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게이 Headshot

두 번째 30년 상환부터는 공동명의로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30대 중반이 되고 보니 시간의 흐름에 거스를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푹푹 찍어 발라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의 낯빛으로 돌아가진 않는구나. 아무리 실리마린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도 뚝뚝 떨어지는 체력은 어쩔 수가 없구나. 내 인생의 슈퍼스타 머라이어 캐리의 라이브 가창력은 더 나빠질 수 없을 수 같아도 매년 더 나빠지는구나. 그리고 아무리 기대하고 기다려봐도 서울의 전셋값은 검색 할 때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구나.

1

수년째 월셋집 전셋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30대 중반 부부로서, 2년마다 돌아오는 계약 만료일은 남편의 옛 애인이 보냈던 연애편지처럼 마주치기 싫은 존재이다. 그래. 그런 게 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내가 보고 싶진 않아. 계약 만료일이 더 무서운 건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거겠지.

어차피 전셋값이 이렇게 오른다면 좀 더 빚을 내서 그냥 살 집을 사자, 라는 의견에 우리 부부가 동의한 게 올 봄쯤이었다. 내년 초에는 또 다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든 살던 집에 재계약을 하든 해야 할 텐데, 이삿짐 쌌다 푸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고 또 얼마가 오를지 모르는 지금 집에서 눌러 앉아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래, 기다려봤자 서울 집값은 영원히 오를 것 같은데 언젠간 살 집 이번에 사자, 무리하지 않고 집 사는 사람은 서울에 없어, 라고 결론을 냈다.

그때부터 몇 달 간은 아파트 청약 공고 살펴보는 게 우리의 일이었다. 그 누구도 이거 너네 집이야 라고 한 적 없지만, 청약 당첨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마치 이제 그 동네가 우리 동네가 된 것처럼 거기서 회사까지의 출근 길을 내 멋대로 상상하곤 했다. 아, 지하철 한 번 갈아타야 돼서 불편해지긴 하지만 동네도 괜찮고 가격도 적절하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물론 결과는 항상 30대 1로 탈락, 어떨 땐 60대 1로 탈락이었지만.

1

그래도 청약을 넣고 기다리는 동안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작 당첨돼서 돈 마련하려면 피를 토하면서 마련해야 했겠지만, 새 아파트가 우리 집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에 하루하루가 기대감에 찬 날들이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꼼꼼히 따져가며 한 클릭 한 클릭 청약 넣는 모든 평범한 부부들처럼.

8월 새 부동산 정책이 발표된 후 기사들을 찾아 읽기 전만 해도 투기 목적인 사람들 제재하는 게 목표일 텐데, 우리 같은 실수요자들에게 뭐 별다른 영향이 있겠어, 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우리처럼 꾸준히 청약을 넣고 있던 주변 게이 친구들이 이제 청약은 물 건너갔다며 기사 링크를 보내줬다. 한 줄 한 줄 읽어보니 아, 이제 서울 사는 게이나 레즈비언들은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절대 청약 당첨이 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이전엔 일정 비율에 대해서는 가점 상관없이 무조건 추첨이었기에 그거 하나 바라고 청약을 넣었던 건데, 8월부턴 무조건 가점제가 되었다. 법적인 결혼을 할 수 없는 우리 동성애자들 같은 경우에는 결혼을 한 이성애자 부부들과의 가점 경쟁에서 상대가 될 수가 없다.

나 말고는 다 독신 게이들이었지만, 덕분에 그 전까지 열심히 청약 넣던 친구들 모두 8월 이후 청약 신청을 포기했다. 우리 부부도 8월 정책 발표 직전 넣었던 아파트에 떨어지면서 청약과 영원히 이별하게 되었다. 안녕, 아파트 청약. 짧지만 좋은 승부였다.

아파트 청약은 포기하지만 그래도 덜 오래된 아파트로 가자.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게 될지 모르니 지금 전셋집보다는 넓은 집으로 가자. 출퇴근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는 집으로 가자. 분리수거 요일이 따로 없어서 제발 재활용 쓰레기 아무 날에나 버려도 되는 집으로 가자. 기타 등등 수많은 희망 사항들이 있었으나 결국 제일 먼저는 돈이었다. 우리가 빚을 내도 갚아가며 살 수 있는 집을 사자.

아이가 없고 가질 계획도 없으니 우리는 학군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실거주 목적으로 사는 거니 앞으로 집값이 오르든 말든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달 가능한 자금을 고려해보니 결국 서울에서 아파트 값 제일 싼 동네들만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뻐꾸기처럼 이 집 저 집을 구경하러 다니다, 시원하게 오백만 원을 단숨에 깎아주겠다는 주인아저씨 덕분에 마침내 강북의 한 아파트에 우리 첫 집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평범한 30대 부부들이 그러듯, 우리 집도 어차피 진짜 주인은 은행님이 되는 거니까 어떻게 하면 제일 싼 이율로 빚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해 한참을 알아봤었다. 결론은 주택금융공사가 제공하는 보금자리론을 이용하는 거였는데, 정식 계약일이 다 되어서야 아차 싶었다. 보금자리론으로 사는 집은 법적 부부가 아니면 공동명의로 살 수가 없었다.

1

예전에 언젠가 평생을 부부로 살아온 한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둘은 가족들과는 사실상 절연한 상태로 살아왔지만, 한 명이 죽자 다른 한 명은 죽은 아내의 가족들에게 떠밀려 집에서 결국 쫓겨나야 했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꾸린 모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로.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양가의 축복과 인정으로 꾸린 가정이기에 저런 상황이 발생하지야 않을 거다. 하지만 만약 한 명이 사고로라도 세상을 떠난다면 남은 재산 처리에 대한 여러 법적인 절차들이 일반 부부들보다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일들을 간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집을 살 때 공동명의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어도 법적인 부부가 아니니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남자 둘의 혼인신고를 받아주지 않으니까. 우리에겐 공동명의를 포기하는 것과 좀 더 많은 이자를 내는 것,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결국 아파트는 형의 이름으로 산 후 공동명의임을 증명하는 다른 절차를 찾아보자고 결론을 냈는데, 명의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배제되고 제외된다는 느낌 때문에 영 씁쓸하고 불편하다. 한두 번 겪는 차별은 아니지만, 역시 익숙해지는 차별은 없는 것 같다.

아직 이사를 가려면 몇 개월이 남았다.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예산은 어떻게 짤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감으로 기분이 좋다. 같이 산 게 곧 만 7년이 되는데, 8년차가 되어서야 우리 집이 생기는구나. 아 물론 우리 집이라기 보단 은행 집이긴 하지만. 30년 상환으로 빌리는 돈이니까 이제 무조건 형이랑 30년은 더 살아야겠다. 30년 지나면 또 30년 상환으로 집 한 번 더 사야지. 계속 사야지.

할아버지가 반딧불이 모아서 호롱불 대신 썼다는 이야기 해주듯이 두 번째 집을 살 때는 어린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30년 전에 우리 첫 집 살 때는 어땠는지 알아? 말해도 못 믿을걸. 그 시절엔 남자끼리는 결혼을 안 시켜줘서 아파트 청약에서도 불이익을 줬었고 집을 사도 어떤 경우엔 공동명의로 할 수가 없었어. 못 믿겠다고? 암, 암. 못 믿을 만도 하지. 내가 겪은 일인데도 너무 옛날 일이라 이젠 나도 믿기지가 않는다니까.

* www.snulife.com 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