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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제3의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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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NUCLEAR
ASSOCIATE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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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 민(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북핵, 미국 대북정책의 실패

북한은 '사실상(de facto)의' 핵보유국이다. 북한의 핵은 사실 미국이 키웠다. 미국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미국은 소련의 패망과 냉전체제 해체 이후 동북아 지역에서 '안정과 평화' 또는 '긴장과 갈등' 어느 쪽이 그들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여겼을까?

사드(THAAD) 제조사 록히드 마틴, 국방성, CIA, 그리고 워싱턴우파 등 미국 헤게모니 그룹의 입장에서 보면 적어도 '안정과 평화'는 별로 매력적인 카드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불량국가'가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이 골치 아프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은 미국의 예상과 통제 수준을 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 미국 조야는 당황과 흥분 상태에 빠졌다.

1993년의 1차 북핵 위기는 다음해 10월 제네바 기본합의로 일단 봉합되었다. 그런데 미국 내 강경파들이 합의 타결을 받아들인 데는 당시 '북한은 곧 붕괴할 것'이라는 신화가 한 몫을 했다. 북한이 크게 기대한 경수로는 첫 삽을 뜨는 데 3년 가까이 걸렸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초대 사무총장 스티브 보스워스가 "미국은 북한에 실제 경수로를 지어주는 것보다 지어줄 것처럼 보이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술회한 데서 그 까닭이 잘 드러난다.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뮤니케'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워싱턴의 조명록 차수, 평양의 미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두 사람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새로 쓰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해 2001년 부시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한반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판은 깨졌다.

2002년 일본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의 방북과 북일평양선언(9.17)은 미국 네오콘을 당황케했다. 그해 10월 제임스 켈리 대북특사의 방북과 비밀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이 불거지자 북한은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면서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다.

2005년 다자간 합의틀인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 도출로 비로소 북핵 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 재무부가 북한의 돈세탁 혐의로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북한 자금을 동결하면서 다시 긴장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6년 10월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 6차회담을 마지막으로 지금껏 열리지 않았다. 그 해 8월 김정일의 뇌졸중은 미국 정보 당국을 긴장시켰다. 또다시 김정일 사망으로 북한체제가 붕괴될 것이라는 확신이 돌았다. 물론 우리 정부와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도 북한 붕괴론이 힘을 얻었다. 붕괴할 북한과의 협상은 설득력을 잃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그 후 3년 이상 살면서 보다 활발하게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 다녔다. 세습후계자 김정은이 등장하자 "얼마 못갈 것이다"는 정보와 판단 속에서 북한의 급변사태만 기다렸다. 그 사이 북한은 금년 9월 5차 핵실험까지 감행하면서 핵보유국의 반열에 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전략적 무대책이자 전략적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초기에 협상을 통해 북핵의 악화를 방지하지 않았을까? 미국 언론인 리언 시걸(Leon V. Sigal)이 1998년 그의 저술을 통해 일찍이 미국의 대북 핵외교의 속성을 꿰뚫었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이나 대북협력 자체를 거부했다. 자유주의 전통이나 현실주의 입장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는 '악당국가들'에 대한 상호주의 외교보다는 응징정책을 선호하는 미국적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국식 정의가 언제나 모든 악당국가에 통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 비핵화의 원칙과 실천의지 강화

대북 선제공격 주장이 미국 조야의 테이블에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식' 선제공격은 비현실적이며 불가능한 옵션이다. 우선 북한은 이라크나 리비아와는 달리 핵국가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미국이 결행할 수는 없다. 미국의 선제공격은 북한과 어깨를 맞댄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한층 높여 북핵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 뿐이다. 더욱이 빈 라덴을 제거한 미군 특수부대의 평양 활약을 상상한다면 이는 북한의 실체에 대한 엄청난 무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대북정책의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이었다. 진보좌파 정부나 보수우파 정부의 대북정책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진보좌파는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가볍게 보았고 문명사회의 규범에 어긋나는 세습체제에 아무런 비판이 없었다. 더욱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를 외면했고 실상을 경청하지도 않았다. 보수우파는 북한을 악으로 규정하면서 대화와 협상은커녕 붕괴하기만을 바랐다. 이렇게 상반된 입장에서 정권이 바뀌면 대북정책이 완전히 뒤집어지는데 어찌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이나 통일전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비핵화는 결코 포기될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 위에서 실천 의지를 가다듬고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비핵화는 협상의 결과이지 결코 협상의 조건이 아니다. 말하자면 '선(先) 비핵화, 후(後) 협상'은 자가당착이다. 협상의 결과와 협상의 조건이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 북한의 핵보유 의지에 대한 분노를 넘어 다시 핵문제 해결의 입구를 찾아야 한다.

북한은 이미 오래 전에 미래 전망을 상실했다. 북한은 '나쁜 체제'로 '실패한 국가'이나, 매우 위험한 국가이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북한과 손을 잡고 대화․협력해 나가야 한다. 모순 같지만 현실은 이렇다. 북핵은 북․미 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최대 당사자는 우리 한국이다. 당장 북한의 핵능력 제고를 막아야 한다. 동결이 급선무이다. 북한 비핵화로 가는 길이 보다 힘들어졌지만 비핵화의 장기구도 위에서 북핵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미국 차기 정부는 겉으로는 대북 강경노선을 강조하면서도 물밑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협상의 추억'을 되살릴 것이다. 이 외의 옵션은 비현실적이고 실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의 실체에 대한 냉정한 인식 위에서 민족 미래를 내다보는 '제3의 노선'이 기대된다.

글 | 조 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선문대학 초빙교수로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통일연구원에서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과 부원장을 역임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 오래 동안 연구해왔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 사회의 내부 동력이 관건적이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와 함께 문명사적 전환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정치의 역할을 탐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