록에 감격하면서, 신화 속의 마이아는 얼마나 싱싱하고 아름다웠을까 상상해본다.

5월은 그 첫날부터 힘찬 노동절로 시작한다. 이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뒤따르고 있다. 그래서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한다. 짝짓기로 이루어지는 가정은 생명체의 보금자리이자 번식의 본고장이다. 가정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사회생활의 기초단위이다. 기초단위이기 때문에 사회변화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 된다. 가정이라는 세포에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축적된 문화 DNA가 있다. 이 DNA는 생성되기도 쉽지 않지만,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좀처럼 변하지도 않는다. 가정의 형질 변화 여하에 따라 사회변화에 주는 파급효과는 엄청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가정은 변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가정은 그래도 급속히 변화한 것이 사실이다. 근대사 100년 사이에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다시 지금은 가정붕괴나 독신가족이 허다할 정도로 질주해왔다. 대한민국의 압축성장도 결국 가정의 변화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5월이라고 해도 특히 80년대 이후의 5월은 지금처럼 밝지 못했다. 저벅저벅 군화소리에 아스팔트를 긁고 지나가는 강철소리 난무한데 신록의 기쁨을 느낄 여유는 별로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좋아졌다. 민주주의와 산업화 양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는 국민들의 자부심이 봄볕을 향유하는 행복추구권의 지지대가 되었다. 특히 금년도는 지난 4.13 총선에서 국민의 힘으로 신의 한수처럼 기묘한 정치지형이 형성되었기에 그래도 즐거운 눈으로 5월을 향유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국민의 힘이 정치지형을 바꿔놓았듯이 문화지형도 더 빠르게 바꿀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가정의례를 보자. 가정의 문화와 전통은 고유한 관습이라서 원칙적으로 외부의 간섭과 지적이 자제되어야 할 영역이다. 각 가정마다 속사정이 있기에 이를 모르는 외부자가 함부로 왈가왈부해서 좋을 일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반론으로 가정의례에 대해서 논급해야 할 필요성은 존재한다. 가정이 가지는 사회에서의 의의와 중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의 변화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가정에는 가장 오래된 고래의 문화에서 봉건제의 문화도 혼재되어 있고, 이것이 외부 사회에 적잖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 해악을 미치는 요소 즉 헌법전문이 말하는 '사회적 폐습'에 해당하는 것은 제거해야만 한다. 이들을 방치하고, 외면할 때 과거의 중력이 점차로 커져서 사회발전을 저해하기에 이른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허례허식의 대표사례는 결혼식에서 나타난다. 군부정권시대에는 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강제로 허례허식을 줄이는 시도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강제로 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 허례허식은 어느덧 너무 많이 확대되었다. 허례허식이란 형식과 내용, 외피와 본질이 전도된 상황을 일컫는다. 감당할 수도 없는 비용과 의식을 불편을 느끼면서도 진행해야 한다면 이미 그것은 정도를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치스럽고, 낭비적인 결혼의식에 식상한 젊은이들이 이로부터 벗어나고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셀프웨딩을 시도하여,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에서의 과잉비용을 줄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례 없는 결혼식, 소규모 결혼식도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모두 변화를 알려주는 좋은 소식들이다.

모든 사회변화의 마지막 지점은 규범의 대체과정이 기다린다. 결혼식도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 규범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 그 중 하나가 결혼식에서의 '혼주' 개념을 바꾸는 일이다. 혼주는 혼사를 주재하는 사람으로 보통 신랑신부의 부(모)를 칭한다. 혼주는 전형적인 봉건 가부장제도의 잔재라 할 수 있다. 그래도 혼주제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결혼식을 부모가 치른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혼주는 법적 개념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부모의 결혼식장이 된다. 그래서 하객이 신랑신부의 결혼 축하객이라기보다도 반쯤은 부모의 지인들이다. 그러니까 결혼식 진행에 별로 관심이 없다. 부모와 인사하고 축의금을 내면 사실상 하객의 임무는 끝난다. 그래서 얼른 피로연장으로 가서 식사를 마치는 게 일이다. 황금주말이 이렇게 형식의 시간으로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사치의 문화는 답습되고 전염된다. 문화의 전염병은 사치의 경쟁으로 치닫게 되고, 결국 예식비용에 거품이 끼게 된다. 당연히 결혼문화에서도 양극화와 위화감이 촉진된다.

전통을 좋게 바라보면, 부모 마음에는 혼인이 아이들의 양육의 끝지점이라 생각되니까, 혼례식까지 치러서 자녀를 독립시켜야 한다고 이해된다. 부모가 혼인을 지배하기 때문에, 당사자 간의 의사에 의해서 성립된다는 혼인의 본질이 가려진다. 혼주는 혼인을 당사자 간의 약속보다도 가(家)와 가(家)의 합의가 더 우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여기에 가장의 권위와 책임, 가의 권력 등이 차세대 결혼식에 상속되기에 이른다. 이런 전근대적인 가정이 많은 여성들에게 결혼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비권력적 가정을 수립해야 한다. 말 그대로 사랑을 기초로 한 양성평등의 가정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의 본질을 찾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결혼의 주인은 역시 신랑신부이다. 이 개념을 기초로 한다면 초청대상자도, 결혼비용도, 식장의 내용과 분위기도 많이 바뀔 것이다. 잔뜩 끼었던 거품과 같은 비용도 반 값 이하로 빠질 것이다. 하객수도 적어지고, 모든 것이 소규모화 될 것이다. 규모와 비용이 작아지고, 줄어드는 대신 진심어린 하객들의 축하 목소리와 웃음꽃이 가득한 기쁜 축제의 장이 들어설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기초단위로서의 아주 소중한 가정이 출범하게 될 것이다.

글 |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헌법을 전공하고 있다. 헌법의 발전을 통한 한국사회의 미래를 특별히 생각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주제는 "영국과 미국의 노예제폐지 전후과정에서 나타난 법제도와 법문화의 중요성과 상호관계"를 밝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