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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의 거짓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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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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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제 시국특집 5회
대통령의 과오로 국정이 마비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오늘의 우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되 나라의 미래를 밝히 열고자 <국민의제>가 탐조등을 비추는 기획특집을 마련합니다.

글 | 정연택(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최근 국정농단 사태가 전 방위적으로 일어난데 대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특히 농단의 근원지가 문화체육계였다는 사실에 더욱 말문이 막힌다.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기조의 하나가 '문화융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은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돈벌이 기회로 전락했고, 예술인의 창작 안전망 구축과 지원정책 또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통해 무색해졌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현직 문체부 장관까지 연루되어 있다니 '융성'이 아닌 '몰락'으로 끝장 난 셈이다. 이념을 넘어서야 할 문화의 역할이 고작 정권의 호불호에 따라 갈라 세우고 억압과 배제의 구덩이로 몰아세운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은 이제 '거짓'으로 판명이 났다. 문화융성을 통해 국민행복을 약속했던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배신의 정치'를 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문화계에서 일어난 총체적 난국의 문제를 단지 특정 세력에 의한 일시적 비리로 보아서는 안 된다. 엄밀히 말해 그 같은 비리의 형태가 이미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이번 일을 계기로 근원적인 문제의 발견과 해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거짓과 비리는 반복적으로 이어져 갈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문화정책에 깔려있는 편협한 애국주의와 시장주의에 있다. 자국의 먹거리를 세계에 알리고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한식 세계화' 사업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엔 뉴욕에 한식당을 만들기 위해 50억의 예산이 들어갔다. 그것도 부족해 '한식 세계화 사업'에 242억을 추가 책정한 바 있다. 물론 예산만 날린 공염불 사업으로 끝났다. 그 예산으로 우리 국민이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모습을 세계에 알렸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 결식 아동은 물론이고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옳은 처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문화정책은 애국주의를 가장해 우리의 것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것이 마치 국위선양인양 국민을 호도하고 그것을 위해 수백억 예산을 써버렸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왜 다른 나라 국민들도 좋아하게 해야 하는가?" 신종 문화제국주의의 발로가 아니라면 문화적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인가?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럴듯한 명분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한류문화의 전파를 통해 우리의 상품을 팔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효과를 올리겠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 한 가지 묻고 싶다. 일본 정부가 자동차를 팔기 위해 스시 한 조각을 우리 입에 물려준 적이 있었나? 미국 행정부가 스마트폰을 팔기 위해 그 흔한 햄버거 한 조각을 우리 손에 쥐어준 적이 있었던가? 기껏 문화를 '놀잇광대'로 삼아 물건을 팔겠다는 생각이라면 저잣거리의 장사치와 뭐가 다른가? 차라리 그것은 민간에게 맡기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적어도 세계수출국 10위권 안에 드는 국가의 정부에 걸맞지 않은 행태이다. 비합리적인 예산집행은 결국 파행으로 끝이 난다. 실패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파행이 불러올 낭비와 비리가 문제다

체육계는 말 할 것도 없다. 애국주의의 발로는 칠전팔기의 각오로 세계대회 유치를 목표로 한다. 지난 2011년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애국주의로 위장된 국위선양 이면에는 개발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권세력들이 모여들어 이전투구를 연출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최순실을 위시한 비선실세들은 일찍이 주전 선수로 나서 경기장을 휘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스포츠 문화는 우리의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체력을 기르는 가운데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언제까지 '88 올림픽' 같은 근대적 성과물에 대한민국이 집착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시장주의에 매몰된 스포츠 문화를 소비만 하는 국민으로 남게 할 것인가? 이유 불문하고 승마 선수 하나를 대회에 출전시키기 위해, 민간기업이 불투명한 돈 수십억을 뿌려대는 현실을 맘 편히 관전하고 있을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요즘 광화문 일대를 지나다 보면 한복을 입고 짝을 지어 걷거나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는 젊은이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일부 한복 전문가들의 입장에선 그들의 옷매무새가 다소 불만스럽게 보일지는 몰라도 한복을 어떤 형태로든 즐기는 것은 좋은 것이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한복 세계화' 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문화를 일상에서 즐기고 있다는 사실 만큼 우수한 것은 없다. 그것은 애국주의의 발로도 아니고 편협한 민족주의의 우월감과도 무관하다. 거래를 위해서는 더욱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의 자발성과 성취감을 얻는 기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창조경제의 미명하에 문화를 돈으로 환산하고, 애국주의에 물든 세계화를 위해 거국적인 예산을 물 쓰듯 쓰는 지금, 어느 곳에선가 가난한 삶조차 노래가 되는 무명가수의 밤길이 있다. 차가운 새벽 공기에도 시퍼렇게 살아, 곱은 손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도 있을 것이다. 늘 피로한 삶의 여정 속에서도 늦은 밤 손에 쥔 펜은 펄펄 살아나는 노동자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살아 있는 자'로 살아남을 때 진정한 '문화융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

문화융성은 국가 이전에 국민 개개인이 자긍심을 갖고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 위에서 이뤄진다. 국가의 문화정책은 그런 토대를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 더 이상 편협한 애국주의나 경제만을 우선시 하는 시장주의에 편승해 '세계화'라는 허울을 쫓지 말아야 한다. 시장주의는 소비의 자율성을 보장할 뿐 생산의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문화융성은 국민 개개인이 자율적 생산의 주체로 거듭날 때 진실로 융성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또 다시 문화융성의 거짓 세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제 2의 최순실과 맞닥뜨릴지 모른다. 문화융성을 위한 국가정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국민 또한 편협한 애국주의와 시장주의에 대한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왜곡된 국가정책으로 부터 더 이상 호도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글 | 정연택

명지전문대학 도자전공 지도교수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서울시 문화관련 자문위원과 대통령 직속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버금이전'등과 같은 문화기획을 통해 시민공예가 육성에 힘쓰고 있으며, 공예의 생활화와 자립공생사회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