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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합법적 혁명'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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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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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진택(마당극 연출가, 판소리 명창)

1. 바람(望)이 모여 바람(風)을 일으킨다

나는 지난 4월 13일 치러진 제20대 총선에 관련하여 '다시민주주의포럼'이라고 하는 단체의 집행위원으로, 총선 승리를 위해 야권연대를 통한 여야 1 : 1 구도를 만드는 일에 함께 했다. 정의당은 기본적으로 동참을 수락했으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을 야권연대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는 우리의 역량이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뜻밖에도 우리가 그렇게 염원했던 방향으로 태풍처럼 밀어닥쳤다. 국민의 힘이고 국민의 바람이었다. 바람(望)이면서 바람(風)이었다. 바람(望)이 모여 바람(風)을 일으킨 것이다. 국민의 집단적 정치의식이 이처럼 현명한 황금률을 만들어내리라고는 아무도 예측치 못했다.

며칠 전 있었던 '다민포' 총선평가 자리에서, 대다수 동지들이 총선 승리에 대한 기쁨을 누리면서도 '다민포'가 주도한 야권연대가 한 건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며 자괴감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에 나는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자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 제안을 국민들 스스로가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기성 정치권에 우리가 피눈물 나게 호소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목격한 우리 국민들의 염려와 바람이 임계점에 달하면서 투표장의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 우리는 진심으로 노력하였고, 헌신하였고, 그리고 성공하였다."

2. 이번 총선은 4.19가 5.16을 막아낸 쾌거

선거 전 우리는 새누리당이 적어도 180석 심지어는 개헌선인 200석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불리한 선거지형에서 야권이 분화(分化)되어 1여다야(一與多野) 구도를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박근혜 새누리당이 국회의석 180석, 200석을 차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요즘 젊은이들이 알고는 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선거를 통해 유신시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선거로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역설인가?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나치정권을 수립한 것처럼, 친일·분단·독재정권이 합법적으로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장기집권 토대를 구축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젊은 시절 박정희 유신독재·긴급조치를 겪은 세대인 나로서 어찌 걱정이 안되고 잠이 오겠는가?

그런데 다행히 총선 결과가 '박근혜 일당'('박근혜 혼자 좌지우지하는 당'이자 '친박·진박 운운하며 패지어 행세하는 무리'라는 뜻의 중의적 개념)의 참패로 나타났다. 국민 스스로 투표의 힘으로 수구세력의 독단과 전횡을 심판하고 유신정권의 부활을 막아낸, 가히 '선거혁명'이다.

나는 이 결과를 놓고 어렸을 적 겪은 1960년의 4.19 민주혁명과 그 다음해의 5.16 쿠데타를 상기해냈다. 이승만 정권의 노골적인 부정선거에 맨몸으로 들고 일어난 4.19혁명의 성과를 군홧발로 짓밟은 사건이 박정희 군사쿠데타였다. 그런데 그 피 흘려 항거하다 무참히 짓밟힌 4.19정신이 50여년이 지난 이번 총선에서 되살아나, 아버지 박정희의 유신독재 부활을 꿈꾸던 딸 박근혜의 선거쿠데타 공작을 일거에 퇴치시켜 버린 것이다.

1961년에 5.16이 4.19를 짓밟았다면, 2016년에는 4.19가 5.16을 막아내고 퇴치시켰다. 이 얼마나 역설이요 쾌거인가? 가히 '선거혁명'이자 '무혈(無血) 시민혁명'이 아닐 수 없다.

3. 투표 결과에 나타난 복잡한 민심

1)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평가는 한마디로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특히 서울·경기 수도권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어 집권여당 의석이 과반 미달로 떨어졌다. 자신들의 안방이었던 대구와 부산에서도, 자신들의 텃밭이었던 강남과 분당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는 특정지역과 계층에 오랫동안 고착되어온 '묻지마 여당지지'가 이제는 철회되고 있다는 징조이며, 망국적 고질병인 영호남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2) 그 다음 이번 총선에서 예상 밖의 결과는 호남지역의 맹주가 더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그리 간단치 않은 바, 한번 생각을 열거해 보자.

