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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국민이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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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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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박근혜 대통령이 천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지난 4일 대통령이 두 번째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통령은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라고 하면서 용서를 구했지만 시민들은 냉담했다. 시민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5일 광화문 촛불집회에 모인 20여만 명의 시민들은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시민들이 촛불시위에 더 많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대통령의 사과가 진정성이 부족하고, 책임총리에 대한 언급이 없는 등 사태수습에 미진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통령은 사과담화에서 최순실과 연관된 개인 신변사의 불찰에 대해 사과하며 검찰수사를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국가원수로서, 최순실 일당이 공모한 정치범죄에 연루되어 헌법과 국가기강을 유린하고, 국민 혈세가 횡령되도록 방치한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특히, 대통령은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우병우 수석을 대신해 그와 최순실 일당의 비리를 쫓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국기문란 사범으로 몰아 검찰의 수사를 받게 한 국기문란행위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최순실 사교(邪敎)일당에 의해 국가와 국민이 농락당했다는 개탄스런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에 있겠는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51%의 지지자들마저 등을 돌렸다. 대통령 지지율이 5%로 곤두박질 친 것은 그들의 배신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준다. 분노한 시민들이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우리 헌법에 "대통령 국민소환파면제"가 있었다면 '거국 중립 내각'이니, '탄핵'이니, '하야'니 하는 절차 없이, 시민들은 즉각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는 국민소환권을 발동했을 것이다.

분노한 시민들의 저항권 행사가 그들의 주장대로 대통령 하야와 조기대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정치권에서 협상하는 다른 방식으로 수습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정치공동체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것일까? 현재 정부와 시민 간에, 야당과 정부 간에 신뢰가 많이 훼손되었다. 따라서 당분간 어떤 선택을 해도 그 운영이 녹록지 않을 게 뻔하다. 이에 정치권과 대통령의 우선 과제는 민중의 분노가 더 이상 나쁘게 흘러가지 않고 성숙한 민주주의로 향하도록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민중의 요구가 너무 급진적으로 과도하게 분출될 경우, 의도치 않게 목소리 큰 사람들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되는 우중정치, 포퓰리즘, 선동정치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민주공화국의 정치미덕인 숙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파괴되어 공동체는 더 나쁜 결과를 감당할 수밖에 없다.

정치 미덕을 파괴했던 나쁜 사례를 교훈 삼아 볼 필요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이후 분노한 시민들에 의한 정치보복을 두려워 한 이기붕 일가가 참혹하게 자살했다. 국정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민주당 정권의 허약함을 틈타 박정희 세력이 헌정을 전복하는 반동적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에서 과도한 검찰수사로 굴복을 강요받았던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하는 일도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 정치공론장을 합리적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도록 '증오의 정치'와 '보복·복수의 정치'로 물들였다. 물론 우리보다 더욱 격렬했던 프랑스는 혁명과정에서 자코뱅당의 혁명독재가 부른 대학살극과 그 역풍으로, 급진적 개혁을 반대하는 보수주의가 극단적인 행태로 사회다양성을 억눌러 그 부작용을 낳았다.

따라서 우리 정치권과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더 이상 극단적인 행태로 진화하지 않도록 민심을 최대한 반영하는 공론화 과정을 밟아 수습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동안의 갈등과 상처가 복수와 증오가 아닌 용서와 화해로 나가도록 특별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것의 관건은 정치미덕을 복원하고 권장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도덕적 비난과 법적 처벌과는 다른 정치적 책임차원에서 인간의 죽음과 삶에 접근하는 실존적 처방으로 '권력'과 '폭력'의 구분에 따른 '정치적 용서'의 사용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과정 없이 국민의 저항에 맞서 정권의 목적의식을 관철시키는 것은 '권력'(power)이 아니라 '폭력'(violence)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녀가 그렇게 본 이유는 '폭력'은 정권의 목적달성을 위한(in order to) 동원의 대상과 수단으로 시민을 보기 때문이고, 반대로 '권력'은 수단이 아닌 함께 토론하는 공론장의 목적 그 자체를 추구하는(for the sake of) 주체로 시민을 보는 차이 때문이다. 따라서 아렌트는 '권력'이 목적 추구적인 '권력'이기를 포기하고 수단적인 의미의 '폭력'을 사용하게 되면 이미 그 권력은 '적법성'이 사라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정치권과 대통령은 사태수습과정에서 '폭력'을 배제하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권력을 적극 사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아렌트는 '용서'와 '약속'이라는 행위를 통해 훼손된 공동체의 정치적 미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600만이 넘는 유대인 동족들의 참혹한 죽음을 체험한 그녀는 20세기에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자부하는 독일민족에 의해서 자행된 최악의 잔인한 홀로코스트 만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놓고 고심한 결과, '용서'와 '약속'이란 행위를 찾아냈다. 아렌트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용서와 그러한 일을 또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의해 인간이 과거의 실존적 죽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렌트는 이 새 생명 탄생의 과정을 '제2의 탄생'이라 불렀다.

아렌트는 정치미덕인 용서의 힘을 발견하여 기독교에서 사용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그의 가르침의 핵심이 용서라고 보았다. 용서와 약속만이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잘못과 죄의 수렁에서 그리고 보복의 악순환에서 탈출하여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게 한다고 보았다. 용서와 약속의 힘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과거와 단절하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회복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결국, 용서야말로 위기의 정치공동체를 되살리는 가장 위대한 치료제이다.

이번 스캔들로 인해 상처받은 시민들을 위로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새누리당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은 51%의 국민들이 정치적 책임에 대해 '내탓이요!'라고 사죄하고 참회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누리당은 최태민 사이비 교주일당에게 사실상 포획당해 공적 일을 수행하는데 결함이 많은 박근혜 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하지 못한 채 대선후보로 결정한 책임을 사죄하고 참회해야 한다.

박근혜 뽑은 51% 국민도 정치적 책임을 지고 참회해야 한다. 51%국민도 자신이 속았다는 부끄러움·쪽팔림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분노로 과하게 표출하지 말고,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분담해서 반성해야 한다. 51% 국민은 다음 대선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약속해야 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사법처리와는 별도로 과거의 악행을 회개하고 남은 임기 동안 새로운 선행을 더 많이 실천할 수 있도록 정치적으로 용서하고 사면해 줘야한다.

정치적 미덕인 용서는 첫째, 망각이 아니라 아픈 과거의 복기이며, 둘째 법적 처벌의 반대가 아니라 복수와 증오의 정치를 반대하는 일이다. 셋째, 인간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는 연약성에 대해 공감하는 일이며, 넷째, 새롭게 탄생할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