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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와 티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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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MP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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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동천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엄청난 반동의 물결이다.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반동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도처에서 편협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주로 노동계급을 공략한 선동정치가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에 이어 마침내 미국까지 점령했다.

영국에서 영국독립당(UKIP)이 1993년에 기치를 내걸었을 때 사람들은 웃었다. 하지만 그 당은 놀랍게도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에 할당된 73석 중 24석을 차지했고, 2015년 영국 하원 선거에서는 12.6%를 득표했다. 이런 성장세에 놀란 데이비드 캠런은 유럽연합 탈퇴를 국민투표에 붙였다가, 다시 한 번 의외의 결과를 맞이해야 했고 수상직과 의원직을 내놓았다.

독일에서도 대안당(AfD)이라는 이름의 민족주의 선동정당이 2016년 주의회 선거에서 약진했다. 두 개 주에서 제2당, 두 개 주에서 제3당, 세 개 주에서 제4당의 지위에 올랐다. 메르켈의 이민 수용 정책에 대한 반감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장 마리 르펜의 민족전선이 민족주의 선동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다가, 마침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까지 올라, 사회당이 지지자들에게 우파 연합 후보 시라크를 찍으라고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 마리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 물려받은 민족전선은 2014년 유럽 의회선거, 2015년 데파르트망 선거, 2016년 광역의회 선거에서 연이어 1차투표 득표율에서 제1당으로 올랐다. 마린 르펜은 2017년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도 현재의 예측으로는 1차투표에서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민주당 정권이 궤멸된 이후, 아베의 자민당이 순항하고 있다. 선거에서 득표율은 과반수에 못 미치지만, 왜곡된 선거제도 덕분에 중의원에서도 참의원에서도 안전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다음 선거에서 유력한 도전 세력도 없고,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목소리도 약하다. 아베노믹스는 실패로 끝났지만, 아베의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다. 중국, 러시아, 한국과 영토분쟁, 성노예 부정, 등, 민족주의 선동정치가 서민층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새누리당의 득세 역시, 한 꺼풀 벗기고 보면, 편협한 민족주의 선동의 결과다. 새누리당은 친일의 오점을 털어내지 못하는 세력임에도,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는 선동으로 2008년에 이어 2013년에도 집권에 성공했다. 대안 세력들이 반미 민족주의로 자기 발등을 찍은 틈새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은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엉뚱하게도 티파티라는 이름의 극우 민족주의 운동이 등장하더니, 마침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2008년 선거에서 새러 페일린이 티파티를 등에 업고 매케인의 짝으로 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오바마-바이든 짝에게 참패할 때만 해도 미국에서 극우 민족주의는 하나의 웃음거리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새러 페일린보다 훨씬 무모한 민족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는 여론조사기관과 언론기관의 모든 예측을 비웃듯이 당선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낀 노동자 계급의 반란으로 해석한다.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의 이명박, 박근혜처럼 영국의 독립당, 독일의 대안당, 프랑스의 르펜이나 미국의 트럼프는 모두 정치판에 새로 들어온 외부인에 해당한다. 이들 모든 나라에 기존 체제의 변혁을 명문으로 내건 정당들이 있지만,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들은 그런 정당 대신에 민족주의 선동가를 선택한다. 사회변혁을 목표로 내건 정당들이 이미 기성정치에 흡수되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지식인들도 신용을 잃었다. 그들의 말은 너무나 복잡하고, 변명과 구실로 가득 차있다. 지식인들끼리도 진영에 따라 서로 말이 크게 엇갈린다. 진보를 떠들어대는 사람이 진보를 원하는 것인지, 개인적 영달을 위해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가리지 않고 늘어놓는 것인지 분간이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중일이야 어찌 되든 말든, 당장 이민을 차단하고, 무역을 보호하고, 군사력을 과시하겠다는 사람이 내 편으로 보이게 된다.

이런 식의 말초적 감성은 한국의 경우 온라인에서는 일베가, 길거리에서는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가 대변한다. 광주학살도 부인하고, 민주화를 조롱하고, 세월호 유족이나 사드기지 배치에 반대하는 농민들까지 종북으로 몰아간다. 진실도 없고 이상도 없다.

미국에서 티파티는 미국인들이 자기끼리만 살면 훨씬 잘 살 것으로 믿는다. 미군의 군사적 개입이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현재의 국제경제에서 미국이 가장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큰 그림이나 장기적 이익 따위는 어차피 복잡한 얘기니까 외면해버리고, 당장의 군사비 지출이나 무역역조만을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자에게 투표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던 진보 지식인들은 이제 모조리 기성 엘리트 세력으로 몰려서 퇴출당할 위기에 직면했다. 선거와 공론장은 선동가들이 맘껏 활개칠 수 있는 무대로 전락한 듯하다.

다만, 아직은 절망하기에 이르다. 일베든 어버이연합이든 자기에게 유리하기만 하면 선동이든 거짓이든 가리지 않고 기꺼이 이용하던 한국의 새누리당이 역설적으로 희망의 실마리를 표본적으로 보여준다. 진실을 선동으로 은폐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새누리당은 최순실과 그 일당의 먹이가 되어 파멸 직전이다.

영국의 보수당도 브렉시트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선동보다 이성을 발휘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대안당이나 민족전선이 만일 정권을 잡는 날이 온다면, 바로 그 날부터는 선동만으로 세상을 속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에 담장을 세우고, 이민자들을 추방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일베 따라가다가 최순실에게 농락당한 한국의 새누리당은 세계의 모든 선동정치에 경종을 울린다. 선동으로 혹시 집권까지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성을 계속해서 회복하지 못하면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트럼프도 아베도 이를 보고 깊게 느끼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

글 | 박동천

현재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철학)로 재직중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UIUC) 정치학 박사
저서: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 외.
역서: 『근대정치사상의 토대』, 『정치경제학 원리』,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사회과학의 빈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