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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세상'과 '개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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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연택(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한 달여 전,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교육부 나향욱 기획관의 '개•돼지' 막말 발언은 여전히 살얼음처럼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구의역 사고에 대한 나 기획관의 발언내용이다. 그는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자했던 경향신문 기자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공유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나 기획관의 발언은 사이코패스를 의심케 한다. 그것도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나 기획관은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개'도 주인이 아픈 척이라도 하면 그새 꼬리를 내리고 어쩔 줄 몰라 한다. 민중 폄하의 비유적 대상으로 삼은 개조차도 공감능력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 개에게도 "위선적 행동"이 적용될지는 모를 일이다.

2002년 개봉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이란 영화가 있다. 뜬금없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영화 속 '조규환'의 캐릭터가 떠올려진다. 화면의 배경은 어느 뷔페식당, 조규환의 시선에 잡힌 장면은 식탐으로 가득 채워진 손님들의 접시, 그들을 개•돼지처럼 경멸하듯 바라보는 조규환의 표정이 서서히 클로즈업 된다. 이어 어느 중년의 사내가 실수로 몸을 부딪치면서 음식으로 옷이 더렵혀진 조규환에게 공손히 사과를 한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위선'으로 간주한 조규환은 그를 다음 살해 대상자로 지목한다. 살해로까지 이어지는 영화적 결말을 '개•돼지' 막말 사건과 연관시키는 것은 당연히 지나치다 할 것이다. 하지만 공감능력을 상실한 반사회성 인격 장애의 측면은 유사성을 지닌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신분제'에 대한 나 기획관의 발언내용은고위직 공무원의 위치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선 충격적이지만, 그동안 사회 양극화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다. 오히려 놀라운 일은 그를 위시해서 우리 사회에 폭 넓게 만연된 공감능력의 상실과 이로 인한 인격 장애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이 동반하는 폭력성에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아동 살해의 경우를 보자. 부모가 마치 자식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양 동물 대하듯 다루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같은 폭력성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성인이 아동에 대해, 남성이 여성에 대해, 일반인이 장애인에 대해 여지없이 이뤄진다. 그리고 급기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이뤄진다.

생사여탈권을 상실한 인간은 남녀노소 예외 없이 노예에 불과하며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개•돼지 발언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극소수가 대다수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그들을 마치 노예처럼 여기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인격장애에 의한 폭력성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자본과 국가권력의 차원으로 넘어간 셈이다. "민중은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는 나향욱 기획관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개는 스스로 생존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주인에게 생사여탈권이 주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대한민국 사회가 그의 말대로 이뤄진다면 이것이 '개 같은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개 같은 세상'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모르겠지만 '개들의 세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니 인격장애와 이로 인한 폭력성이 보다 폭넓게 '개들의 세상'에 침투해 있다. '개들의 세상'은 '개 같은 세상'을 극적으로 조명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개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면 '개 같은 세상'이 얼마나 일상적인 폭력의 세계에 잠식되어 있는지를 확인케 한다. 생명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한 인간에 의한 폭력성은 개들을 '개 같지 않은 세상'에 가둬두고 있다. 개뿐만 아니라 동물 전반에 대한 학대행위와 생명경시는 식육을 목적으로 하든, 반려를 목적으로 하든 구분 없이 이뤄진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시대에 접어들고 있지만 개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로 곳곳에 방치되거나 유기된 개들이 거리를 위험하게 나돌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로 흑인 노예도 동물처럼 고통이 없을 거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미국의 노예제도하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물의 고통에 대한 무지는 여전히 인간의 잔인함을 동반하며 지속되고 있다. 쓰레기로 범벅이 된 개 공장에서 평생 출산의 임무를 수행하다 결국 도축되는 현실은 말 할 것도 없고, 개 식육을 주장하는 이들 또한 도축하는 과정의 경험이 생략되어 있기에 폭력성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지 못한다. 평생 목줄에 묶여 한 평 남짓 땡볕에서 일생을 마감하는 풍경은 일상적 경험의 대상이라 마주치기에도 두려울 정도다. 불법 도축이나 학대에 의한 살육이 이뤄져도 형량은 재물손괴죄보다 낮다. 동물보호법이 있지만 무색하기 그지없는 것이 개들 세상이다.

'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의 저자인 존 그레이(John Gray)는 자신의 저서에서 "도덕성은 절대 법칙이 아니다. 도덕성은 느낌이다. 다른 이들의 고통을 보고 공감하고 동정을 느끼는 감정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개를 비롯해 동물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도덕성은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개들의 세상'에 대한 인간의 도덕성 회복은 '개 같지 않은 세상'에서 개를 개답게 살아가게 할 수 있는 여건을 지금보다 더 좋게 만드는 일이며, 동시에 '개 같은 세상'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최근 반려동물 산업을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반려동물에 대한 정책은 동물에 대한 국민의 생명존중의식을 함양하고 나아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국민적 관심이 모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마디로 '개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동물에 대한 폭력이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동물유관단체와 일부 20대 국회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동물보호법개정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글 | 정연택

명지전문대학 도자전공 지도교수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서울시 문화관련 자문위원과 대통령 직속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버금이전'등과 같은 문화기획을 통해 시민공예가 육성에 힘쓰고 있으며, 공예의 생활화와 자립공생사회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