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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기술 강탈에 신음하는 중소벤처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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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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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맹성렬 (우석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몇 년 전 전북의 기술보증기금(기보) 요청으로 중소벤처기업인 A사를 직접 방문하여 대출과 관련한 기술 감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 업체는 당시 한 대기업으로부터 다년간 많은 물량의 납품 보장을 받고 기보로부터 200억원을 대출받아 관련 부품을 제작할 공장을 짓고 제조 장비를 사려고 했다. 오랫동안 기술적으로 내실을 다져온 기업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만, 한 기업의 약속만 믿고 별다른 대책도 없이 너무 큰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닌가 좀 걱정이 되긴 했는데, 이 부분은 기보 관계자가 판단할 문제라 나서지 않았다. 결국 그 기업이 원하는 대로 대출을 받아 공장을 짓고 장비들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기보 관계자를 통해 들었다.

작년에 다른 중소벤처기업 B사로부터 가스 센서 관련 세미나 요청을 받고 그 회사를 찾아갈 일이 생겼다. 알려준 주소대로 가보니 몇 년 전 기술 감사를 했던 바로 그 회사 건물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A사 로고는 간데없고 B사 로고가 건물 전면에 붙어있었다.

세미나를 마친 후 B사 대표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건물과 장비 상당수를 B사에 매각한 후 A사는 그 건물에 세를 살고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거래를 할 것처럼 했던 대기업이 A사의 노하우를 파악한 후 대부분의 납품 물량을 다른 중소기업과 자회사로 돌리는 바람에 A사는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게 되어 건물과 장비를 팔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B사 대표는 자신의 회사도 A사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한 대기업 계열사가 독일의 한 글로벌 기업과 자동차용 센서 모듈을 공급하기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하지만, 그 기업에는 관련 기술이 전혀 없어 B사의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B사는 그 회사의 약속을 믿고 관련 기술의 노하우를 다 알려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기업은 B사를 따돌리고 자회사에게 관련 기술을 넘겨서 센서 모듈을 제작하여 독일 기업에 납품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B사가 관련 기술의 노하우만 갖고 있던 것이 아니라 몇 건의 특허도 갖고 있었는데 이 특허를 마치 저희들 것처럼 강탈해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B사는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갖고 가고 싶었으나 그런 일로 문제 삼았을 경우 관련 대기업의 많은 계열사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다시는 거래를 할 수 없게 될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디다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최근 산학협동과제와 관련해서 B사 대표를 만날 일이 생겼다. 과제 관련 대화를 나눈 후 차 한잔 마시며 강탈당한 기술관련 특허들에 대한 뒷소식을 들었다. B사가 직접 나서서 응징할 방도가 없어 그 특허들을 국내 '특허괴물(patent troll)'에 팔았다고 했다. 특허괴물이란 기술생산력 없이 분쟁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 있는 지식재산을 저가로 매입하여 이를 토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여 엄청난 수익을 얻는 특허전문 회사를 이르는 말이다. 주로 외국계 회사들이며 원래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었는데, 최근에 우리나라 대기업에 특허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강탈당하다시피하는 중소 벤처기업들 대신 싸워주는 '의적 일지매'와 같은 토종형 특허 괴물이 등장했다고 한다. 대기업들에 의한 중소벤처기업들의 특허 강탈을 보다 못한 뜻있는 한 변호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고 했다. 얼마나 대기업들의 횡포가 심하면 이런 회사까지 나타나게 되었나 놀랍기만 하다.

이처럼 주변에 대기업들의 기술 강도질에 치를 떠는 중소 벤처기업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한때 대기업에 몸담고 있던 사람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이웃 일본의 대기업들은 기술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자국 벤처기업 뿐 아니라 외국 벤처기업에 대해서도 무엇을 빼앗으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자세를 보이며, 특히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장비까지 사준다고 한다. 고가인 장비 비용을 떠넘기면 중소벤처기업이 자신들이 의뢰한 기술을 개발하다 도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배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 일본이 세계적인 기술 강국인지 곱씹어보게 하는 대목이다.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 1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선진 기업윤리가 확립된 때문이라고 애써 이해하려 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의 윤리의식은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비해 그 수준이 미달이어도 한참 미달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김영란법이 통과되는 것을 계기로 대기업들의 기업 윤리 문제가 공론화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도 대폭 강화되어 이런 말도 안 되는 횡포가 조속히 사라졌으면 한다.

글 | 맹성렬

현재 우석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중.
영국 Cambridge University 공학박사.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 정책위원, 중앙위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술인문융합창작소 연구위원.
저서: 『아담의 문명을 찾아서』, 『과학은 없다』, 『UFO 신드롬』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