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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의 죄를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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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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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제 시국특집 11회
대통령의 과오로 국정이 마비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오늘의 우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되 나라의 미래를 밝히 열고자 국민의제가 탐조등을 비추는 기획특집을 마련합니다.

글 | 박동천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또는 그 전부터?) 이 나라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두고 국정농단이라든가 국기문란이라는 등의 문구가 사용된다. 지금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고, 지금은 국정 "공백" 상태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무려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열에 아홉은 대통령이 물러나기를 바란다고 한다.

외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한국인은 권력의 부패에 익숙하다. 현대 정치사는 권력이 부패한 사례들로 넘친다. 1987년 이전까지 현직 대통령의 부패는 지하에서나 은밀하게 거론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죽거나 퇴임한 후에도 대통령의 부패가 샅샅이 밝혀지지는 못한 채, 부분적인 이야기들만이 떠돌아다녔다. 1987년 이후에는 대통령 4년차가 되면 예외 없이 부패 스캔들이 터져 나왔고, 지지율은 추락했고, "대통령의 권위" 같은 소리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워지는 사태가 반복됐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아들 또는 아들들이 아버지 업고 설치다가 걸렸다든가, 퇴임 후에 대비해서 뭘 좀 챙긴 정도였다. 승마 경기, 고교와 대학의 학사관리, 문화계에 대한 통제, 정부가 요란하게 간판 걸고 벌인 사업의 예산 집행, 장차관을 비롯한 공무원 임명, 재벌 기업 경영자 퇴진, 기타 등등, 정부와 사회의 도처에서 법과 정의가 이토록 파괴된 적은 없었다. 심지어 대북정책의 기조까지도 최순실의 황당무계한 헛소리를 근거로 결정되었다는 의혹도 있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선의"를 악용해서 대통령을 속여먹은 사건이 아니라,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범이었거나, 또는 대통령이 최순실의 꼭두각시였을 가능성들이 제기되고 있다.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도 분명하다. "이것이 나라냐"고 항의하는 목소리에는 예외 없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는 경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를 따지는 사법공무원들의 생각은 "제3자 뇌물죄"나 "직권남용죄" 같은 수준에 그치는 듯하다. 헌법 84조에 "내란이나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가 아니면 대통령은 재직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들먹이며, 소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수사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법률가도 있는 모양이다. 시민들의 엄청난 분노에 밀려 수사는 하는 척 시늉을 내지만, 피의자가 원하는 시기에 피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자의 부패가 폭로될 때마다 반복되어 온 패턴이 하나 있다. 시민들의 분노는 들끓었지만, 사법적인 처벌은 흐지부지 내지 용두사미로 끝난 것이다. 왜 그럴까?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민심과 사법의 괴리다. 민심은 감정적일 때가 많고 초점이 구체적으로 수렴되지 못한 채 막연하며 분산될 때가 많다. 그래서 시민의 분노만으로 판결을 내린다면 전형적인 인민재판이 된다. 이것은 문명사회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반면에, 사법공무원들은 권력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법률 "전문가"라고 자임하면서, 시민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자생적인 외침을 내심 "무지의 소치"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사법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사법공무원들이 헌법에 의해 위임받은 권한과 의무를 다했더라면,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법"을 팔면서 국가를 사유화할 수는 없었다. 법의 타락상을 더 이상 참지 못할 때 민심은 분출했다. 한국인은 1960년, 1979-80년, 1987년에 본래적 정의를 요구하는 선량한 양심을 온몸으로 발동했고, 그래서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다. 이렇게 민심이 자생적으로 분출하는 시기에 법률종사자들은 중요한 의미를 깨우쳐야 한다. 그동안 실정법이 품지 못했던 본래적 정의를 회복할 수 있도록 실정법의 영토를 확장하라는 양심과 정의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공무원들은 번번이 그러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그럴 기회가 왔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법은 이번에도 민심을 담아내기는커녕, 시간을 끌면서 눈치를 보다가 열기가 가라앉으면 최소한의 체면치레로 마무리하는 패턴을 반복할 것이다.

헌법 84조는 내란죄라면 재직 중에도 대통령을 형사 소추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형법에 내란의 죄라는 것이 규정되어 있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면 내란죄가 된다(87조). "국헌문란"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91조 1호)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91조 2호).

최순실과 그 일당이 저지른 일들이 형법 91조 1호와 2호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켰고, 국가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 "국정농단"이 바로 그런 뜻이고, 이는 문구만 다를 뿐 "국헌문란"과 똑같다. 단, 이들에게 내란죄를 적용하려면, 87조에 들어 있는 단어 두 개를 따져봐야 한다. "목적"과 "폭동"이다.

