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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이텔스바흐 원칙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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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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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노현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사드 도입이 필요하고 안전한지는 불가피하게 논쟁적이다. 군사와 안보를 넘어 외교와 경제에 두루 걸친 복합적인 문제인데다 관련 당사국이 여럿이라 그렇다. 당연히 사드 도입 전격 결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과 저항이 진행 중이다. 배치 장소로 결정된 성주 주민부터 똘똘 뭉쳐 반대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는 지난 7월24일 사드 배치의 당위성과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국방부 문건을 모든 학교의 학부모, 교사, 학생에 안내해 줄 것을 17개 시도교육청에 지시했다.

교육청의 반응은 세 갈래로 나타났다. 경북교육청을 포함한 10개 교육청은 늘 그래왔듯이 교육부 공문을 그대로 학교로 발송했다. 홍보 문건을 받아본 경북 성주의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렸을 것은 불문가지다. 다른 한편 광주와 강원 등 4개 진보교육청은 교육부 공문의 학교이첩을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경기와 전북, 서울교육청은 전례 없는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 공문을 그대로 보내는 대신, '열띤 논쟁이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찬반양론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학교로 보낸 것이다.

그 이후로 학부모나 교사를 상대로 강연할 때 청중들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세 번째 대응 방식에 대한 지지가 80% 넘게 나온다. 학교 밖 세상에서 '학문적, 정치적으로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선 교실 수업에서도 반드시 논쟁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원칙에 압도적인 동의를 표하는 셈이다. 이 원칙은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섯 성향의 정치교육 이론가들과 실천가들, 그리고 정치교육 관계자들이 1976년 독일 보이텔스바흐에 모여 며칠을 토론한 결과 실질적 합의에 도달한 3대 원칙 중 두 번째 원칙이다. 보통 논쟁성 재현 원칙이라 부른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은 세상에서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인 사안, 이른바 주요 정치 현안과 쟁점에 대해 학교 수업에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물으면 교사및 학부모 청중의 80% 이상이 그렇다고 답변하더라는 점이다. 내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결과라 놀라웠다. 이유는 그래야만 아이들이 그런 문제를 교육적으로 생각하고 토론해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과 그래야만 아이들이 현실 문제에 대해 바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정치 현안을 다루는 데는 여러 제약이 있다. 우선 교사 스스로 잘 알지 못하므로 준비가 쉽지 않다. 미리 정해진 진도빼기에도 방해가 된다. 게다가 묘하게 금기시되는 주제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세월호, 강정, 밀양, 성주 등 그때그때 고도로 정치화된 대형 이슈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현실의 중요한 사회문제에 대해 학교수업을 통해 교육적으로 학습하고 토론할 기회를 갖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내친 김에, 정치, 역사, 법, 경제 등 사회교과 시간에 학문적,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현안을 가르칠 때 교사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놀랍도록 동일한 견해를 표출했다. 국가적, 사회적 현안과 쟁점을 다룰 때에는 교사가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특정 견해를 주입, 교화, 옹호해선 안 된다는 것.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의 독립적인 판단을 돕는 데 있지 교사의 견해를 아이들에게 전수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원칙 역시 학교 정치교육의 원칙으로 독일 보이텔스바흐에서 합의된 3대 원칙 중 첫 번째 원칙이다. 학생압도 금지원칙 또는 주입교화 금지원칙이라 부른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구성하는 마지막 제3원칙은 학생 이해관계 중심 원칙이다. 이는 정치교육의 목적이 학생 개개인이 어떤 정치 상황에서든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증진시키는 데 필요한 방법과 수단을 탐색하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앞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론적 분석과 이해를 넘어 그것에 영향을 끼치는 데 필요한 시민행동과 정치참여의 역량까지 익힐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정치교육 혹은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것이다. 이 원칙에 대해서도 교사와 학부모 청중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보이텔스바흐 합의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용적으로는 그 3대 원칙을 인식, 수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독일의 모든 정파들이 정치교육의 원칙으로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에 합의할 수 있었듯이 우리나라 교육계도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민주시민교육의 원칙이자 사회교과 수업의 원칙으로, 나아가서 교직윤리의 원칙으로 보이스바흐 원칙을 공식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는 셈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곧 3대 원칙은 금년에 40주년을 맞이한다. 그 사이 독일 학교에서는 정치교육의 3대 원칙으로 뿌리내렸다. 영국에서는 주입교화 금지원칙과 논쟁성 재현원칙이 '1996년 교육법'의 제406조와 제407조로 명문의 법이 됐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은 이제 유럽연합 국가들의 보편적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금까지 이러저런 비판과 보완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정파가 합의한 최소한의 민주시민교육 원칙이라는 점에서 철옹성 같은 권위를 자랑한다.

