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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이사제, 경제민주화의 새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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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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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노현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기업과 경영의 새 패러다임으로 이행하는 계기." "갈등과 대립에서 상생과 협력으로 전환."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 "투명경영, 소통경영, 혁신경영으로 가는 길." "이미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폴란드 등) 유럽의 14개국에서 시행 중." 이 정도면 뭔가 메가톤급 정책구상이 틀림없다. 바로 근로자이사제다. 지난 5월10일 박원순 시장은 국내최초로 도입방침을 발표하며 실로 크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다.

근로자이사제는 간단히 얘기하면 기업이사회 차원에서 노사 간 경청과 소통, 협치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사업장수준에서는 노사협의회라는 것을 통해 노사가 일정사안을 협의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걸로는 주인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공동합의가 아닌 단순협의 수준인데다 그나마 이사회 사안은 처음부터 비껴가기 때문이다. 만약 사업장은 물론이고 이사회에서까지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공동결정을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근로자이사제는 이사회차원의 노사 협치를 유도하는 장치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메트로 이사회에 근로자이사가 있었더라면 무분별한 외주화에 내부 제동이 걸리지 않았을까. 옥시 같은 생활화학제품제조업체의 경우에도 근로자이사가 있었더라면 유독물질 안전문제에 좀 더 민감하지 않았을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같은 총수일가 이해관계사안에서도 근로자이사가 있었더라면 덮어놓고 총수일가의 이익을 옹호했을까? 지금처럼 이사회 내부에 묵계처럼 흐르는 이윤지상주의나 총수이익극대화 관점에 대해 좀 더 빨리 문제제기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난 5월10일 기자회견에 따르면 근로자이사제는 상시근로자 수가 30인이 넘는 15개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 도입된다. 법적 뒷받침을 위해 금년 10월까지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하겠다는 발 빠른 행보다. 공기업 규모에 따라 1명 혹은 2명의 근로자대표를 공기업법의 공모절차와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절차를 밟아 비상임이사로 임명할 예정이다. 서울의 공기업은 평균 7명의 비상임이사(=사외이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박원순표 근로자이사제는 이사회 논의의 다양성과 투명성만 보탤 뿐 지배구조나 논의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의 기본관점과 논리구조에서 근로자이사제는 뭔가 아주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박원순이 보기에 "대한민국 기업과 경영, 경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바, "근로자이사제가 그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근로자이사제는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과정에 근로자대표를 참여시킴으로써 "경영진과 근로자의 소통통로"가 될 것이며 "노사대립으로 발생하는 갈등의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예방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한마디로 근로자이사제는 "투명경영, 소통경영, 혁신경영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보자면, 근로자이사제는 근로자가 "경영혁신의 공동주체"가 되는 길이자 근로자와 사용자가 "공동운명체"가 되는 길이다. 근로자이사제는 노사갈등비용 감축과 노동자 경영혁신 촉진을 통해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이 된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최고도로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요컨대, 오늘날의 지속가능한 기업경영은 "노사가 경영의 성과와 책임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경영구조"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서 근로자이사제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구조 아래 박원순은 경영패러다임 전환을 "공기업에서 먼저 시작하겠다"고 실천적으로 선언한다. 현재는 서울시장이기 때문에 요란하지 않게 서울의 공기업부터 도입하겠지만 근로자이사제 자체는 공기업을 넘어 사기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뜻을 숨기지 않는다. 만약 박원순이 대선후보로 뛸 경우 근로자이사제는 박원순표 경제민주주의의 주요 브랜드이자 중요한 대선쟁점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노동 없는 김종인표 경제민주주의에 답답하게 갇혀있던 한국의 경제민주주의 공론장이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은 경제민주주의의 깃발을 들고 재벌지배구조 개혁운동에 앞장서온 남다른 경력을 갖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참여연대시절에 재벌체제개혁을 위해 소액주주운동을 조직하는 한편 사외이사제 강화 및 주주소송요건 완화를 중요한 개혁안으로 추동했다.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떨어져 두 정책지향은 지난 15년간 비교적 큰 호응을 받으며 대체로 제도화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총수의 전횡 억제라는 정책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총수선임 사외이사제는 재벌총수가 각 부문의 파워 엘리트를 사외이사로 흡인하도록 제도적으로 길을 터줌으로써 재벌총수의 사회지배력을 강화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역기능이 훨씬 강한, 실패한 정책대안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박원순의 근로자이사제 기자회견을 접하면서 박원순의 기업지배구조관이 바람직하게 진화했음에 안도했다. 본래 기대했던 독립적 사외이사의 역할은 총수선임 사외이사로는 안 되고 근로자이사 등 이해관계자(대표)이사들만이 수행할 수 있다는 비판을 수용한 게 아닌가 싶다. 더욱이 근로자이사제는 노동친화적 정책이기 때문에 근로자의 주인의식 강화에 따르는 갖가지 좋은 효과들이 덤으로 따라온다. 근로자이사제 기자회견을 접하면서 어쩌면 외환위기 직후에 갔어야 했을 길을 이제야 간다는 만시지탄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아닌 서울시장 박원순이 드디어 근로자이사제로 제2의 경제민주주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는 사실에서 역사의 발전을 예감한다.

