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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국내각 총리는 정도전 같은 인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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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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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제 시국특집 2회
대통령의 과오로 국정이 마비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오늘의 우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되 나라의 미래를 밝히 열고자 <국민의제>가 탐조등을 비추는 기획특집을 마련합니다.

글 | 한면희(성균관대 초빙교수,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

"비록 발을 진흙탕에 들여놓았지만 내가 가리키는 손은 하늘의 태양이어야 한다." 이 대사는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정도전'에서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던 정도전이 독백처럼 내뱉은 것으로 기억한다.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오늘의 현실은 정도전이 처한 고려 말의 상황과 적지 않게 유사하다.

최순실 사태의 요체는 공인 박근혜 대통령이 주술적 사고에 젖은 사인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운영하였다는 데 있다. 국정을 함께 경영할 만한 자질을 갖추었다면 적합한 공직에 임명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사인으로 머무르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사인을 어찌 국정운영, 그것도 최고이자 최종의 정책결정에 동참시켰다는 말인가? 박대통령이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정치적 행보를 취할 수 없는 분이었다는 것을 뜻하지만, 문제의 뿌리가 거기서 멈추어 있지 않다는 데서 사태의 심각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 어느 분야든 최고 의사결정의 지위는 이를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순리다. 다만 인간사의 일이기 때문에 지극히 사적이거나 작은 영역에서는 순리에 역행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문명화가 된 곳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대통령직 선출과 수행에 짙은 불합리성이 드리워졌다면 이것은 한 부분의 훼손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고장을 의미한다.

예컨대 윤여준 전 장관은 대통령 자격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서 아예 그 근처에 가지 않았고, 필자가 그 사나운 말투로 인해 달갑게 여기지 않은 전여옥 전 의원조차 박근혜 후보는 정치적으로 어린이 수준이어서 합리적 판단능력이 부족함을 거론하다가 배신자로 몰려 진영서 축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친박 중에서도 핵심인 정치인과 청와대 수석들, 장관들은 제 정신을 갖춘 사람들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1선에 진을 친 주요 인사들이 권력과 금력 그 자체에 눈이 멀어서 최소한의 합리성과 공의조차 외면하고 있었다면, 2선에서는 좀 더 그럴 것이고, 그 너머의 국민은 드리워진 안개로 인해 판단에 혼선을 빚었을 것이다.

국민도 불의와 부정, 야비한 정치인의 행보를 보면서 옥석을 가리는 데 둔감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박정희 신화가 드리워져 있음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성공적 산업화를 통해 이 민족을 가난에서 탈피하도록 이끈 공적은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그가 이 과정서 인권을 유린하고 영구독재를 획책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신화는 통상 단점은 축소하고 장점은 과대포장하기 마련이어서 현실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신화에 매몰되는 경우 분별력과 자제력을 잃게 되고, 그 결과 자격이 미달됨에도 불구하고 그 딸이라는 이유로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낸 것이 오늘의 국정 마비와 국격 추락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빚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고려 말 세속화된 불교의 영향과 무신귀족의 패권 다툼으로 나라가 혼란에 휩싸여서 백성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끓어오르는 국민적 분노감에 비추어보면 대통령을 탄핵하여 법적 책임을 추상과 같이 묻거나 아니면 하야를 시킴이 마땅하다. 다만 어려울 때일수록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참다운 지혜가 요청된다. 솔로몬이 아이를 서로 제 자식이라고 우기는 두 여인을 재판하면서 그 배를 갈라 둘로 나누어주라고 한 평결을 상고할 필요가 있다. 언뜻 보기에 아이의 배를 가르라고 하다니 미친 사람이 아니냐고 힐난할 수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 포기할 터인데, 그렇다면 그가 바로 진짜 엄마임을 알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여론이 대통령의 하야로 진행되는 만큼 2달 이내에 대선을 치러 국정을 빠르게 수습하는 것도 괜찮은 방도다. 야권이 상대적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고, 이로써 두 정부에 걸친 독선과 부정부패, 사회 양극화, 유린된 민주주의를 정상으로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선거는 모르는 일이다. 보수 세력이 다시 집권을 이어간다면 진보는 쉽게 승복하지 않을 것이고, 진보 세력이 집권하면 그 동안 끊임없이 점철된 보수와 진보의 적대정치는 여전히 미해결의 짙은 앙금으로 남을 것이다.

보다 좋은 방도가 있는가? 이번 기회에 진보 및 중도 세력이 비열하거나 불의한 정치인을 무대에서 퇴장토록 해야 하겠지만 합리적 보수와는 긴밀히 협력하여 국정을 바르게 추스를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선례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과거 민주화를 일구어낸 YS와 DJ가 서로 협력과 양보를 하여 정권을 연이어 획득했더라면 저주스러운 정치적 지역감정을 해소했을 것이다. 이번은 보수와 진보의 적대정치를 해소하기에 좋은 기회이다. 박대통령을 2선으로 물러나게 하여 형식적 지위만 유지토록 하고, 그 전권을 국민에게 이양토록 해야 한다. 물론 국민이 실제로 받을 수는 없으므로 권한이 위임된 국회로 가게 될 것이다.

국회는 여야가 합의하는 절차를 통해 거국내각을 출범시키되, 산술적 중립을 지키게 할 필요는 없다. 임기 1년4개월을 남긴 만큼 현 상태를 소극적으로 관리하는 정도로는 우리의 여건이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합의 가능한 최우선의 국정가치 몇 가지를 선정하여 이를 힘 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거국내각의 국무총리는 정도전과 같이 뜻과 기개를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그는 당시 백성이 주인이라는 민본사상을 주창하면서 경국대전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다.

총리의 콘셉트를 정도전에 맞춘다면, 조각도 야야의 나눠먹기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총리 산하에 가칭 상생정치위원회를 두어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가운데 조각을 진행하고, 공감대를 이룬 사회발전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를 실행하면 될 것이다.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터지자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각계각층의 17인으로 구성된 에너지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보고서를 5월30일에 제출받았고, 그 즉시 2022년까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한다는 결단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재앙은 최순실과 적극 결부되어 있지만 대통령 박근혜의 사태이고, 그 이면에 탐욕에 눈먼 정치인과 박정희 신화가 함께 드리워진 총체적 허상의 결말이다. 향후 민주적 절차가 중시되도록 정책 시스템을 보강해야 하지만, 그곳에 위치한 지도자의 덕성과 지혜가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알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합리적 보수와 건전한 진보의 정치 세력이 선의의 정책적 경쟁을 펼치되, 국익과 공동선에 부응하는 바에 대해 서로 협력하는 상생정치의 새 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할 것이다. 길은 개척하라고 있는 것이다. 다시금 역경을 이겨내는 우리 민족의 지혜를 지구촌 시민들에게 보여줄 때이다.

글 | 한면희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와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과거 생태철학자로서 대안적인 녹색대학의 대표(교수)와 한국환경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초록문명론>과 <미래세대와 생태윤리>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환경정의연구소 소장으로 아토피 자녀의 어머니들과 교류하면서 갖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생태의학의 지평을 여는 데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철학자로서 <제3정치 콘서트>를 출간하는 등 공동선과 사랑의 정치를 본원적으로 실현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