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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브랜드, 누군가 이미 쓰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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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할 때, 중요한 제품·서비스 브랜드를 '상표 출원'하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지식재산권 전담부서나 전문가가 없는 중소기업, 혹은 자영업자는 자칫 상표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쉽다. 굳이 어렵게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하지 않아도 법원에 등기만 하면 되는 상호 등록만으로도 사업을 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는데다, 상표 출원이 필요한 정도로 자체 브랜드가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사업이 성공했을 때, 상표권의 문제는 갑자기 당신에게 밀어닥쳐오곤 한다. "사리원불고기 케이스"도 전형적인 사례다.


2015년 8월, 나 대표(사리원 불고기)는 뜻밖의 우편물을 받았다. "사리원불고기가 상표권을 침해했으니 가게 이름을 바꾸라"는 내용증명이었다. 보낸 이는 대전에서 '사리원면옥'이란 상호로 냉면집을 경영하는 ㈜사리원 대표. 알고 보니 그도 증조할머니가 1951년부터 운영해온 가게를 물려받았다. 단, 차이가 있다면 사리원면옥은 지난 1996년 특허청에 상표 출원을 마쳤다는 것과 지난해 식객촌에 입점했다는 것.

〈'사리원' 상표권 재판 이상한 판결〉 매일경제, 2017.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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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원불고기"는 불고기로 상당히 알려져 있는 체인점형태의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이번에 '사리원'이라는 상표를 이미 등록하고 있던 "㈜사리원"이라는 면옥 판매 중소기업에 의해 상표권에 근거하여 상호사용금지가처분을 당하게 되었다.

기사만으로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사리원"에서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권에 근거해 상표사용금지 요구를 내용증명으로 보냈고, 이에 "사리원불고기" 측에서 특허심판원에 상표등록무효심판과 뒤이은 특허법원의 상표등록취소소송을 걸어 모두 기각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기사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사리원불고기"는 1992년에 상표를 출원했다가 실패했는데, "㈜사리원"은 1996년부터 상표를 등록하여 사용해왔다는 내용이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사리원"은 왜 1996년에 상표사용금지 요구를 하지 않고 2015년에 와서야 이런 요구를 하게 되었을까?

상표 등록은 상호나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등기가 되어 있어 공공에 공개되어 있다. 특히 상표를 관리하는 특허청은 정부부서 중 전산화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부서라 모든 등록 상표는 일명 키프리스, "특허정보넷(www.kipris.or.kr)"에서 검색으로 찾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서 살펴보면 "㈜사리원"이 "사리원면옥"을 상표로 출원한 것은 1994년, 등록된 것은 1996년이 맞다. 하지만 "㈜사리원"이 출원한 상표, "사리원"은 1998년에 등록했다가 2008년에 갱신하지 않아 소멸당한 후, 2011년에야 새롭게 등록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간단히 유추할 수 있는 사항은 "㈜사리원"은 대전에 자리잡은 면옥전문 업체로 서울에 진출하지 않아 그동안 "사리원불고기"와 경쟁할 일이 없었고, 자체 상표 관리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제 경영진이 새로운 세대로 바뀌면서 서울 진출을 시도하게 되자 서울과 수도권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사리원불고기"와의 경쟁이 일어나게 되어 상표권 행사에 나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묘한 점은 "사리원불고기" 측에서 1992년에 상표 출원을 거절당한 이후로, 20년이 넘도록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해오면서도 새로운 상표 출원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한 번 상표 출원에 실패한 후, '사리원'이라는 지명은 상표 출원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시도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점은 이 부분이다.

만약 "사리원불고기"가 '사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리원불고기"라는 명칭이나 또는 다른 브랜드로 상표 출원을 시도했다면 "(주)사리원"이 '사리원면옥'으로 상표 등록에 성공했듯이 사리원이 지명이라 해도 상표 등록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선례가 있는 경우 특허청에서도 다르게 판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케이스는 아직 분쟁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판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 케이스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업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사리원'이라는 지명이 상표가 되느냐 마느냐는 양측 어느 쪽에게도 의미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 두 업체 외에도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누군가는 '사리원'이라는 명칭으로 사업을 했겠지만, 상표권 등록까지 시도한 업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사업에 성공한 이 두 업체에게는 '사리원'이라는 지명은 사업체의 정체성과 홍보 가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브랜드'가 되었다.

따라서 이 케이스에서 볼 수 있듯이 장기적으로 사업을 계속하려는 기업이나 자영업자는 최소한 2년 이상 어떤 사업이 지속될 경우, 자체 브랜드를 상표 등록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온라인을 통해 사업이 갑자기 대중에게 홍보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사업 브랜드가 먼저 상표 등록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검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결코 손해날 일은 아닐 것이다.



p.s. 첨언으로 기사에서는 이상한 판결이라고 하고 있지만, 상표권 소송은 원래 인지도 여론조사를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아주 이상한 판결은 아니다. 다만 이 케이스에서는 ㈜사리원의 조사인 19.2%를 특허법원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20-25%의 인지도가 상표나 지명의 인지도를 판별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바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