근로자이사제는 영국과 이탈리아 등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이미 보편화된 제도라 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도 유럽 전역에 고루 확산돼 있다. 중서부에선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체코, 북부에선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동부에선 슬로베니아, 헝가리, 폴란드, 남부에선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등 유럽의 18개 국가에서 시행중이다. 이 중 스페인,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선 공기업에만 적용되고 나머지 14개국에선 공기업과 사기업 모두에 적용된다. 특히 스웨덴에선 25인 이상 기업, 프랑스에선 200명 이상 기업, 독일에선 500명 이상 기업에 근로자이사제가 의무화돼 있다.

18개국 중 독일만 이사정수의 절반을 근로자이사로 두도록 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1/3선, 2~3인의 근로자이사를 두도록 규정한다. 근로자이사라고 통칭하지만 반드시 당해기업의 근로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들이나 노동조합이 외부전문가를 추천할 수도 있다. 산별노조의 간부들(=전문가들)이 근로자이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나라들에선 일반적으로 노조조직율이 3,40%대를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업장수준에서도 근로조건과 생산성향상에 대한 안정적이고 강력한 노사공동결정제도가 뿌리내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되면 무엇보다도 이사회에서 다루는 중요사안들에 노동조합이나 종업원들의 목소리와 이해관계가 반영될 수 있다. 최고경영자 임면과 보상, 내부유보율과 배당률 결정, 공장이전이나 구조조정 결정 등 이사회사안에서 노동 측 이해관계도 비중 있게 다뤄질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노동의 관점은 당장 비정규직 확산과 분배양극화 경향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근로자이사가 있었다면 한진중공업사태나 쌍용차사태도 그렇게까지 곪아터지진 않았을 것이다.

근로자이사제가 공기업을 넘어 재벌대기업으로 확산되면 지배주주=총수일가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립된 사외이사가 비로소 출현하게 된다. 지배주주가 선임하는 대기업 사외이사제도는 우리사회에서 경제력이 사회지배력으로 확장되는 아주 중요한 기제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선 각 부문의 파워 엘리트들이 대기업 사외이사자리를 노리며 재벌총수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영혼을 판다. 특히 고위 관료들과 판검사, 중진학자들 가운데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사외이사제도는 재벌총수의 경제력남용을 억지하기는커녕 사회지배력을 확장시켜주는 역기능을 수행한다.

