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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와 오바마, 그리고 한국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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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TON
Lucas Jackson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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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경선(방송통신대 헌법학 교수)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의 미국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본인이 강조하는 것처럼 여성이 주요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미국 독립 240년 사상 최초의 일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8년 전에도 힐러리는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후보였다. 그런데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버락 오바마로 인하여 그녀는 기회를 놓쳤다. 힐러리와 오바마, 두 사람 모두 새로운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냐,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냐가 되는 과정에서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필자는 힐러리가 연로하다는 이유로 오바마보다는 힐러리가 먼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힐러리가 이렇게 다시 등장하게 되어 무척 반갑다.

물론 오바마는 워낙이 출중한 인물이라서 그의 당선은 참신했고, 부러워할 만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해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어쨌든 그가 국내외 정치에서 보여준 탈권위적이고 정직한 태도는 정말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오바마의 당선을 보면서 한국 정치와 비교해보았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인의 자부심은 다이내믹 코리아 즉 사회의 역동성(dynamics)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자랑하는 역동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두 가지 점에서 미국 정치에 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우리는 흔한 소리로 미국은 인종차별사회라고 비난을 하지만, 미국인들은 흑인도 대통령으로 뽑아낼 수 있는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 하나로 인종차별 전체가 해소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는 노인 정치가들의 등장이 계속되는 데 비해, 미국은 어느덧 386세대가 대통령으로 등단한 청년국가를 과시했다는 점이다. 우리도 노무현대통령은 386세대의 집권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노대통령 자신은 46년생이고, 오바마는 61년생이었다는 점에서 달랐다. 우리는 오랫동안 장기군부독재를 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적체되었던 훌륭한 인물들 즉 김영삼, 김대중과 같은 분들이 대통령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젊은 나이의 인물들에게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조금 더 역동적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연공서열에 묶인 사회는 아무래도 구태의연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에서 필자는 헌법학자로서 한국의 역동성을 감안할 때, 대통령 5년 단임제도 길다고 생각한다. 레임덕 없는 4년 단임제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당분간 여야간의 정권교체는 물론, 연로자와 연소자들 사이의 세대간 정권교체도 자주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사회가 모든 세대가 각자의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여 문화의 융합과 합류가 이루어지는 말 그대로의 역동적 사회가 되리라고 본다.

그런데 4년 전 우리나라의 대선기간 중에 안철수 열풍이 몰아쳤다. 필자는 안철수씨를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뢰까지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과거에서 탈피한 새로운 타입의 인물을 희구하고 있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면서도, 동시에 안철수씨가 젊은 386세대라는 점에서 그가 당선되기를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는 미국만큼도 역동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일말의 허탈감도 느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미국에서 힐러리가 이만큼까지 온 것을 보고 있다. 미국 노예사를 보면 흑인해방보다도 더 늦게 된 것이 여성해방이었다. 노예제는 미국 남부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북부의 미국인들은 노예제를 반대했다. 그에 비해 미국백인남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을 보호와 낭만의 차원에서 존중을 했다. 즉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권위 아래서의 여성에 대한 보호주의(paternalism)가 지배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권위주의가 노예제 존치의 기저에 있었고, 왜곡된 인간관계인 노예제는 일상사회 모두를 비정상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다. 백인 주인들의 노예에 대한 불법적 지배와 폭력, 특히 여성노예에 대한 성적 일탈은 백인 여성에 대한 수치와 모멸은 물론 가정의 왜곡과 파탄을 초래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들은 여성해방의 선언과 함께 노예제 폐지에 동참하게 되었다. 1865년 미국 노예제가 헌법으로 폐지되었다. 폐지 이후에도 인종차별은 계속되었고, 여성차별도 계속되었다. 인종차별에서 획기적 전환점은 1954년 흑백학교 통합을 명한 브라운 판결이었다. 이후 1960년대의 민권법 제정으로 흑인에 대한 차별이 많이 완화되었다.

그에 비해 여성해방은 보이지 않게 지체되고 있었다. 여성들의 보통선거실시는 2차세계대전 이후의 일이고, 여성평등권보장에 대한 헌법개정운동은 1972년 헌법수정안 제27조 남녀평등권조항(Equal Rights Amendment: ERA)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으나, 전체 50개 주의 4분의 3이상의 인준을 받는 데에서 실패하였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인종차별보다도 더 심하게 뿌리 깊은 것이 여성에 대한 편견과 폐습이다. 그러하니 힐러리가 말한 '제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유리천장을 없앤 것'이라는 후보확정 소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혹시나 오바마에 이어 힐러리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역사적 순서를 맞추는 셈이 된다.

사실 여성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박근혜대통령이 먼저 했다. 박대통령의 당선은 분명 한국사회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 당선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노예해방과 여성해방과 같이 사회발전의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많이 미흡하다. 우선 당선의 배경에 아버지 후광이 있었고, 또한 대통령으로서도 차세대 출신답게 과거 아버지의 공적과 과오를 분별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진취적 정치를 했어야 한다. 우리가 밖으로 자부하고 자랑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지점인 것이다. 여성 리더 중에선 독일의 메르켈수상이 아주 모범적이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젊은 사고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모범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힐러리조차도 대통령이 되었을 때 메르켈만큼 하기는 힘들지 모른다. 힐러리가 가진 기득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힐러리에게는 샌더스 같은 강력한 진보적 경쟁자가 보약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압축적으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나라다. 미국의 정치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것은 배우고, 시정할 것은 시정해서 한시바삐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뒤쫓아 가는 나라가 앞선 나라보다 속도까지 느려서야 되겠는가?

글 | 강경선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이며, 헌법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의 연구주제는 '영국과 미국의 노예제 폐지과정'이었다.
관심사는 우리나라에서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과 헌법국가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