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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함성 | 붕괴와 건설의 기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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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GEUN HYE
Kim Kyung Hoon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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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제 시국특집 14회
대통령의 과오로 국정이 마비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오늘의 우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되 나라의 미래를 밝히 열고자 국민의제가 탐조등을 비추는 기획특집을 마련합니다.

글 | 조 민(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박 대통령의 날개 없는 추락

박근혜 대통령의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 지금 박근혜의 권좌 아래서 봉건시대에도 발생하기 힘든 헌정사상 초유의 국기문란과 국정농단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분노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박정희의 세습 유훈통치는 '혼(魂)이 비정상적인' 그의 딸의 추악한 막장 드라마와 함께 마침내 피날레를 장식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지난 26일 전국을 뒤덮은 사상 최대의 190만 촛불은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세계는 농부, 승려, 대학생, 심지어 청소년들까지 참가한 촛불집회와 평화적인 시민혁명에 놀라움과 찬사를 쏟아냈다. 탄핵이든 하야든, 박근혜 정권의 붕괴는 이미 카운터다운에 들어갔고,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게는 정치적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시민혁명의 좌절: 색깔혁명

민주주의의 독특한 표출인 시민혁명은 제도권 정치의 한계와 작동 불능 상태에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대개의 시민혁명의 경우 안타깝게도 해피엔딩의 사례는 아주 드물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3의 물결'의 원조격인 필리핀의 시민혁명과 21세기 초입에 나타난 비폭력 시민저항 운동인 '색깔혁명'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리핀은 두 번에 걸친 시민혁명을 경험했다. 1986년 2월, '노란 리본'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부각시킨 피플파워로 마르코스의 독재정권은 무너졌고 아키노의 민주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아키노 정권은 민중의 기대를 외면하면서 전통적인 지배 엘리트층의 전면 복귀의 길만 터놓았다. 2001년 1월, 빈민 출신의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면서 정치가문, 재벌, 천주교, 군 고위직 등의 지배집단 연합은 군중을 업고 탄핵으로 몰아붙여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아로요 정권 역시 더욱 극심한 부정과 부패로 얼룩졌다. 파워엘리트 내부의 정권교체 수준에 불과했던 필리핀의 시민혁명은 그야말로 '죽 쒀서 개주는 격'이 되고 말았다.

2003년 11월 그루지아에서 일어난 '장미혁명'이 체제전환을 이룬 구(舊)사회주의 국가의 시민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과거 소련 외무상을 지냈던 세바르드나제 대통령 정권과 그 일가들의 부정부패에 항거한 시민운동은 마침내 대통령 퇴진을 끌어냈다. 그러나 장미혁명 이후에도 정치 불안이 지속되었고 민주화는 거듭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4년 11월의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과 2005년 3월의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튤립(레몬)혁명'은 정권교체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의 독점과 부정부패를 개선시키지 못했다.

한편 결이 좀 다르지만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발생한 '재스민 혁명'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곳곳에 민주화 시위를 자극시켰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킨 '아랍의 봄'은 폭동과 서방의 군사적 개입으로 피로 얼룩졌다. 그럼에도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와 민중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곧 잊혀졌다.

시민혁명의 모델: 벨벳혁명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시민혁명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을 찾을 수 있다. 1989년 11월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벨벳혁명(신사혁명)이다.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은 반체제연합인 '시민포럼'을 조직해 공산통치 종식과 자유화를 요구하여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화 시민혁명을 이끌어냈고, 최초의 자유선거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는 부드러운 천인 벨벳처럼 피를 흘리지 않은 평화적인 정권교체였기에 '벨벳혁명'으로 불리었다.

여기에는 집권 공산당이 정권유지를 포기하고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주도했던 둡체크의 협력 아래 '77헌장'을 이끌었던 하벨의 도덕적 권위와 정치적 비전 등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었기에 순조로운 정권이양이 가능했다. 하벨 정부는 '도덕적․정치적․법적' 정통성을 가졌다. 이에 광범한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체제전환 과정에서 쏟아지는 숱한 개혁 과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총체적인 '정치의 실패'에서 일어나는 대개의 시민혁명은 정당 차원의 정권교체를 가져왔지만 정치민주화와 함께 부의 편중을 극복하고 경제적 성공을 거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시민혁명은 기성 정당의 집권 탐욕을 넘어 도덕적 권위와 정치적 미래를 제시하는 구심 세력이 존재할 때 성공하게 된다. 광장의 함성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 정당과 정치세력은 반드시 시민혁명의 성격을 왜곡시킨다.

촛불혁명: 새로운 국가 건설로!

