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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날에 비추어 본 한국 사회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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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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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면희(성균관대 초빙교수,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

"전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는 말은 1960년대에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록펠러의대 교수를 역임한 르네 뒤보Rene Dubos에 입에서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보아도 명언일뿐더러 향후에도 그렇게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6월5일은 국제사회에서 '환경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그것의 제정 기원을 살펴보면 1972년에 이르게 된다. UN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각 나라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UN인간환경회의를 처음으로 개최하여 당면한 지구촌 환경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실천할 방도를 모색하였는데, 대회 개막일이 그해 그날이어서 이때부터 기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중요 화제에 대해 정부나 국제기구가 먼저 나서는 경우는 희귀하므로 UN의 환경회의가 열리게 된 배경을 추적하지 않을 수 없다. 때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2년에 미국의 여성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라는 저서를 출간하는데,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었다. 당시 대통령인 케네디가 의회로 불려나와 그 대책에 대해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던 것이다. 카슨이 알리고자 한 메시지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1930년대 이후 기업서 생산된 화학물질, 대표적으로 DDT 등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자연을 병들고 죽임으로써 장차 봄이란 계절이 왔지만 새조차 우짖지 않는 적막강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 중반을 전후로 사람들의 암 발생 비율이 현저히 치솟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이 바로 인공적 화학물질의 남용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국지적으로 빈발하던 환경재난이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1960년대 말부터는 지구적 환경위기를 예고하는 징후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1970년 4월22일에 뉴욕 맨해튼을 필두로 워싱턴D.C,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대도시에 수천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서 위험에 처한 지구를 구하자는 대규모 캠페인을 벌였다. 또한 이때를 기념하여 시민운동가들은 '지구의 날'로 삼게 되었고, 당시의 화두는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했다. 1971년에 미군이 암치카 섬에서 핵실험을 준비하면서 버튼을 누르고자 할 무렵에 이곳으로 배를 띄워 돌진하는 한 무리가 있었는데, 그 배에는 자연과의 평화라고 적혀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그린피스란 단체가 창립하게 되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지구촌 시민의 환경적 자각과 실천은 마침내 각 나라 정부와 국제사회를 움직여서 1972년 UN인간환경회의를 열게 조성한 것이다. 이때 이후에도 각종 환경재앙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를 접하는 자세에 따라 지구촌 나라를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부류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소중히 여겨서 선제적으로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정책을 실천하는 나라이고, 다른 한 범주는 마지못해 뒤를 좇는 형세로서 사후약방문 형태의 수동적 정책으로 일관하는 나라이다. 전자에는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나라가 속하고, 후자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이 포함된다고 판단된다.

일본에서는 1986년에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불안감이 감돌았고 이에 언론인 히로세 다카시가 1989년에 위험 지역을 여럿 거론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을 콕 집어서 지진해일에 따른 위험 지역으로 분류하는 책을 출간하여 경고를 보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원전 당국과 정부는 이를 외면하다가 2011년에 초유의 재앙을 맞이한 바 있다. 한국의 정부당국과 관련 기관도 이와 다르다고 할 것인가? 그 위험한 원전시설의 부품을 짝퉁으로 납품받고 안전검사서마저 위조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니 어찌 다르다고 할 것인가?

우리 사회 곳곳에 드리워진 일부 관료와 관련 기업의 마피아적 결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은 잘 알려져 있다. 뒷북 치고 허둥대는 정부당국의 모습도 너무 익숙하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였고, 가습기살균제 사고도 뒤늦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산업공단과 경유차 등에서 많이 나오는 대기 중 미세먼지에는 납과 카드뮴, 벤젠, 톨루엔 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인체에 몹시 유해하여 안전 대책을 근본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늘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환경위기가 점차 가시화하고 있는 오늘날 과연 돈이 사람의 건강과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환경문제는 국경을 넘어 위험을 곳곳에 유포하는 특징을 갖고 있고, 특히 인공 화학물질의 경우에는 그것이 잠재적으로 누구에게나 위협을 가할 수 있는데, 어린이와 노약자에게 보다 치명적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경제가 중요함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생명을 중시하는 가운데 실현되어야 하고, 그것 역시 자연이라는 생명부양체계의 건강성을 유지토록 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것임도 살펴야 한다. 환경의 날을 맞이하면서 환경과 관련된 실천과 정책은 사람의 안녕과 문명사회의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되 사전예방의 조치에 초점을 맞추어서 구현되어야 함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글 | 한면희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와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과거 생태철학자로서 대안적인 녹색대학의 대표(교수)와 한국환경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초록문명론>과 <미래세대와 생태윤리>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환경정의연구소 소장으로 아토피 자녀의 어머니들과 교류하면서 갖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생태의학의 지평을 여는 데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철학자로서 <제3정치 콘서트>를 출간하는 등 공동선과 사랑의 정치를 본원적으로 실현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