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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선의 흥행에 빨강 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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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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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초하(충북대학교 명예교수)

제19대 대통령선거가 이제 1년 3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이 선거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험대이다. 신물 나는 정치를 걷어내고 신명 나는 정치를 펼쳐낼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번 이 자리(8월 1일자 칼럼)에서, 이제야 살 판 만났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의 결실을 맺기 위해 남은 시간 알뜰히 챙겨 시민들이 나서서 새로운 정치문화마당을 직접 연출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그런 시민운동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후보 경선 단계에서부터 기존의 유력정당들이 그들 내부에서 진행하는 방식으로는 국민적 관심을 불러낼 수 없을뿐더러 당선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간의 차질이 생겼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또는 적어도 어떤 인물이나 집단을, 이러한 시민정치판에 등장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신명나는 분위기로 이야기하려던 생각이 주춤거려졌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그 차질을 빚은 사건에 대해 넋두리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한정하고자 한다.

8월동안 유력정당 둘이 전당대회를 통해 비대위체제를 벗어나 정상적인 당권질서를 회복했다. 한데 묘하게도 여당과 야당이 서로 쌍둥이마냥 닮은꼴이 돼버렸다. 새누리당이 대표와 최고위원을 친박 일색으로 채우는 비상식적 구도로 비대위를 벗어나더니, 그 후 스무 날도 채 되기 전에 더민주당도 친문 일색으로 지도부를 채우는 당권구조를 갖추었다. (아마도 대통령을?) '모시는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새누리의 새 대표에 비해 5선의 관록을 지닌 더민주의 새 대표는 초선의 문재인을 '모시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게 쉽지 않을 것임을 적어도 직감한다. 범국민적 관심과 여망을 받고 있는 유력한 후보들이 나서서 공정한 분위기 속에서 화려한 경선을 펼치도록 내년 대선을 위한 제반 준비와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약 같은 다짐이 왠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다. 현재의 모양새로만 본다면 양당 모두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당내경선이 아주 긴장감 없고 재미없는 행사로 전락할 것이 분명해졌다. 그에 따라 유권자 시민일반은 두 당의 내부경선은 물론 내년 말의 본선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흥미가 돋지 않는 만큼 투표율도 저조할 것이다.

국민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정치행사가 흥행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대통령선거가 흥행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 더욱 문제인 것은, 그래도 수구보수 쪽보다는 부패와 불성실이 덜할 민주-범진보 야권 쪽의 후보가 당선될 길이 아득히 멀어진다는 데 있다. 부패-부정-독재에 둔감하고 연고-이권에 민감한 범보수 성향 투표권자들의 관성적 충성투표라는 프리미엄을 누리는 새누리 후보가 조직-자금-홍보에서까지 우위를 점하는 선거운동을 거쳐 당선되는 것은 더욱 확실해진다. 이러저러한 열세에 놓인 현 야권후보(들)의 편에서는 정책과 미래비전다듬기와 산뜻한 홍보에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의 연대-통합을 거쳐야만 당선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기에 민주-범진보 야권 후보가 당선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 있다. 진실한 인간성에 기초한, 감동을 자아내는 스토리를 갖는 일이 그것이다. 성실과 진심을 바탕으로 따뜻한 웃음과 진한 눈물이 배어 있는 감격적인 풍모를 보여줄 수 있을 때에만 투표권자 대중에게 신뢰를 주고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국민적 촉망을 받는 거물급 후보들이 모여들고 열성와 패기와 지혜를 갖춘 두뇌들이 서로 도와 정책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긴장 넘치는 상호 견제-조율과 분업-협조의 과정을 생략한 채, 당내 경쟁 파벌이나 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주류의 중심 인물이 후보 자격을 차지할 경우 이러한 신뢰와 호소력은 확보할 수 없다. 범진보 민주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쉽게 이길 경우 본선에서는 쉽게 진다.

이런 판국에서는 2017 대통령 만들기라는 주제로 신명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게 우스꽝스러운 일이 된다. 말하는 이는 흰소리나 뱉아내는 싱거운 사람이 될 터이고, 듣고 보는 이의 편에서도 웬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는 의아스러움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일단, 흥이 돋는 이야기는 나중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아예 버릴 수는 없다. 내년에도 될성부른 대통령 하나를 세워내지 못하면 우리 정치에서 희망을 만들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꽉 막혀 진로도 퇴로도 없는 듯이 보이는 대선구도에서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니다. 앞으로 남은 1년 3개월동안 많은 변수가 등장할 것이 틀림없다. 개헌 논의, 세월호 참사 처리, 사드 배치 등 굵직한 당면 과제들을 둘러싼 여러 집단들의 논란과 대결이 벌어질 터이고, 문재인, 안철수, 반기문 뿐 아니라 박원순, 손학규, 김부겸, 안희정, 김무성,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등 내년과 2022년을 대비하는 여야 잠룡들의 존재 부각 노력도 이어질 것이다. 거기다가 남북관계나 국제질서에서 새로운 이슈가 터져 나오거나 나라 안팎에서 어떤 사건-사태가 돌발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 소용돌이들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거나 어쩔 수 없이 또는 자발적으로 퇴장하는 인물이나 집단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들의 잔치'를 '우리의 잔치'로 만들어갈 '우리'들의 규모 또한 커질 것이며 구성집단의 범위도 넓어지고 다양해질 것이다. 이런 기대를 품으면서, 두 정당의 실망스러운 모습에서 터져나오는 한숨과 새어나오는 아쉬움을 오늘은 우선 달래야겠다.

글 | 유초하

유초하는 1948년에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2년부터 충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과 한국사상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작년부터는 파주에 작업장을 마련하여 <한국사상사산책>을 저술 중이며, 마로니에방송에서 대중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배경신념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래를 개척하는 힘은 현재의 자신감에 있고, 그 자신감은 역사와 문화에 바탕한 긍지와 자부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