'박근혜 게이트'는 '정치의 실패' 논리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혼이 비정상적'이고 자기최면에 걸린 박근혜를 정치적 구심으로 올려놓고 권력과 치부의 네트워크를 구축한 한국 보수헤게모니 세력의 '집단적 타락'이 더욱 깊은 병폐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 망령(亡靈)에 사로잡힌 대중의 지지에 기대어 사이비(似而非) '무속정치(shaman politics)' 행태에 묵종해온 지배엘리트 연합세력의 가증스런 작태를 바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박근혜 일당의 '막장 드라마'가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언론, 학문․대학사회, 문화예술체육계, 종교계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한 주류(主流)계층은 공공성과 공정성의 가치를 철저히 짓밟았다. 대학 입시에서 "돈도 실력"이라고 하여 이 땅의 청소년들을 그야말로 분노와 허탈 상태로 몰아넣었다. '주류 헤게모니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박정희의 망령이 박근혜의 인기와 지지의 근원이었다. 박근혜의 한계를 이미 간파했던 정치인들은 그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면서 후광을 얻고 활용할 생각뿐이었다. 올바른 정치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직언하거나 고언을 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이런 분위기와 비선 행태는 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촛불혁명은 기득권세력이 이끌어왔던 낡은 세계관을 타파하고 새로운 공동체 건설로 나아가는 동력이어야 한다. 올바른 건국정신과 통일의지 위에 새로운 나라를 일떠세우는 힘찬 변혁의지로 승화되어야 한다. 정권교체가 답이 아니다!

붕괴는 국민의 힘, 건설은 정치권의 몫

한반도에 거대한 쓰나미가 닥쳐오고 있다! 안팎으로 위기국면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와 안보' 더블 위기 앞에 섰다. 세계는 지금 한 치 앞을 전망하기 힘든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는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여기에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전과 미국과 중국의 강경한 대외전략 모드로 한반도의 안보 정세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경제 회복과 민생 문제 해결의 딜레마 속에 개혁의 내부동력마저 거의 소진된 상태이다.

우리는 정치적 리더십 측면에서도 매우 초라한 모습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 중국의 강력한 '핵심 지도자'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푸틴 대통령, 그리고 재무장과 군사대국화로 나아가는 일본의 아베 수상 등 한반도 주변국의 정치적 리더십은 한층 안정적이고 강고한 모습이다. 정치 지도층 모두가 한 몸이 되어 국민의 굳건한 지지와 신뢰를 받아도 대내외적 난관을 헤쳐 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당, 야당 어느 한 정당의 집권으로 엄중한 위기국면을 극복하기가 힘들다.

국민의 힘이 박 정권을 붕괴시켰다. 이제 건설은 정치권의 몫이다. 두 가지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여야 간 협치가 중요하다. 진보(좌파)와 보수(우파)의 진영 논리의 폐습은 당장 극복되어야 한다. 진영 간 대립구도를 혁파하고 '포용적(inclusive) 정치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산업화=근대화 시대의 민주주의 모델인 정당정치는 이미 제도피로 상태에 처했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경쟁체제라기보다는 맹목적 거부와 집권당의 부정부패와 실정을 반사이익으로 삼는 정당정치 구조는 국가의 발전과 민주주의 측면에서 장애가 될 뿐이다.

새누리당이 건전한 보수정치세력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썩은 암 덩어리를 도려내거나 그들과 하루빨리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렴하고 공정한 보수적 가치에 기반을 둔 창당으로 국민 앞에 다시 나서야 한다. 여러 야당과 새로 태어날 보수당과의 협치가 요청된다. 이에 '퇴출 세력'과 문책 범주를 분명히 하고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을 위해 큰 팔을 펴야 할 때이다. 여야가 모두 함께 둘러앉는 '대청마루' 포럼이 기대된다.

차기 정부는 '위기관리정부'일 수밖에 없다. 강력한 리더십이 요청된다. 국가안보, 경제와 민생회복, 개혁과제 추진 그리고 통일에 대한 확신과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원고 읽기, 준비된 발언 형태는 지양되어야 하며, 정치지도자들의 인격, 통찰력, 국내외 정세파악 능력, 국가과제 설정 역량, 소명의식 등을 검증할 수 있는 공개토론의 일상화가 바람직하다.

다른 하나는, 탄핵과 함께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말하자면 탄핵은 탄핵대로, 개헌은 개헌대로 추진되는 투 트랙 접근이 요청된다. 분권형 대통령제 방식을 중심으로 하는 '원 포인터 개헌'은 시간과 소모적 논쟁을 줄일 수 있다. 개헌 논의는 반드시 선거구제 개혁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개헌 없는 대선은 승자독식 구도에서 구조적인 정치 불안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탄핵과 함께 개헌을 통한 정치개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야당은 광장의 함성을 집권의 기회로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어떻게 난파선 한국을 구하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과 책임의식에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광장의 함성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외치지만, 그렇다고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로 돌아선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의 여야 정당 구도에서 대안을 찾기는 힘들다. 우리 국민은 박근혜의 퇴진으로 정치적 난국이 해소되고 새로운 체제와 국가가 하루빨리 건설되기를 바란다.

글 | 조 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선문대학 초빙교수로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통일연구원에서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과 부원장을 역임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 오래 동안 연구해왔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 사회의 내부 동력이 관건적이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와 함께 문명사적 전환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정치의 역할을 탐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