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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새판을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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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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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 논의를 위한 제언 -

글 | 조 민(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1. 국가의 실패

국가 구조를 바꿔야 경제가 산다. 현재, 국가의 권능과 역할은 '과잉 비대' 상태이다. 시민사회의 자율적 공간과 자조적(自助的) 기능은 국가에 흡수되었고 일자리, 교육, 복지, 안전 등 국민 개개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국가(중앙정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요구하는 실정이다. 저성장이 구조화된 뉴 노멀(New Normal) 시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국정 목표로 삼고 있지만, 정부의 노력과 정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양극화를 통제하는데 성공할 것 같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탄했다. 이러한 푸념은 국가가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구축하지 못하고 시장 헤게모니 세력에 끌려 다닌 그동안의 국정 현실을 말해준다. 국가는 모든 자원을 통제․동원하면서 국민 생활 영역에서 엄청난 권능과 권력이 집중된 리바이어던과 같은 괴수의 모습이지만 시장권력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였다. 이에 '시장의 실패'가 아닌 '국가의 실패'에 눈을 돌려야 한다.

국가는 과잉 비대에도 불구하고 국가 기능의 정상적 작동이 한계에 이른 '통치불능(Ungovernability)' 상태에 봉착했다. 말하자면 정치적 딜레마 상태인 '통치불능'의 정치적 한계 국면이 일상화되는 상황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통치불능은 잠재적인 정치 위기를 배태(胚胎)하는 내생적 요인과 그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불합리에서 기인한다. '한 민족, 두 국가'의 분단 구조에다, '한 국가, 두 국민'의 분열 구조는 근본적으로 통합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정치의 '51 vs 49'의 구조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기구 장악의 제로-섬 구조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무한 갈등구조 속에서 승복불가와 절치부심의 보복의 정치문화를 낳았다. 더욱이 만성적인 정치적 교착 상태로 이끄는 양극화되고 원심력적인 정당제도, 공공 부문에 널리 퍼진 불공정성과 부패, 위기관리에 적절한 제도적 기구의 미비 등은 국가의 과잉 비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실패'가 초래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재정립을 위해 중앙집중화된 권력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여기서 두 명제가 도출될 수 있다. 하나는 '국가가 퇴각하면 사회(시민사회 또는 공동체)가 전진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착하면 시장도 착해진다!'는 명제이다. 이 또한 정치의 문제이며, 정치가 바뀌면 민주주의도 경제도 산다는 말이다. 분배구조 악화에 따른 불평등 해소 그리고 경제 성장 문제 등은 사실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면 결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2. 국가 개혁, 정치 개혁

국가개혁과 정치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방(지역)정부로의 권력 분산이 대안이며, 다당제와 연합정부가 또 다른 대안이다. 법․제도적인 차원에서 중앙정부와 여의도의 특권과 권한을 내려놓아야 할 때이다.

국가구조 개혁 = 분권화

국가구조 개혁은 국가의 역할과 기능의 재조정 즉, 분권화에서 비롯된다. 중앙정치(청와대 및 여의도 정치)와 중앙집중적 권력과 자원 배분권을 지방정부로 분배하고 분산시켜 중앙정부/지방정부 간의 역할 분담 구조와 그리고 다양한 지방정부 간 상호 협력이 조화롭게 작동하는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장악해온 교육제도, 공안 시스템, 공기업을 통한 자원배분 및 교통․통신․유통․금융체계 등으로 사회(공동체)는 해체되었고 지방은 미(저)발달 상태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방자치야말로 민주주의의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지역)의 자율․자치의 기회는 철저히 차단되고 미약한 자립 역량마저 오히려 중앙권력에 몰수당하면서 그야말로 무늬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지방(지역)의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자치․자조의 공동체를 꾸려온 역사적 경험이나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오히려 교육, 일자리, 복지, 치안 등 개개인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국가의 역할과 개입을 기대하고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성찰이 요구된다.