- 호남지역에서는 이 지역의 실질적 '여당'이랄 수 있는 더민주당의 무책임하고 안하무인격인 태도에 진즉 염증을 느끼고 경고를 보내고 있었던 바, "그만큼 전폭적으로 밀어줬는데도 왜 아직 정권 교체를 못하고 있느냐"는 불만과 질책이 지지 철회로 나타난 것.
- 더민주당을 문재인과 친노세력이 장악하게 되면서 호남이 무시되거나 홀대 당한다는 느낌을 점점 더 갖게 되었으며, 거기에 야권 내 유력 대권주자인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등이 모두 영남 출신이라는 점에 뭔가 미덥지 못하고 불편한 마음이 생기게 된 것.
- 그러던 중 안철수라는 유망한 정치신인이 뒤늦게 독자신당을 추진함으로써 더불어민주당에 경고를 줄 유용한 카드로 급부상하였고, 거기에 광주의 천정배와 전남의 박지원, 전북의 정동영 등이 가세함으로써 오래된 민주당 정통성의 명분을 더하게 된 것.

3) 무엇보다 이번 총선에서 유의해야 할 놀라운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이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합해 원내 제1당이 되었다는 사실과, 국민의당이 정당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참으로 다행한 결과이긴 하나, 이를 놓고 각자 해석이 분분한지라,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한다.

- 이번 선거는 '무슨 짓을 해도 새누리당만 찍던 사람들과 아무 일을 안해도 민주당만 찍던 사람들 중 일부가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전국적으로는 새누리당 지지자 중 꽤 많은 비율이 국민의당을 찍었고 호남에서는 민주당 찍던 사람들 중 다수가 국민의당으로 옮겨갔다.

- 호남지역은 새누리당 지지율이 낮아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중 어느 쪽을 택해도 무방하되,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漁父之利)가 될 것을 우려한 야권 지지자들이 후보투표는 더민주당에, 정당투표는 국민의당과 정의당·녹색당에 찍는 교차투표를 해내었다.

- 단,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수도권을 석권하고 원내 제1당이 되었음에도 소중한 기반세력인 호남의 지지를 잃었다는 사실이 난감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국민의당으로서는 호남이라는 지지기반을 확보했음에도 수도권에서 단 2석 밖에 얻지 못한 사실이 뼈아플 수 있다.

4) 그런데 민심은 이처럼 투표 결과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기실 어딘가에 숨어있기도 하다. 4.13 총선 결과를 놓고 거기 숨어있는 민심을 찾으라면 결국 "내년 대선에서 승리해서 정권을 교체해 달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총선 민심은 우선 박근혜 수구정권을 끝내달라는 의사를 표출하였다. 그런데 그 대안이 더불어민주당만으로는 어렵고, 문재인에게만 기대할 수도 없다는 발신으로 보인다. 한편 국민의당에 새로운 기대를 하면서도, 과연 안철수 혼자 힘으로 될까 하는 우려가 남아있는 것 같다. 드러나지 않은 총선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이든 국민의당이든,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좀 더 두고보자는 유보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겠다.

4. 총선 '야권연대'는 국민 스스로 이루어낸 것

지난 총선 과정에서 '다시민주주의포럼'이 제안한 여야 1 : 1 구도를 위한 '야권연대'에 연대의 주축이랄 수 있는 두 세력,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도리어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표는 테러방지법에 관련한 국회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종지시키면서 돌연 국민의당에 '야권통합'을 제기함으로써, 그나마 조금 열려있던 '야권연대'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당은 '통합'과 '연대'의 차이에 대한 숙고 없이 '야권통합'이란 말만 나오면 피해의식이 먼저 발동하여 우리가 제안한 '야권연대' 논의를 시작부터 거부하였다. 심지어는 지역후보간에 자율적으로 연대 논의가 진행되는 것마저 불합리한 이유를 들어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선거 결과가 뜻밖에 좋게 나오자 마치 야권연대는 애초부터 필요 없었다는 듯이, 야권연대를 끝까지 거부하였기 때문에 승리를 얻었다는 듯이 자만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야말로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승리는 '야권연대'를 거부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기실 '야권연대' 때문에 얻어진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야당들의 연대논의를 거부하는 행태에 참다못한 국민들이 스스로 투표장에서 '연대'를 과감히 실현시켜 내었기 때문이다. 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박근혜 새누리당의 압승을 막아야 하므로 어느 당 소속이든 당선 가능한 후보에게, 확연히 훌륭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고 정당투표는 자기가 원하는 정당을 별도로 선택한 것이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미적거리거나 거부하였지만, 국민들이 스스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야권을 연대시킨 것이다.

