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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게이 대리는 결혼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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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들 프로 회사원이 된 입사 동기들 중 오랜만에 남자들끼리 모여 한 잔 했다. 다들 팀에서 분대 일병급으로 일하다 보니 소주 한 잔 기울일 시간 맞추기도 참 어려웠다. 겨우겨우 시간 맞춰 열 명쯤이 모였는데, 그나마 이렇게 모인 것도 한 반 년만인 것 같다.

갓 대학 졸업한 티 팍팍 나던 사회 초년생들이었는데 이젠 다들 대리도 달고 30대가 되면서 말 그대로 아저씨라 불리기 부족함이 없다. 그나마 입사 동기 남자들 중 제일 어린 날 가리키며 형들은 역시 김게이가 제일 안 변한 거 같아, 난 입사해서 10킬로 쪘잖아, 게이 너는 몸무게도 하나도 안 변했지? 얼굴에 주름도 하나 안 는 것 같다 야, 이러고 있다. 아무리 5년차 회사원이라도 얼굴에 처바르는 화장품이 얼만데 형들이랑 같이 늙으면 내가 억울하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걸 참으며,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았을 거야, 서른 넘었으니까 나도 곧 훅 가겠지, 라며 형들을 위로한다.

어두워진 낯빛과 늘어난 벨트 구멍 말고도 그 동안 변한 게 참 많은데, 입사할 때만 해도 유부남은 우리 중에 한 둘 정도였지만 이젠 결혼 안 한 총각들이 훨씬 적다. 입사 전부터 연애를 하던 동기들은 입사 후 얼마 안 돼 거의 결혼을 했고, 입사 후에 소개팅으로 만나 금세 결혼한 동기들도 몇이나 있다. 알콩달콩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유부남들처럼 나도 학생 때부터 사귀어 온 형과 작년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입사 동기들 중에서 내가 결혼을 했다는 걸 아는 이는 하나도 없다. 하, 내가 낸 축의금이 얼만데.......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다 보면 말이 돌고 돌다 결국 내 결혼 이야기를 한 번쯤 지나치게 되고 만다. 그나마 동기들끼리니까 말을 편하게 하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아예 안 불편할 수는 없다. 김게이 넌 진짜 계속 결혼 안 할 생각인 거야? 응, 난 평생 혼자 살 거니까 술이나 따라요. 야, 그래도 너 지금 연애가 몇 년짼데 결혼 생각이 하나도 안 들 수가 있냐. 됐어, 난 혼자가 좋으니까 여기서 다 나가주세요. 넌 또 여자친구가 너보다 나이도 많잖아, 네가 결혼하자고 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거 아냐?

최대한 거짓말을 안 하고, 될 수 있으면 있는 그대로, 피치 못할 때 성별만 바꾸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와 형 사이의 사정을 말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면 입에 가시가 돋는 나의 정직한 성품 때문이다. 는 뻥이고 사실은 그냥 내 머리가 나빠서 예전에 한 거짓말을 기억 못하게 될 때가 많기 때문일 뿐이다. 괜히 꾸며서 이야기를 해버리면 나중에 된통 꼬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성별도 될 수 있으면 이야기를 안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제 애인은 저보다 다섯 살 많아요(우리 형은 빠른 생일이라 실제로는 여섯 학번 위예요). 아시다시피 제가 워낙 호빗이다 보니 저보다 키도 좀 커요(185 정도 돼요). 몸무게는 요즘 말을 안 해서 모르는데 제가 워낙 적게 나가다 보니 어쩌면 저보다 많이 나갈지도 몰라요(제일 최근에 봤던 몸무게는 100이었어요). 2008년에 인터넷에서 블로그 비슷한 걸로 처음 만났죠(인터넷 게이 사이트에서 서로 프로필 보고 쪽지를 주고 받았어요).

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이거 뭐 다르게 둘러댈 방법이 없다. 게이야, 넌 진짜 결혼 안 할거야? 사실은 작년 여름에 했지요! 짜라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은 사람들이 내가 결혼을 하든 말든 별 관심 없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나마 사막 같은 회사 생활 서로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동기 형들은 정말 내 독신 생활이 걱정돼서 그러는 걸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주변 사람들은 그냥 별로 할 말도 없고 공통의 관심사도 없으니 옳지! 이럴 때는 오지랖이 제 맛이지! 하며 내 결혼 이야기를 꺼낸다는 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심심풀이로 꺼내는 이야기가 내겐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모른다. 이미 결혼을 한 입장에서 결혼할 생각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 자체도 곤욕인데, 대체 왜 결혼을 안 하려고 하냐고, 부모님은 아시냐고, 자식도 안 낳을 거냐고, 제사는 누가 지낼 거냐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 날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길래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제사상까지 걱정을 하는 걸까. 우리집 교회 다닌다고!

덕분에 나랑 술이라도 한잔 같이 한 웬만한 회사 사람들에게 나는 5살 연상의 여자와 7년째 연애는 하고 있지만 결혼 생각은 없어서 여자친구만 불쌍하게 노처녀로 만들고 있는 몹쓸 놈이 되어 있다. 어쩜 회사에 이렇게 궁예들이 많은지, 김게이 대리가 결혼 이야기를 안 꺼내니 네 여자친구가 자존심 때문에 가만히 있는 거지, 속으로는 얘가 언제 프러포즈를 하려나 하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둥, 뭔가 결혼을 할 수 없는 환경적이거나 신체적인 이유가 김게이 대리 아니면 여자친구에게 있을 거라는 둥, 저러다 애가 생겨서 마지못해서 결혼하는 거 아니냐는 둥, 정말 내 입장에서는 어처구니 반푼 어치도 없어 보이는 추측과 예상을 예의 없이 막 던지는 사람들을 보면, 아 이것 참 우리나라에 오지랖보다 험한 악폐습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동기 형들한테는 그냥 지금이 좋아서 생각 안 할 뿐이라고, 형들까지 나한테 스트레스 줘야겠냐고 두어 마디 하고 넘어가지만, 우리 집 숟가락이 궁금한 회사 아줌마 아저씨들에게는 도통 약도 없다. 그냥 뉘예 뉘예 나중에 할 때 되면 해야지요, 할 수밖에 없는 이 양심의 자유도 없는 내 신세여! 이제 서른인데도 이렇게 고생인데, 당장 오 년 앞이 깜깜하다. 언제쯤 나도 유부남이라고, 왼쪽 약지에 낀 반지가 그냥 커플링이 아니라 프러포즈 할 때 줬던 결혼반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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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쯤에 다시 결혼식을 한 번 올리든지 해야지. 내 이놈의 축의금들 아호!

(*www.snulife.com에 게시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