내가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에 꽂힌 이유는 그것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교사의 정치활동권을 제약할 것이 아니라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을 공식 수용하면 된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은 내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덜 제약적이면서도 더 효과적인 대안으로 다가왔다.

우리 헌법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되어야 하는 어떤 가치로 선언할 때 합리적 핵심은 수업시간에 특정 정당의 입장이나 교사의 정치적 견해가 일방적으로 주입, 교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사 개개인에게 판단 정지나 교육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이 독립적인 판단 주체가 되게끔 학생을 무엇으로도 압도하려 들지 말라는 뜻이다. 현실적으로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의견과 논거를 제시하고 토론과 논쟁을 통해 차이와 장단점에 눈뜨게 한 후 최종판단을 학생 개개인에게 맡기고 기다려주는 자세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하는 교사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되는 정치적 편향성과 당파성의 위험은 크게 볼 때 두 군데서 온다. 하나는 정권의 요구, 다른 하나는 교사의 확신이다. 교육부의 지시에 따라 수업시간에 정부 여당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교조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면 학교는 정부 여당의 홍보기관일 뿐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 사드 배치의 당위성과 안전성을 확신하는 국방부의 일방적 홍보자료를 교실에서 가르치라는 교육부 공문이 전형적인 보기다. 정치적 확신이 강한 교사가 교단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여과 없이 쏟아내는 경우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한다. 이런 교사는 교육을 주입이나 교화로 착각하고 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것을 정치적 중립성으로 포장하고 공공연하게 수업시간에 이를 자랑하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신민형 시민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심하게 제약하는 입법정책을 써왔다. 정당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정당가입과 정당활동을 못하게 해왔으며 선거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선거운동을 못하게 해왔다. 뿐만 아니다. 본선이건 경선이건 입후보를 하려면 먼저 사직하도록 강제했다. 그 결과 교사집단의 정치적 진출이 철저하게 봉쇄돼 교사 출신은 정치권에서 멸종위기종이 된 상태다.

정치활동권을 박탈당한 집단으로는 교사 외에도 공무원이 있지만 공무원 출신은 국회, 광역의회, 기초의회는 물론 지자체장 등 선출직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직종의 하나다. 그 결과 공무원의 경험 세계와 이해관계는 입법과 정책과정에서 넘치게 반영된다. 교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유초중등 교육예산이 55조를 넘고 교사만 해도 50만에 육박하지만 시군구의회건 시도의회건 국회건 교사 출신 의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교육관련 입법과정이나 정책과정에서 교육전문가인 교사집단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은 그 결과다.

반면 독일에서는 연방의원의 24%가 교사 출신이다. 주의회나 기초의회로 가면 그 비율은 더 높다. 독일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사집단은 1등 주권자, 1등 시민이 될 모든 조건을 갖췄다. 가장 학력수준이 높은 집단이고 사회경제적으로도 확실한 중산층이다. 선진유럽 국가들에서 교수, 법률가와 함께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집단 중 하나인 교사집단이 정치에서 배제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위해 교사의 정당활동과 선거운동, 입후보를 금지하는 3중 금지시스템은 조금도 합목적적이지 못하다. 교육현장인 학교수업시간을 통해 정권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또한 정치적 신념이 강한 교사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교사의 교육행위에 대한 제약이 아니고 교사의 정치활동에 대한 제약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과잉규제다. 필요한 것은 수업시간 중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정한 규제인데 수업시간을 넘어 일과 후, 주말, 방학에도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 시간적으로도 과잉규제이고 내용적으로도 과잉규제다.

