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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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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Hong-Ji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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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동천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상에는 별의 별 사람이 많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텅 빈 사람도 적지 않다. 최고의 권좌에 올라 화려하게 포장하고 다니지만, 우상에 의존해야 하는 인간형도 드물지 않다. 권력을 무도하게 행사한 자들일수록 내면은 공허하고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약한 경우가 많았다.

박근혜가 정신이 나갔다는 루머는 1970년대부터 들어왔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태민이 죽은 지 20년도 더 지났는데, 그의 딸들에게 변함없이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아마도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아무리 경악스러운 일이라도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현몽", "영세", "우주의 기운" 따위를 들먹이는 사기꾼이 없었다면 안 벌어졌겠지만, 그런 사기꾼들은 언제나 있다. 박근혜가 최태민, 최순실, 최순득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정신이 혼미한 사람도 언제나 있다. 그토록 혼미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그런 사람의 앞뒤 안 맞는 소리를 나름 국정철학이었다는 식으로 인정해 준 데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있다.

최씨 일가는 기껏해야 몇 명이다. 그 옆에 빌붙어 관직과 뇌물을 챙긴 자들이 얼마나 될지는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많아야 수십 명일 것이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공무원은 적게 잡아도 백만 명이 넘는다. 박근혜가 이상했다는 증언들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정책 결정이 다른 곳에서 내려지는 것 같았다는 증언도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조응천, 박관천, 유진룡, 이석수 등은 그런 조짐을 감지하고 경고음을 발했다가 쫓겨났다. 그런데 나머지는 도대체 무엇을 했던 것인가? 장관만 수십 명인데, 그들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 박근혜에게 가깝다는 이유로 막말을 일삼았던 새누리당의 의원들은 무슨 생각을 가졌던 것일까?

저항권이라는 단어를 한국인들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한번쯤은 들어보고 자란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일종의 자연적인 권리라고, 타고나는 생래적 권리라고 학교에서 배운다. 정부의 권력은 오직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복무할 때에만 정당하며, 극소수 일부의 이익만을 위해 행사되는 권력에는 저항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근본규범 가운데 하나다. 우병우도 안종범도 정호성도, 그리고 이정현도 김기춘도 황교안도 김현웅도 윤상현도 김진태도 남재춘도 이병호도 이준식도 윤병세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박근혜의 어이없는 권력 행사에 저항권을 행사하지 않았을까? 앞으로 만약 수사와 재판의 대상이 되면, 그들은 자신을 재판하는 공권력에 자기들의 힘이 닿는 한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권력에 저항하지 않았던 자들이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려고 저항하는 행위는 권리가 아니라 범죄다. 그들은 저항의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에 저항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저항권이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권리고, 저항의 의무란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야 할 의무다. 정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은 권리도 의무도 아닌 단지 범죄일 뿐이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권리이기 이전에 의무다. 저항이 권리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보다 먼저 저항이 하나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도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의무가 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필요하면 떨쳐 일어나 지켜야 한다는 것은 말이 필요 없는 의무다. 지금 모욕감을 느끼고 분개하는 시민들이 바로 저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일어났다. 시민들이 지키지 않으면 그런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공무원이라면, 미관말직이라도, 정부의 권력 행사가 오직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에 복무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의무를 당연히 가진다. 공무원들이 이 의무를 저버릴 때, 정부의 모든 권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흔히 학교에서는 저항권이 서양 근대의 산물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서양에서 저항권이라는 개념은 그보다 먼저 저항의 의무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성립했다. 기독교 사회였던 만큼 기독교의 어법에 따를 때, 모든 기독교도에게는 신의 뜻을 지상에 실현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왕이나 교황이 신의 뜻을 명백히 저버리고 사회의 안정을 파괴할 때 기독교도에게는 그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일반 신도들도 그럴진대, 공직에 앉아 있는 지방관, 행정관, 판사, 대신들에게는 더더욱 폭군을 몰아낼 의무가 생긴다.

이는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동양에서도 폭군을 몰아내야 할 의무는 전통적으로 인정된 규범이었고 실제로 행사된 적도 드물지만은 않다. 은나라의 탕왕, 주나라의 무왕이 역성혁명을 일으킬 때, 그들의 명분이 바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야 할 천명, 즉 의무였다. 우리 역사에서도 왕건이나 이성계는 물론이고, 심지어 박정희의 쿠데타조차도 이를 옹호하는 이들은 저항의 의무를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혼미한 박근혜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까지 되었다. 대통령이 되고도 3년 8개월 동안 그야말로 야릇한 장막 뒤에 홀로 숨어 이상한 짓을 해왔다. 이 여인을 감싼 야릇한 장막이 하나의 블랙홀처럼 이 사회 전체를 말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제 드러나고 있다. 헌법 84조를 들먹이며 "내란과 외환의 죄가 아니므로" 현직 대통령을 형사 소추할 수 없다고들 떠들지만, 도대체 이게 내란이 아니고 무엇인가? 바깥에서,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 시민들은 줄곧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진실로 박근혜의 정신이 박약하다면 더 가까이 있는 자들이 설마 가만히 있겠느냐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참고 지내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은 침묵의 나선고리, 공범들 사이의 묵계였을 뿐이다. 박근혜 주변 100미터에 접근할 수 있었던 자들은 10미터에 접근할 수 있었던 자들이 가만히 있다는 이유로 저항하지 않았다. 10미터에 접근할 수 있었던 자들은 1미터에 접근할 수 있었던 자들이 가만히 있다는 이유로 저항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공직자로서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야 할 의무를 포기함으로써, 공동체를 지키기는커녕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말았다.

뉘른베르크와 동경의 전범재판에서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는 변명을 늘어놨다. 하지만 그들의 변명은 인정되지 않았다. 명령에 복종했더라도 그렇게까지 열심히 충성을 바치지 않을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저항의 의무를 조금이라도 이행하고자 했다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충분히 있었다. 1947년 아우슈비츠 재판에서는 "희생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동정심을 표현할 수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설령 "희생자들의 고난에 무관심했더라도 죽음에 이르도록 고문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는 이유에서, 피고인들은 "죽이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했다"고 판시했다.

혼미한 박근혜를 추종한 자들은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당한 권력에 어떤 식으로든 저항해야 할 인간적 의무를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공직자의 의무도 정면으로 위반했다. "최순실을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심지어 양심의 표본과는 거리가 먼 전여옥조차도 박근혜가 비정상이라 떠났다는 것 아닌가.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따지지 않고 복종한다는 것은 스스로 악행에 자발적으로 가담했다는 증거다. 1961년 이스라엘 법정도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아이히만의 변명을 배척함으로써, 저항의 의무는 누구에게나 해당한다는 취지를 확립했다. 현재 독일에서 고고학 교수로 일하는 아이히만의 막내아들조차, 자기 아버지의 그런 변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리카르도 아이히만 인터뷰.

문제는 박근혜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씨 일가를 처벌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공범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하면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된다. 관료 조직에서, 군대 조직에서, 기타 모든 사회 조직에서 개인의 양심이 저항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전에는 이보다 더한 일도 무시로 벌어질 수 있다.

글 | 박동천

현재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치철학)로 재직중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UIUC) 정치학 박사
저서: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선거제도와 정치적 상상력』 외.
역서: 『근대정치사상의 토대』, 『정치경제학 원리』,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사회과학의 빈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