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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청문회와 특검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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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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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노현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박근혜정권이 펼치는 막장드라마에는 끝이 없는 것일까? 21세기 대한민국의 청와대와 문체부가 문화예술인 9,473명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설마가 사실로 굳어지고 심증이 물증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의 자금지원과 포상, 각종위원 자리에서 배제됐다. 도무지 설명할 수 없어서 의혹으로 남았던 사안들이 이제야 명쾌해졌다. 심사평가에서 100점 만점을 맞고도 문화예술기금 지원에서 탈락한 이윤택 극작가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대선당시 문재인 후보의 지지연설을 한 죄란다.

블랙리스트와 동시에 드러난 박근혜 정권의 국기문란이 또 하나 있다. 최순실의 딸에 대한 승마협회의 특혜의혹을 객관적으로 조사, 보고한 탓에 박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혀 한직으로 좌천됐던 문체부 담당국장 얘기다. 그 국장이 국립중앙박물관의 교육문화교류단 단장으로 자리를 보존 중인 사실을 알게 된 박 대통령이, "그 사람 아직도 있어요?"라고 불쾌감을 표시했고 문체부가 곧바로 사표를 받아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직업공무원제도가 무너진 셈이다. 반면 국민들이 "그 사람, 아직도 있어요?" 라고 묻는 그 사람, 우병우 민정수석과 김재수 장관은 아직도 건재하다.

문득 반정부 문화예술인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도청, 감시하며 무대와 지면을 봉쇄해온 동독 시대를 그린 영화, '타인의 삶'이 떠올랐다. 악명 높은 비밀정보기관 슈타지의 공작대상이 돼 연극배우로서 성공을 보장받고 연인관계인 유명극작가의 반정부활동을 밀고할지를 놓고 번민하는 미모의 연극배우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다. 왠지 당시 슈타지가 그랬듯이, 문제의 블랙리스트도 국정원이 만들어 청와대에 제공했을 것만 같다. 이게 나 혼자만의 억측일까.

1950년대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매카시 상원의원이 공산주의자명단을 갖고 있다며 흔들어댄 뒤 대대적인 마녀사냥이 전개됐다. 진보성향의 학자들과 함께 영화배우 등 문화예술인들이 졸지에 반미(un-American)활동청문회에 줄줄이 불려나가야 했다. 이 과정은 친구와 지인들 사이에 밀고와 배신, 이간질을 부추겼고 그 후유증으로 미국문화예술계는 오랫동안 불신과 반목으로 몸살을 앓았다. 미국역사가 매카시즘이 휩쓸었던 시기를 야만과 광기의 시대로 기억하는 이유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권력남용과 인권침해, 국기문란의 극치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9천473명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죄가 있다면 세월호참사 처리과정에서 정부의 잘못을 지적한 죄다. 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14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공개 지지한 죄다. 유력 대선주자들의 적극지지자를 블랙리스트로 묶어 불이익을 주기로 한 정권의 행위는 권력의 힘으로 유력야권주자의 손발을 묶고 확장력을 막는 간악하고 비열한 민의왜곡이자 중대한 범법행위다. 한마디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민주법치국가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국기문란의 중대범죄다.

그런데 블랙리스트가 과연 문화예술인에게만 있는 것일까. 혹시 지난 8년 동안 정부비판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시민들이 모두 어디선가 블랙리스트로 관리되고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국정원에 의한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의 말미에 화면을 가득 채운 4만 명도 넘는 후원회원 명단이 떠오른다. 이 명단은 향후 국정원이 조직보위 차원에서 특별 관리할 블랙리스트로 둔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생각이 과연 피해망상일까, 합리적 추론일까?

진짜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할 사람들은 현 정부에 비판적인 선량한 시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이 아니다. 당연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내려 보낸 자들이다. 독재시대의 권력관행을 버젓이 되풀이해온 청와대의 권력자들이다. 국정원과 경찰을 동원해 대선에 개입했던 권력자들이다. 부당한 권력행태에 찍소리 못하고 따를 뿐인 전문가들이다. 진경준 류의 스폰서검사들이다. 정권과 재벌에 길들여진 고위법관들이다. 지난 8년 동안 재심을 통해 무죄로 확정된 100건도 넘는 간첩조작사건들의 판검사들이다.

나아가서, 영화 '자백'의 소재가 된, 중국공안당국의 출입경기록확인서 위조를 공모한 국정원지휘라인과 관여직원들이다. 이들 모두에게 선고유예로 면죄부를 준 뻔뻔스런 판사다. 숱한 '리스트' 정국에서 순전히 정치검찰 덕에 다시 살아나 큰소리치는 자들이다. 우리사회는 이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끝까지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국민과 역사의 블랙리스트가 정권과 재벌의 블랙리스트보다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사안의 엄중한 성격상 블랙리스트 정국은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보수신문들은 이 사안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청와대와 문체부는 이미 전면 부인, 모르쇠 모드에 돌입했다. 자칫 지리멸렬한 진실공방이 펼쳐지다 검찰수사로 넘어가며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장 야3당이 공조하여 하루바삐 국회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도대체 청와대의 어느 선에서 논의하고 결정해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내려 보냈으며,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어떻게 활용해왔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청와대가 의혹의 주체이기 때문에 이 사안은 애당초 검찰 조사에는 적합하지 않다. 마침 여소야대 국회이기 때문에 야3당이 공조하면 곧바로 청문회를 실시하고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샅샅이 전말을 밝히고 관련자에 대해 엄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 만에 하나, 대통령이 관여된 사실이 밝혀지면 지체 없이 야3당이 탄핵절차를 개시해야 마땅하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로 별별 사건을 다 겪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사는 것이 이토록 참담하고 이토록 부끄러운 건 처음이다.

세계인권선언의 전문에서 인류공동체가 선언했듯이, 반대와 비판 등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압제와 폭정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혁명이나 봉기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세계인권선언의 이 문구는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에 의미심장한 경고문처럼 들린다. 이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할 생각이다.

사실 나는 국정원댓글사건이 터졌을 때도 차마 정권퇴진을 말하지 못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을 내쫓고 윤석렬 수사팀장을 좌천시킬 때도 그랬다. 세월호 무책임이 드러났을 때도 차마 정권퇴진을 외치지 못했다. 세월호특조위의 조사를 방해하고 어처구니없는 법해석을 동원해 일찍 문을 닫게 할 때도 그랬다. 그런데 이제 아니다. 정권의 분탕질이 끝나지 않으면 국민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국민들이 최후의 수단에 기대지 않을 수 있도록 야3당의 신속하고 책임 있는 찰떡공조를 바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또 하나의 세월호가 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글 | 곽노현

서울의 첫 진보교육감으로 공교육의 새 표준을 만들기 위해 행복한 교육혁명을 추진했다. 그밖에도 삼성3세 무세승계 저지와 재벌개혁, 독립적 국가인권위 설립과 인권증진, 비밀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와 과거청산 등의 시대적 요구를 부여잡고 이론적, 실천적으로 씨름해왔다. 그 과정에서 법치주의의 전사이자 징검다리교육감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지금은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에 민주시민성을 충전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알 림> 국민의제 제 11차 공개 민회

국민의제 11차 민회는 문진영교수(서강대 사회복지학과)의 "사회복지 정책의 평가와 전망(가제)"를 주제로 한 발표와 이어지는 대담토론으로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일시 : 2016.10.20(목) 19:00 - 21:00
◈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5길 29 태화빌딩 지하1층 회의실(종각역 3번 출구)
◈ 대상 : 누구나
◈ 참가비 :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