교육현장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원칙은 보이텔스바흐 원칙이다. 이것만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수업문화와 교직윤리로 뿌리내리면 교사가 당적을 갖건 특정 후보를 지지하건 선거에 나가건 교단의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질 수 있다. 그러면 지금의 정치활동 제약 입법이 소용없게 된다. 보이텔스바흐 원칙 준수를 조건으로 일반시민과 동일한 정치활동 권리를 보유하게 된 교사집단은 각종 선출직에 자유롭게 진출하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민주주의를 확장할 뿐 아니라 좀 더 건강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보이텔스바흐 원칙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시도가 중앙일보와 한겨레가 공동제작해서 매주 화요일마다 똑같은 지면에 선보이는 '사설 속으로' 공동기획이다. 양사는 2013년 5월20일 이래 지금까지 매주 1회, 뜨거운 논쟁이 진행 중인 사회현안을 선정해서 양사의 대비되는 사설이나 칼럼을 싣고 친절한 비교와 논평을 곁들인다. 독자 입장에서는 미디어교육으로도 정치교육으로도 몹시 좋다. 같은 사안에 대해 입장이 완전히 다른 경우보다는 강조점이 달라서 미묘하지만 확실한 차이를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다. 일반 독자들은 공동기획 '사설 속으로'를 통해서 신문도 마치 정당처럼 세상을 보는 하나의 조직된 세계관이자 어쩔 수 없는 색안경이라는 사실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공동기획 '사설 속으로'는 시민교육용으로도 훌륭하지만 학교교육용으로도 활용도가 크다. 지금은 논술교육용 자료로 사용되는 측면이 강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면 토론논쟁 수업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 이 경우 교사들의 편의와 참고를 위해서 매주 논쟁수업 지도안과 읽기자료를 함께 제시해주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전국 곳곳에서 진행된 활용수업의 교안과 후기를 모아내서 토론논쟁 수업의 이론과 경험을 공유하는 온라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면 좋을 것이다.

'사설 속으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지와 보수지가 공동 제작하는 언론사상 유례없는 민주시민교육 실험이다. 보이텔스바흐 원칙을 지면 제작에 적용해 양사의 논쟁적인 주장과 논거를 그대로 드러내고 다양한 각도에서 장단점을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며 깨어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게 돕는다. 한겨레와 중앙일보가 보이텔스바흐 원칙이 교사의 정치활동 금지 입법의 대안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공동기획을 시작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양사는 이미 부지불식간에 보이텔스바흐 정신에 따라 민주시민교육의 전범을 만들어내는 일에 3년 넘게 손을 잡았다.

나는 양사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OECD 가입 당시부터 권고대상이 돼온 교사의 정치활동권 보장을 위해서도 협력하기를 기대한다.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협력은 교총과 전교조의 협력은 물론 여당과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견인차가 될 수 있다. 여기에 교육감들이 한마음으로 힘을 합친다면 보수, 진보를 망라하여 민주시민교육과 계기교육의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고 덤으로 머지않아 교사의 시민적 지위 확보라는 한국 민주주의의 일대 사건이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이 글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뉴스레터'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글 | 곽노현

서울의 첫 진보교육감으로 공교육의 새 표준을 만들기 위해 행복한 교육혁명을 추진했다. 그밖에도 삼성3세 무세승계 저지와 재벌개혁, 독립적 국가인권위 설립과 인권증진, 비밀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와 과거청산 등의 시대적 요구를 부여잡고 이론적, 실천적으로 씨름해왔다. 그 과정에서 법치주의의 전사이자 징검다리교육감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지금은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에 민주시민성을 충전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