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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수렴이 없는 좌우극단의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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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문재인 청문회로 전락 - 의견수렴 통해 개선점 찾아야

KBS가 주최한 대선 후보 2차 TV토론회가​ 19일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본도 없이 진행되는 스탠딩 토론회를 도입하여 5명의 후보자 간 난상토론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로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많다. 토론이라기보다는 4명이 1등하는 1명을 몰매질하여 '문재인 청문회'로 만든 부작용을 노출했다.

관계자들은 국민들이 이번 토론회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효율적이고 성숙한 토론이 되기 위해서 보완사항은 무엇인지에 대해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개선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성숙한 토론회를 기대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관전평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결론적으로 이번 토론회는 지금의 국민여론 지형인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를 반영하지 않는, 민심과 거리가 먼 '중도수렴과 숙의가 없는 좌우극단의 토론회'였다.

즉, 이번 토론회는 중도층과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중도수렴하려는 문재인-안철수 후보에 맞서 중도수렴을 거부하는 좌우 극단의 심상정 후보, 유승민 후보, 홍준표 후보의 거센 반발이 돋보인 토론회였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선명성과 이념성으로 무장한 좌우 극단의 집중공격을 받아 상충성과 종합성에 기반한 신중한 태도를 해명하거나 방어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중도노선을 부각하는 데 어려움을 보였다.

우측 극단에 서 있는 홍 후보와 유 후보는 여론조사 양강구도로 1·2위를 다투고 있는 문 후보와 안 후보를 '안보관'과 '색깔론'의 잣대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좌측 극단에 서 있는 심상정 후보 역시도 자신의 투철한 '좌파적 진리관'의 잣대로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중도적 정책노선에 대해 사상검증을 시도했다.

홍 후보는 문 후보에게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들이댔다. "대통령이 되면 국가보안법 폐지할 거냐"는 질문에 문 후보가 "찬양, 고무 조항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하자 홍 후보는 "그럼 폐지 안 하겠다는 말이냐"고 재차 확인했다.

유 후보는 문 후보에게 "북한이 주적인가"라고 물었다. 문 후보는 "'주적' 같은 표현은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며 "국방부는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유 후보는 왜 주적에게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냐고 계속 따졌다.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심 후보는 문 후보에게 "전략적 모호성은 평론가의 언어이지 정치인의 언어가 아니다. 문 후보가 눈치 보기를 하는 것은 강대국의 먹잇감이 되기 좋은 태도"라고 몰아세웠다. 문 후보는 이에 대해 "고도의 안보 사안에 대해선 전략적 신중함이 필요하다. 차기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 미·중과 충분히 합의해 안보와 국익을 다 얻어내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번 토론회가 '문재인 청문회'로 전락한 배경에는 좌우 극단의 이념적 진영논리가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작동은 그동안 대안으로 구두선처럼 주창돼온 중도실용노선과도 배치된다.

진영논리는 정치권이 국민의 실생활과 상관없는 공허한 이념을 선동함으로써 민생을 돌보지 않고, 경제적 양극화를 해결하는 데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어 지난 20대 총선에서 이미 국민의 거센 심판을 받은 바 있다.

선거가 숙의민주주의의 장으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후보 간, 후보와 유권자 간 충분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선거과정에서 주요 정책과 비전에 대한 국민적 토의와 합의과정 없이 후보가 당선되어 정부가 구성된다면, 선거 이후 정책에 대한 정당들의 의견충돌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교착에 빠지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중도수렴노선은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운영과 조응한다. 다운스의 '중위투표자정리(median voter theorem)'에 의하면, 유권자의 이념 분포가 중도수렴의 양당체제를 취할 때 비교적 온건한 이념성향을 지닌 정당들이 정책대결을 벌이기 때문에 누가 집권하든 집권정부의 정책은 국민 대다수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안정된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그런데 왜 좌우 극단의 정당들은 이념적 선명성을 고수하면서 반대로 행동하는 것일까?

다운스는 정당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 중도수렴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면서도 중도수렴을 거부하는 좌우의 극단적인 '협박정당'이 결성되어 전략적 극단주의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게 될 경우, 협박정당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대정당 혹은 더 나쁜 정당에 선거 승리를 안겨주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아마도 이런 협박정당의 사례는 지난 18대 선거에서 통진당 이정희 후보의 '싸가지 없는' 발언이 보수층의 결집을 도운 경우이다.

TV토론회가 숙의민주주의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자와 후보자들이 토론(deliberation)의 목적이 논쟁(debate)과 달리 진리를 독점하여 타인을 설득하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의견에 반응하는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여 자기 의견을 성찰하거나 변형함으로써 상대와 공동성찰을 즐기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아주경제에도 실렸습니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