중앙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축소하여 지방정부로 넘겨야 한다. 경제개발, 규제기능, 국토개발, 일반행정관리, 정보사찰 등 통제기능 축소와 함께 분권화시켜야 한다. 이처럼 국가구조 개혁은 분권화에 달려 있다. 반면 치안․대테러, 안보․국방․외교 등 국가의 고유한 기능과 더불어, 통일 지향적 국가발전 전략, 에너지․자원․식량관리, 환경오염․기후변화 등의 사안에서는 국가 기능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의 조정과 통합력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지역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이다. '미국이냐, 일본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라, '뉴욕이냐, 도쿄냐, 상하이냐'하는 지역 논리가 한층 중요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 각국은 지역경쟁력 강화를 위해 광역화 및 분권화를 동시 추구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분권화는 단순 지방자치 수준을 넘어 '준(準) 연방국가 체제'로 전환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실질적인 권한 이양과 예산(국세 vs 지방세) 문제 등의 조정이 필요하다.

특히, 청와대와 여의도로 대변되는 중앙정치로는 21세기 직접민주주의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으며, 중앙정치의 과부하를 극복하기도 힘들다. 지역(지방) 수준의 다양한 시민사회 영역에서 '생활 정치'가 분출되는 시대에는 '분권과 자치'의 이념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우 지역개성을 살린 특성화된 지역 발전을 모색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이나 저출산 문제 해결 등을 비롯하여 삶의 질이 보장되는 경쟁력 있는 지역 창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분권화를 통한 지방정치의 회생이 절실하다.

정치 개혁 = 다당제와 연합정부

한국 정치의 전통적인 거대 양당구조는 정치발전을 가로막아왔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 장벽을 높여왔다. 양당구도는 다원적이고 다양화된 시대의 정치적 이념, 가치, 서로 다른 수요 등을 반영할 수 없는 정당체제임에도 강고한 지역 의존적 구도 속에서 퇴행적 정치문화를 낳았다. 지난 4․13 총선에서 제3당의 출현으로 양당구조의 강고한 벽을 뚫었지만 여전히 호남 지역의 지지에 기댄 낡은 지역구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변화로 보기에는 한계가 크다.

한편 한국 정치는 산업화 시대를 지나 민주화 시대를 거치는 동안 모든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함께 대통령 권력의 - 제9차 개정 헌법(1987.10.29 공포)이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폐지 등 근본적으로 대통령 권력의 약화를 추구한 헌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강화로 나타났다. 이는 사실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즉, 민주주의의 역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보수정당이나 진보정당 모두 민주주의의 파행에 대한 어떠한 문제 제기도 없었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에 대한 의회권력의 발목잡기가 관행화되면서 대통령과 의회 두 선출 권력의 비타협적 갈등이 한국 정치의 진전을 가로막아온 요인이었다.

영합(零合)구도인 양당구도로는 협치(協治)와 조화의 민주주의적 정치 관행을 뿌리내리기 힘들며, 언제든지 통치불능 상태를 가져오는 낡은 시스템이 된 지 오래다. 이러한 양당구도는 군부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정치적 타협인 '87년 체제'의 산물로, 최근 약간의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만, 발생론적 차원에서 보면 '산업화세력=보수세력=영남지역' vs '민주화세력=진보세력=호남지역'으로 대별되는 진영 간 대립과 갈등구조를 반영한 정치구도였다. 전혀 미래를 열어갈 수 없는 악순환 구도라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3. '새 판짜기' 개헌

정치개혁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는 한편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미래지향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세력 즉, 6~7개 정도의 정당이 서로 경쟁하고 타협하는 다당제가 뿌리 내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다당제 구도 아래서 제(諸)정치세력 간 '설득과 타협의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고, 두 선출 권력 간의 엇박자 구조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절대 다수의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집권당이 국가를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끌고 가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다당제 아래 연합정부 형태는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는 안정적인 정치구도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다당제 구도 아래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와 의회의 발목잡기 간의 갈등과 대결로 치달아온 파국적 상태가 극복되고 국정의 원활한 수행이 가능해진다. 다당제와 연합정부 형태가 정치 개혁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격차 사회를 극복하고 협치를 통한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정치가 민생과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치문화를 해소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출하는 작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가 개조와 정치 개혁에 도움이 된다면 헌정체제를 다시 한 번 바꿀 필요가 있다. 개헌 문제가 논의될 경우, '분권화와 연합정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현실적이다.

글 | 조 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선문대학 초빙교수로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통일연구원에서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과 부원장을 역임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 오래 동안 연구해왔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 사회의 내부 동력이 관건적이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와 함께 문명사적 전환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정치의 역할을 탐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