이런 가정은 어떨까? 이번 총선에서 야당들이 '다민포' 등 민주시민단체의 제안을 받아들여 '야권연대 단일화'를 제대로 성사시켰다면 선거 결과가 이보다 훨씬 좋지 않았을까? 안산 단원에서의 패배를 보라.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지역인 그 곳에서 야권 분열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이 얼마나 더 한이 맺히게 되었는가? 또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팽팽히 표를 나눠갖는 통에 간발의 차이로 새누리당에게 어부지리를 안긴 지역이 적지 않은 바, 각 정당의 세력과 지지도를 충분히 반영한 '야권연대 단일화'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야권이 180석 나아가 200석 이상을 확보하고 새누리당이 100석 이하로 쪼그라드는 완벽한 '선거혁명'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5. 야권 3당은 지금 당장 '연대정치'를 시작하라

총선 승리 후 터져나오고 있는 국민의 요구는 무엇보다 집권여당의 실정들을 하루빨리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이 저질러놓은 실정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인 바, 복지관련 대선 공약의 일방적 파기, 특권재벌경제 비호와 경제민주화 실종, 세월호 참사 대처 실패와 진실 은폐, 메르스 사태 등 국민생명안전에 대한 무능 대처, 노동법 개악과 불평등의 제도화, 역사교과서의 편향적 국정화 추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만적 합의,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무모한 외교 안보정책, 국민 감시를 일상화하는 테러방지법의 제정 등 실로 무능하고 포악하고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실정의 연속이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다당제 국회가 제대로 작동해야 할진대, '연대'와 '연합'이야말로 '다당제' 성립의 기본 전제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국회 167석의 의석으로 지금 당장 '연대정치'를 시작하기를 촉구한다.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갖가지 폐해들을 낱낱이 파헤쳐 산적한 민생문제를 시급히 해결해 나가기를 온 국민이 바라고 있다.

6. 향후 대선에서 '야권 후보단일화'는 필수조건이다

2017년 대선과 관련하여 항간에 벌써부터 '3자필승론'이라는 주장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아마 국민의당으로부터 흘러나온 선거전략인 듯 싶은데, 참으로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3자필승론'의 유포자는 아마도 이번 총선에 안철수 대표가 출마한 노원병 선거구의 투표 결과를 대선에 대입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확실한 주장인지는 다른 지역 사례들을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안산 단원의 결과는 물론이고, 전남 순천과 전북 전주을에서도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당선하였다. 중차대한 대통령 선거에서 불확실한 도박을 할 생각을 추호도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1987년 '4자필승론'이라는 감언이설에 혹하여 대선을 그르치고, 6월항쟁의 피어린 성과를 전두환·노태우 광주학살 군부독재자에게 헌납한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선거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합법적 혁명'의 길이다. 우리 국민은 내년 대선에서 확실한 승리로 정권교체라는 혁명이 도래하기를 염원한다. 확실한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대통령선거에 '결선투표'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결선투표'는 선거연대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자기네에 불리한 결선투표를 절대 찬성할 리 없을 터인즉, 우리는 반드시 '대선후보 야권 단일화'를 준비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대선승리를 쟁취한 후에는 새누리당 수구세력을 패퇴시키고 정계개편을 함으로써 합리적 보수(국민의당), 개혁적 중도(더불어민주당), 온건한 진보(정의당)의 바람직한 다당제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글 | 임진택 (林賑澤, Jin-taek Lim)

연극 연출가 - 한국 전통연희에 바탕한 '마당극'(Open Theatre)의 창시자
대표작품 : 마당극 <밥>
판소리 명창 - 옛판소리가 아닌 새로운 창작판소리의 대가
대표작품 : 판소리 <백범 김구>, 판소리 <오월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