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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유목민제국사와 동양평화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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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XI
JIM WATSON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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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한반도 주변 정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미·중 정상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살펴보면 위기의 징후가 뚜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 중,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2일 중국 관영인 환구시보는 사평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만을 타격한다면 중국이 군사개입을 하지 않겠지만, 한·미가 38선을 넘어 북한을 전면 공격한다면 군사 개입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미 공격에 따라 북한도 서울지역에 대한 보복성 타격을 가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시진핑 발언에 대해 파문이 커지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발언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이 우려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국 국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고, 미 백악관은 21일 "우리는 한국이 수천 년간 독립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We know well that Korea has been independent for thousands of years)고 입장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왜 미·중 정상회담 자리에서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얘기했을까? 이 배경에 대해 주진오 교수(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의 해석을 참고해보자. CBS(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주진오 교수는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얘기가 나온 건데 저는 그것이 중국 측이 말하자면, 미국이 만약에 북한을 공격한다면 그냥 자기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렇게 이해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22일 중국 환구시보가 내놓은 중국의 군사개입노선의 입장과도 연결된다.

이 같은 미·중 정상들의 언급들은 머지않은 시기에 한반도 주변에서 미·중의 패권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음을 예고한다. 정치·경제적 양극화, 진영논리로 홍역을 앓으면서 국론분열로 통합력이 약화된 현재의 대한민국은 미·중의 패권전쟁을 막아내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속수무책으로 전쟁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중국의 중화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 그리고 북한의 핵수령주의 사이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놓고 벌이는 진보 대 보수라는 진영구도를 넘어, '한국의 생존과 번영 전략'의 한 방법을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동북공정과 한족 중심의 중국사 왜곡 등 역사전쟁으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의 패권주의에 맞서는 방법으로, '동아시아유목민제국사'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시급히 정립하여 전국민이 토론하고 교육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국내정치를 놓고 싸우더라도 미국의 패권을 위해 대외정책에서는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것처럼, 우리 정치권도 친중이니 친미니하는 사대주의 추구용 색깔론(주적논쟁, 송민순 회고록 파문) 등으로 분열하지 말고 실질적인 초당적인 대외정책안을 만들어 대처할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중국사(中國史)인가? 수천 년 동안 중국대륙엔 수많은 나라가 일어나고 없어졌다. 진시왕의 진(秦)나라의 음(音)에서 '차이나(China)'가 유래된 이후, 어떤 나라도 이름을 중국이라 부르지 않았다. 중국은 없다. 있다면 상상 속의 나라(A Nation of Imagination)일 뿐이다. 1912년 '중화민국'의 탄생으로 시작된 '중국사'는 100년이 채 안된다.

유장근 교수가 쓴 "현대중국의 중화제국 만들기"에 의하면, 한족 중심의 중국사는 '청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현대의 중화제국'이라는 것이다. 중국이란 국호로 불린 적이 없는 중국이 다른 민족사를 한족(漢族)의 변방사로 흡수하여 중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즉 작금의 중국사란 다름 아닌 한족에 의해 만들어진 주변 민족의 '정복사'이자 '식민지사'로 보인다.

중국정부에서 진행된 역사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스키야마 마사아키 교수가 쓴 "유목민이 본 세계사"를 참고하여, 한족중심의 패권주의적 '중국사'가 아닌 '동아시아유목민제국사'를 새롭게 정립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다. 중국 이전의 통일 왕조 중에 농경민 출신의 순수 한족(漢族)의 왕조는 한(漢)·명(明)·송(宋) 삼국에 불과하다. 진(秦), 수(隨), 당(唐), 원(元), 청(淸) 등 통일왕조는 유목적 전통을 가지고 있거나 북방 유목민이 세웠다.

중국이전의 동아시아제국을 만든 것은 한족이 아닌 그들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오랑캐들이었다. 중국 땅에는 후한부터 당까지 무려 33개의 나라가 피고 졌고, 그 중 후한이 196년으로 가장 오래갔고 200년 이상 지탱한 나라는 없다.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은 투르크 몽골족인 서융이고, 5호16국을 세운 것은 흉노족이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선비족이 세웠고 요, 금, 원나라는 거란족, 여진족, 몽골족이다.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북방 민족 사이의 쟁투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 분열의 시기에 북방 민족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해 패권을 다투었다. 중국의 한족 역사 2000년을 보면 한족이 북방의 기마민족에게 지배당한 '기마민족의 식민지'로 산 것이 1100년이나 된다. 전체 역사의 55%를 북방의 기마민족인 선비, 돌궐, 말갈, 여진, 만주족에게 굴욕적 통치를 당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자긍심이라 할 수 있는 베이징 자금성의 주인은 한족이 아니라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보다 우수한 것은 민주주의를 경험한 덕성있는 시민이 있다는 것이고, 민주공화국이란 가장 탁월한 정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의 평화안정과 공동번영 및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서는 안중근의사가 꿈꾼 동양평화론을 근거로 한·중·일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동아시아연방제국으로 이행할 수 있는 문명규범과 담론을 생산하고 공급할 필요가 있다.

동양평화론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서양의 침략 속에서 동양이 공동 대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탄생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한ㆍ중ㆍ일 삼국이 공용 화폐를 발행하고 공동 군대를 창설하는 등 공동체를 결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고 제안했다.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작품으로 많은 의의와 함께 한계도 가지고 있다. 이 한계를 새롭게 채우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몫이다. 동아시아의 평화, 번영 및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정치권과 국민이 분열과 대립을 중단하고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안에 대해 에너지와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