"목적"은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다. 현 상태가 국헌문란의 상태라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만으로, 특별한 변명이 성립하지 않는 한, 목적은 증명된다. 은행원이 남의 예금을 빼돌렸다면 그 자체로 절도의 목적이 증명되는 셈과 같다. 이에 비해, "폭동"은 얼핏 볼 때 다소 생뚱맞아 보일지 모른다. 최순실이나 정유라가 "폭동"을 벌이지는 아니지 않나?

그들은 폭동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경찰과 검찰과 군대와 여타 모든 정부의 공권력이, 몰라서 그랬든지 알고도 그랬든지, 이들이 벌이는 국헌문란 행위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그들의 국헌문란 행위를 돕기 위해 앞장까지 섰다. 정윤회 문건이 드러난 사건에서는 청와대의 회유와 협박 때문에 현직 경찰관이 자살까지 했다. 이 일당은 경찰과 검찰과 군대를 장악했거나 무력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폭동을 일으킬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한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그나마 약간이라도 비슷한 사례에 비교해보기 위해서,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다. 박근혜가 최순실의 조종에 의해 주요정책을 결정했다고 가정해보자. 즉, 국정을 좌우한 실권자에게 내란죄가 적용된 다른 나라의 예가 있는가?

영국왕 찰스 1세, 프랑스왕 루이 16세, 그리고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대역죄(high treason) 선고를 받았다. 대역죄란 군주정에서 왕조의 전복을 꾀한 자를 처벌하던 죄목인데, 공화정으로 바뀌던 전환점에서는 공화국을 전복하려는 시도에까지 적용범위가 확장된 것이다. 한국 헌법에서 "내란과 외환의 죄"라고 부르는 것이나 서양말로 대역죄라고 부르는 것이 같은 죄목이라는 점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통상 대역죄의 구성요건에도 "폭력"의 행사 또는 계획이 들어가는데, 루이16세 부부는 특별히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폭동을 일으킬 필요 없이 공화국을 전복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의 행위가 공화국 헌법을 문란케 했다면 내란죄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나는 사형제 자체를 반대하기도 하거니와, 내란죄라고 해서 사형에 처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다른 예를 찾아본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영국왕 조지 3세의 "침해와 찬탈"을 성토하면서, 그가 법을 지키지 않았고 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방해했으며 법의 시행을 가로 막았다는 죄목들을 열거했다. 영국왕의 통치가 정의의 원리를 거역한 불법이기 때문에 원인무효고, 따라서 자신들의 봉기는 불가피한 정의의 발동이었다는 주장이었다. 영국왕이 미국 대륙의회의 관할권 바깥이라 실제로 재판은 받지 않았지만, 사실상 대역죄라는 죄목을 함축하는 선언이었다.

한국에서는 김재규가 내란목적 살인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박정희를 죽인 행위 안에 "국헌문란을 지향하는 목적"이 들어있다는 취지였다. 통합진보당은 내란을 예비하는 음모를 꾸민 죄로 해산되었고, 이석기는 감옥에 갔다. "내란예비음모"가 그럴진대, 실제로 국헌문란을 상당 기간 동안 성공해서 잘 해 먹었던 최순실 일당은 어떤가?

나는 처벌은 가급적 인간적이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사형제 자체를 야만으로 보며 배격한다. 그러나 죄목은 내란죄를 적용하고도 남는다고 본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교언을 펼치던 한국 검찰은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으로 특별법이 제정되자 군말 없이 전두환을 내란죄로 기소했다. 지금 최순실과 박근혜에게 내란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본다는 것은 "성공할 뻔했다가 들통 난 쿠데타"조차 기소할 수 없다고 우기는 셈이다.

이 사건은 몇 명의 개인이 권력을 남용한 정도에 그치는 사건이 아니다. 그 정도였다면 시민들이 이토록 경악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대한민국의 정부 기능이 철저하게 무력화된 사건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는 것이다. 박근혜와 최순실만이 아니라, 청와대의 비서들만이 아니라, 김기춘, 황교안, 정홍원, 조윤선, 이준식, 김수남, 황우여, 정홍원, 이정현, 등등, 헌법에 의해 위임된 의무를 체계적으로 방기한 자들 또한 내란죄의 종범으로 책임을 묻고 경중에 따라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사법절차다. 죄목이 필요하다. 뇌물죄로 탄핵할 것인가 내란죄로 탄핵할 것인가? 탄핵은 헌재를 통과해도 파면에 그친다. 처벌이 이뤄지려면 형사재판이 필요하다. 뇌물죄로 기소할 것인가 내란죄로 기소할 것인가? 감옥에 보내든 정신병원에 보내든, 내란죄로 기소해야 한다. 국헌문란의 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국헌문란은 내란죄로 처벌해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그래야 범죄자들이 뻔뻔하게 버티지 못한다. 그래야 이 나라가 법치국가가 된다.

글 | 박동천

현재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철학)로 재직중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UIUC) 정치학 박사
저서: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 외.
역서: 『근대정치사상의 토대』, 『정치경제학 원리』,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사회과학의 빈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