반면에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동조합이나 종업원들이 선임하는 근로자이사는 지배주주=재벌총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한국적 맥락에서는 이 점이 중요하다. 근로자이사야말로 재벌총수의 회사기회 유용 등 배임행태를 억제할 수 있는 진짜 사외이사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기업의 경우에도 근로자이사제는 공기업 이사직을 정권의 전리품처럼 활용해온 관행을 축소할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근로자이사 몫만큼은 정권의 입맛과 무관하게 선임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근로자이사제는 기업지배권력의 분산 및 다원화 효과가 크다는 것이 장점이다.

공사기업을 막론하고 근로자이사도 상법상의 이사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회사전체의 이익에 대한 선량한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진다. 단순히 노동조합이나 종업원의 이익대표자로만 기능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전체의 이익이라는 개념 자체는 언제나 논쟁적이고 형성적일 수밖에 없다. 회사의 지속가능한 존립에 필요한 적정이윤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최소합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넘어서는 순간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견이 제출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근로자이사는 자본의 관점보다는 노동의 관점에서 안건을 분석, 평가하고 대안을 내놓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일하는 보통사람들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이사회에서 대변되고 증진될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더욱이 대기업이 준법책임을 넘어 사회책임을 다하려면 이사회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노동, 인권, 환경,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과 비재무적 효과까지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한 기업리스크를 감당할 길이 없다. 대기업의 사회책임혁명이 진행되는 21세기에 근로자이사제는 기본이다.

우려와 반론이 없는 건 아니다. 이사는 주주가 뽑아야지 근로자가 뽑으면 사유재산권 혹은 경영권 침해 아니냐는 이념적인 딴지걸기가 대표적이다. 이미 유럽의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 보편화된 제도를 이념적으로 힐난하는 것은 근본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인 흘러간 노랫가락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경제체제의 경제헌법은 기업의 자유와 창의 보장을 요구할 뿐 기업의사결정과정에 대한 근로자 참여봉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입만 열면 좌우이념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고 외치는 보수언론이 유독 경제민주주의와 관련해서는 민주적 실험주의를 거부하고 철지난 이념대립을 선동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다행히 더 이상 약발이 통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근로자이사제에 대한 과도한 환상은 금물이다. 다른 좋은 조건과 결합하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 사실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오랜 노사대치문화가 갑자기 노사협치문화로 바뀌진 않는다. 노동운동의 전문성과 사회책임성이 하루아침에 높아질 수도 없다. 본격적인 근로자이사제는 경제민주주의를 향한 노사정 대타협의 일환으로 상호보강적인 제도들과 패키지로 도입되어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진정 노사갈등 비용감소와 경영혁신 촉진효과, 그리고 노사문화 패러다임 변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근로자이사제가 사업장수준의 공동결정제도 및 이익공유형 종업원지주제와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박원순의 근로자이사제 덕분에 드디어 김종인표 노동 없는 경제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존중 경제민주주의의 새 지평이 열렸다. 드디어 공정거래 경제민주주의를 넘어 공동결정 경제민주주의가 한국정치의 공식 의제로 등장했다. 나는 박원순 시장이 근로자이사제에 만족하지 않고 사업장단위의 노사협의제도를 과감하게 공동결정제도로 실질화하기 바란다. 논의만 무성한 이익공유제를 협력업체를 포함한 종업원지주제 확산과 강화로 열매 맺기 바란다. 근로자이사제는 경제민주주의와 사회책임혁명의 교차로에서 공통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좋은 제도다. 근로자이사제는 머지않아 주5일제나 생활임금제처럼 어느 새 노사관계와 기업경영의 새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박원순이 첫발을 내디뎠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글 | 곽노현

서울의 첫 진보교육감으로 공교육의 새 표준을 만들기 위해 행복한 교육혁명을 추진했다. 그밖에도 삼성3세 무세승계 저지와 재벌개혁, 독립적 국가인권위 설립과 인권증진, 비밀정보기관의 민주적 통제와 과거청산 등의 시대적 요구를 부여잡고 이론적, 실천적으로 씨름해왔다. 그 과정에서 법치주의의 전사이자 징검다리교육감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지금은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에 민주시민성을 충전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