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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같은 대통령을 다시 뽑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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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상호비방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왜 선거만 하면 이 모양일까? 문득 조용필의 노래 '그 겨울의 찻집' 가사 중,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최근까지 벌어진 후보자들 사이의 네거티브 캠페인과 흑색선전 그리고 프레임 전쟁을 보면서, "내가 막장 저질 네거티브 보려고 그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었을까? 자괴감이 든다"고 한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4월 15~16일 후보등록을 기점으로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5월 9일 투표일까지 불과 22일 남았다. 과연 우리 국민들은 탄핵으로 쫓겨난 박근혜 같은 대통령을 다시 뽑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시민들은 대선의 성격을 '벚꽃대선'이나 '장미대선' 아닌 '촛불대선'으로 명명하자고 요구했지만 그에 걸 맞는 정치권의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보들의 정책실종 사태는 박근혜 후보 부실검증과정이 초래한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51%의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일찍이 박근혜-최태민-최순실 관계의 부적절함을 알면서도 미필적 고의로 불량품인 박근혜 후보를 공천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은 정당의 후보공천과 검증 그리고 유권자의 선택이 잘못되면, '정부실패'와 '정치실패'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선거과정이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의 이상처럼 후보자 간, 그리고 후보자와 유권자 간에 충분한 토론과 숙고 및 합의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슘페터가 말한 대로 선거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경쟁하는 척, 쇼를 하는 '과두제적 요식절차'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물론 탄핵으로 인해 급조된 선거라 정책검증을 할 충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정책경쟁을 회피하는 것은, 세금으로 대통령의 국정정책과 비전을 구매하거나 양쪽을 교환해야 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의받기 어렵다. 정책과 비전 없는 후보는 능력 없는 후보로서 불량품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검증과 숙고가 없는 선거는 결국 공공선택이론가의 주장처럼, 정책편익은 51%의 다수파들이 독점하는 반면 비용은 49%의 소수파들이 부담하게 되는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자원배분의 의사결정을 막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농단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책에 대한 숙고가 없는 선거는 자율성을 지닌 시민적 유권자보다 재벌과 같은 응집력이 강한 이익단체들의 사익추구적인 이익이 과대 대표되거나 과다 투입되어 정경유착, 이권담합(로그롤링과 포크배럴), '관피아' 등과 같은 지대추구자의 기승을 부추기고 결국 정부와 정치의 공공성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또한 선거과정에서 주요 정책과 비전에 대한 국민적 토의와 합의과정 없이 후보가 당선되어 정부가 구성될 경우, 선거이후 정책에 대한 정당들의 의견충돌로 국정운영이 교착에 빠지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가 숙의민주주의의 장으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후보 간, 후보와 유권자 간 충분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대화와 토론은 양자 간의 신뢰를 높여준다. 이를 위해서 후보자들은 정책토론회에 만전을 기하고 유권자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정책경쟁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는 여론조사의 추세를 볼 때, '문재인 대세론'이 무너지고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 중 누가 더 중도, 중도보수층, 무당파의 전략투표를 받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누가 더 많은 중도층 흡수를 위해 유권자들의 선호, 이익, 정체성을 변형하여 새로운 중도층을 만드는 "트라이앵귤레이션 전략"(triangulation·삼각화)과 충분한 토론이 투표로 연결되는 "숙의투표"(deliberative voting)를 사용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 된다. 트라이앵귤레이션은 좌우와 단순한 중간 지대를 넘어선, 통합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삼각형의 윗 꼭짓점 자리를 선점한다는 개념이다.

대선 후보자들은 일방적인 주창자가 아닌 토론자로서 안보이슈는 물론 양극화 극복, 청년실업, 임금격차 해소 등 민생정책을 놓고 국민과 토론해야 한다. '헬조선론'과 '흙수저론'으로, 좌절감에 빠진 청년들을 구하는데 올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년실업의 원인이 '저임금의 값싼 일자리의 부족'이 아닌, '고임금의 좋은 일자리 부족'에 있다는 것을 직시하여 엉뚱하게 '값싸고 열악한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이 아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별부터 해소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 해답으로 일본의 아베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연대임금제"에서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 청년실업의 문제는 '일자리부족' 문제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부족'의 문제이다. 어느 청년이 대기업의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해놓고, 비정규직 임금을 주는 회사에 취직하고 싶겠는가?

이 글은 경희대대학주보에도 실렸습니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