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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즐기는 올림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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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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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오(전 명지대 교수)

리우 하계올림픽의 열기가 뜨겁다. 흔히 지구촌 축제라고 하는 올림픽은 열릴 때마다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보다 경제, 사회적으로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브라질에서 이 행사가 치러짐으로 환경, 치안, 주민 반발 등의 문제가 숱하게 제기된 바 있다. 한국은 이제 평창 동계올림픽을 2년 남겨두고 있는데 아시아에서, 동·하계 올림픽을 동시에 주최한 2개국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향후 대규모 국제경기 유치에 관하여 깊이 자성할 때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올림픽은 어느 때부터인가 강대국 간의 국력 경쟁의 장이 되었다. 과거 미소가 주도한 냉전시기에는 미소의 각축장이었고 이제는 신흥 강국 중국이 뛰어들어 세계의 패권을 놓고 미, 중, 러가 다투는 장이 되었다. 올림픽을 통한 국력 경쟁은 2차원에서 이뤄지는데 하나는 대회를 유치하여 국력을 과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메달경쟁을 통하여 역시 국력과 국위를 과시하는 것이다. 그간 세계의 유력한 국가들은 치열한 대회유치 경쟁을 벌여왔는데 신흥경제국가 한국도 80년대 들어 88서울 올림픽 그리고 2000년대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성공하였다. 여기에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더하여 국제스포츠 행사의 삼관왕이 되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이는 국민적 자부심과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행사 개최의 다른 측면, 유무형의 비용발생은 국민적 열기와 흥분 속에 상당히 묻혀버린 감이 있다. 서울올림픽의 시설투자는 1000만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짐으로 해서 사후 시설활용의 문제는 그리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 경기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제주도에 까지 경기장을 건설한 2002년 월드컵은 상당한 사후활용도의 문제를 낳았고 평창올림픽에 와서는 환경파괴와 낭비투자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뮌헨(독일), 스톡홀름(스웨덴), 오슬로(노르웨이)가 2026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줄줄이 철회한 사례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이들 국가는 세계 정상급의 동계스포츠 강국이면서 동시에 매우 부유한 국가들이니 능력이 모자라서 유치포기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들 나라와 유치후보 도시들이 더 이상 올림픽 유치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과 더구나 환경파괴와 시설투자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이 행사에 없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6년 리우 하계올림픽 그리고 한국의 월드컵과 서울, 평창 올림픽 유치는 개최 자체가 다른 모든 고려를 압도한 정치적 행위였다. 2008년, 2022년의 베이징 동·하계 올림픽도 마찬가지이다.

중국 같은 신흥 거대 강국에 있어서는 이는 여타 국가를 압도하는 공격적 정치행사이고 브라질의 경우에는 집안형편을 고려하지 못한 분수 넘친 행사가 되었으며 한국의 경우에는 국가적 열등감을 씻어내는 신흥경제의 과시행사가 되었다. 앞으로 지구촌 모든 국가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니 다 국가, 다 도시가 협력하여 최소의 비용으로 가능한 공동행사를 치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동개최 권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독 개최를 고집한 평창의 사례에 대해서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별 무반응이었던 것은 아직도 한국사회에 강고한 국가주의와 더불어 지역 이기주의의 표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다음에 금메달, 은메달을 세어서 국가순위를 메기는 메달경쟁 역시 지양되어야 한다. 방송사 중계도 한국의 메달 가능성이 있는 종목 위주로만 하니 스포츠에 대한 시야도 좁아지고 승패에만 집착하는 '이기기 문화'의 확산에도 일조한다. 이런 스포츠의 실적주의, 경쟁주의는 군대식 국가스포츠를 낳았으며 이는 결국 금번 올림픽에서 불거진 러시아의 조직적 도핑스캔들과 같은 사태로 이어졌다. 국가스포츠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은 한국의 선수촌 운용도 과연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냐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점검도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스포츠는 선수들만의 것이 아니고 모든 시민이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스포츠의 민주성 원칙을 제기해 본다.

마지막으로 800명, 400명 대의 선수단을 출전시키는 스포츠 대국 속에서 6, 7명의 미니선수단을 출전시키는 많은 국가가 있는데 올림픽이 이들 국가의 시민들에게 열패감을 주입시키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그러나 그래도 '난민팀'이라는 유일한 비 국가단위를 출전시킨 시도는 신선하였다고 여겨지며 궁극적으로는 국가단위를 지양한 공동체 단위의 올림픽을 꿈꾸는 것은 너무 이상적일까?

글 | 이종오

(전) 명지대, 계명대 교수(사회학) 역임
서울대 상대 졸, 독일 마부르크 대학 철학박사(정치사회학)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회장, 민교협 공동대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2003),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2006-2008)
(현) 사단법인 경제사회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