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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사회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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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오(전 명지대 교수)

지금 세계는 중산층의 붕괴와 이로 인한 새로운 사회경제적 계급대립의 재현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중산층의 붕괴현상은 미국과 같은 세계 경제의 중심에서부터 중남미의 신흥경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전 세계적 중산층의 붕괴와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20세기에 이루어진 많은 신생 민주주의의 미래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면서 중산층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남의 나라의 일만은 아닌 것이 되고 있다.

87년 한국민주화의 사회경제적 토대는 80년대에 이루어진 실질적 완전고용과 실질 임금의 급격한 상승 그리고 고등교육의 대중화로 인한 중산층의 확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중산층의 확장은 빈곤계층과 저임금 노동자 계층의 일부가 고임금 정규 노동자층으로 편입되면서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유럽과 달리 한국의 경우에 노동자 계층의 균일적 생활상승이 일어났다기보다 그 혜택이 정규 대기업 노동자 집단이라는 일부에 편중되어 노동자 계층내의 계층분화가 심각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더구나 사회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복지체계의 후진성으로 인하여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 계층의 상당 부문이 사회적 고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현재의 저성장 기조 속에서 이제 완전고용은 불가능해졌으며 실업률의 상승과 불완전고용(비정규직)의 확대로 안한 상하위층 간의 소득, 자산격차의 확대 그리고 불완전한 사회적 보호로 인하여 한국 중산층은 항시적으로 빈곤층으로의 전락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중요 복지국가 모델의 하나인 독일과 서구에서도 한때 미래사회는 '평준화된 중산층사회'가 될 것이라는 중산층 사회론이 유행한 바 있었다.

그러나 과거 5,60년대의 낙관주의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서구와 미국에서 전 사회의 중산층화 경향은 70년대 오일쇼크 이후에 이미 중단되었고 90년대 세계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역 중산층화가 발생하기 시작하였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유럽의 약한 경제와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 중산층의 해체현상과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 되었다.

한국의 사회정책도 현재 중산층의 확대가 아니라 중산층의 더 이상의 몰락을 방지하자는 방어책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앙 정부가 설득력 있는 큰 그림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니 지방 정부 단위에서 청년 일자리 지원금이나 기타 형태로 현금부조를 내세우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고용, 복지, 교육과 같은 사회정책의 기본 틀을 제대로 건설하면서 대응하여야지 작은 규모의 일회성 현금부조로 해결될 사안은 결코 아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교육이 불평등의 재생산 통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개혁이 절실하다. 거기에 더하여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라는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중대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근본적 대응책을 강구하여야만 한다. 가족과 젠더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 변화에 대응하는 사회정책의 현대화 역시 고민하여야 한다.

지금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국가의 기본틀을 개헌을 통해서 바꾸자거나 혹은 현행 대의민주주의의 비효율과 허점을 선거법 개정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논의가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고 잠재적 대선후보군에 대한 전망과 평가도 한창이다. 이런 논의는 당연하고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런 논의의 와중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이른바 시효성이 지난 87년 체제를 대체할 새 헌법과 정치세력을 만들고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87년 당시와 확연히 달라진 사회경제적 환경과 조건을 중심에 두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달라진 점이란 87년은 고도성장의 정점에 위치한 시기였고 지금은 저성장, 저출산의 구조적 정착기라는 점이다. 지나간 보수 정권의 시기에 이명박 정부는 변화된 구조적 환경을 무시하고 고도성장의 재현을 내세웠으나 당연히 실패하였고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역시 고도 성장론의 아류를 내세웠으나 이 역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확대라는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는 듯하였으나 이를 뒤집어서 결국 성장과 분배 모든 측면에서 실패한 정부가 되었으며 이의 정치적 결과는 2016년의 총선 참패로 나타났다.

여야를 막론하고 차기 대선에서 저성장, 고실업, 격차확대 그리고 고령화라는 시대적 핵심과제에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세력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또 그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현재까지 보수정치세력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여하고 있고 야당세력은 실천 능력에 대한 신뢰를 폭 넓게 누리지 못하고 있다. 새 헌법 논의에 있어서도 이것이 광범한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려면 절박한 사회경제적 현실에 부응하는 핵심적 내용과 언어를 앞세워야 할 것이다.

정치권, 시민사회, 지식인계가 외환위기 이후 이 문제에 대한 대응에 계속하여 실패해온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한국사회의 엘리트가 말과는 달리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각성된 새로운 엘리트가 출현하든지 혹은 사회현실을 몸으로 느끼는 집단 스스로 정치세력화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할 때 정권교체가 발생하더라도 그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래의 위기 시점에서 문제의식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부족한 통치는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 삶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토대는 광범한 중산층의 형성과 보존이었다. 국민의 다수가 빈궁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란 감당하기 힘든 사치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불안정은 중장기적으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든다. 현재 한국사회에 광범히 퍼져가는 정치, 정당, 선거, 국회에 대한 피로와 실망감은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이며 여야 모두 심각히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사랑받고 존중받는 길은 새로운 정치관계법, 헌법을 통해 합리적 정치구조를 만드는 것과 아울러 과감하고 현명한 사회정책을 통해 중산층 중심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특히 이른바 대선주자들은 계파 간 연합, 지역 간 연합 같은 낡은 정치논리보다도 오히려 선거 이후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건강하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관한 대안 마련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유리할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글 | 이종오

(전) 명지대, 계명대 교수(사회학) 역임
서울대 상대 졸, 독일 마부르크 대학 철학박사(정치사회학)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회장, 민교협 공동대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2003),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2006-2008)
(현) 사단법인 경제사회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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