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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게이야, 결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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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면 벌써 결혼 3주년 기념일이다. 결혼식을 올린 지가 벌써 3년이 되었구나. 시간이 지나도 그날은 아마 평생 또렷이 기억날 것 같다. 게이바 벽에 걸려있던 우리의 웨딩 사진들, 둘이 함께 입장할 때 들었던 두 개의 부케, 형이 내게 '금지된 사랑'을 불러주다 음이탈을 냈던 것까지 다 생생히 떠오르지만,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건 부부가 되는 우리 둘에게 쏟아지던 축복의 환호와 박수 소리다. 형과 나, 남자 둘이 굳이 올린 결혼식은, 소수자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며 증명하기 위한 자리였고, 그것이 정말 증명되었다고, 우리 결혼의 증인이라고 응답해준 하객 40여명의 박수는 그 무엇보다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며칠 전 친구에게 받은 축하 편지가 있다. 물론 이 친구도 하객이었으니 식장에서 내 손에 직접 쥐어줄 법도 했지만, 민망하게도 우리가 자주 접속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올려서 다른 회원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어찌 보면 나와 형의 결혼을 가장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축하해준 게 이 친구가 아닐까 싶다.

내 친구 재민이의 동의를 얻어 그 편지를 여기 공개해본다. 친구가 이토록 진심을 다해 축복해준 나의 결혼식을 한 번 더 기념하고, 몇 년 뒤 혼인신고와 함께 한 번 더 올릴 결혼식을 기대하면서.

추신. 친구야,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지만, 다시 읽어봐도 손발이 사라지는 걸 막을 수가 없어 타이핑을 오래 못하겠구나. 조만간 막걸리 한 잔 합시다.





김게이야,

아마 아침에 출근한 너는 해야 할 업무를 미뤄두고 제일 먼저 여기에 접속했다가 이 글을 발견하겠지? 어쩌면 회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읽을 지도 모르겠다(그러면 스크롤이 너무 길어서 미안한 걸).

이제 며칠 후면 네 결혼식이야. 결혼식 때 직접 편지를 주면 너무 오글거릴 거 같아서, 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쓸 생각을 하게 됐어.

김게이야, 이미 동거한 지 꽤 되어서 무슨 신혼이냐고 넌 우기지만, 결혼식에 꽤 설레하고, (회사 일을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신혼여행을 정말 간절히 기다리는 네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스무 살 때 너랑 반 동기로 처음 만났고, 우연히도 같은 과였고, 다행히도 지금까지 친구여서, 그런 네가 행복하게 결혼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뻐.

기억할지 모르겠다. 술을 못하는 내가 너랑 단둘이 처음 술 마셨던 밤. 그날도 술 마시면서 난 너에게 '왜 연애 안 하느냐'고 어리석게 질문했고, 넌 웃어넘겼지. 술집을 나와서 택시를 잡기 위해 걸어가던 구청 근처에서 너는 그제야 정말 차분하게 네가 게이라고 내게 말해줬어.

"헉!"

정말 크게 내뱉은 내 첫마디였지. 내 목소리가 너의 차분함과 대조적으로 밤공기를 갈라버려서, 내 첫 반응이 혹시 너한테 상처가 됐을까 봐 그날 너랑 헤어지고 집에 와서 두고두고 미안했어.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둔했던 것 같아. 널 몇 년 동안 알고 지내면서도 그런 눈치도 없었다는 게. 그것도 엄청 많이 허술한 너를 보면서 말이야.

그러니까 1학년 때 너에게 미팅을 주선했고, 그러니까 연애 때문에 힘들어하는 너의 말들을 보통의 푸념으로 넘겼고, 그러니까 네가 군대에서 맞이하는 첫 화이트데이에 남사친 주제에 너에게 과자꾸러미를 보냈겠지(그때 내가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그 공허함을 채우고자 너에게 보낸 건 절대 아니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가 남들에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겹겹이 두르고 사는 사람인지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속 깊게 들어가지 못했던 것 같아. 너와도 친하게 지냈지만, 내가 귀 기울여 주지 못했고. 그런데 그날 네가 그 얘기 해줘서 놀라기도 했지만, 네가 얘기 해준 게 많이 기쁘고 고맙기도 했어.

무덤덤하고, 단조롭고, 단순하고 생각 없이 살아가는 나에게 자유롭고, 권위 없고, 따뜻한 너는 참 좋은 친구였어.

작은 거에도 즐겁게 웃어주는 네가 좋았고, 술 좋아하는 네가 술 못하는 내게 교수님이 주신 술잔까지 가져가 마셔줄 때도 정말 고마웠고(물론 내가 삐뚤어진 이후로 술을 마시게 되었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말해줄 때 난 정말 고마웠어.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술을 돌리시는 교수님 때문에 경상도에 갈 때까지 내리 자는 척을 해야 했던, 네가 내 옆자리에 앉았던 첫 학과여행도 생각나고, 고시원에 살던 내가 아침마다 네 기숙사 방에 가서 샤워하던 때도 생각나고, 군대에 있던 네게 면회 가서 나누던 이야기들도 생각나고(내가 면회를 갔던 유일한 친구가 너구나. 결코 네 부대가 가장 가까워서는 아니야),

네가 큰일을 당했을 때 시험 때문에 오래 머물러주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도 생각나고, 우리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했던 훈훈한 술자리들, 밤늦게 택시 타고 가면서 꼭 나를 중간에 내려주던 네 배려가 생각나네.

그리고 이전에는 동성애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너 덕분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어.

김게이야,

문득 떠올라서, 예전에 네가 군대에서 보낸 편지를 다시 읽었는데, 정말 가관이더라. 이걸 다시 네게 보여주면 넌 정말 오글거려 할 텐데, 그건 꼭 네 글씨 때문만은 아닐 거야. 외로움 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던 네가, 학교와 책을 참 그리워하던 네가, 지금은 품격 있는 직장인이구나.

편지 읽으면서 돌이켜보니, 지금의 형을 만난 이후로는 네가 징징대지도 않고, 우울해하지도 않고 참 행복해진 것 같아. 지금 네 옆에 있는 그 분이 널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 좋아. 그래서 그분과 함께 하는 너의 결혼식이 참 기쁘고.

너와 형은 어느 커플들보다도 끈끈한 커플이라는 거, 누구보다 달달하게 잘 살 거라는 거 믿어 의심치 않아. 네 연재 글로 이미 증명된 거 같기도 하고.. ^^

두서없이 글을 써서 잠시 후 부끄러워 지워버릴지도 모르겠다. (오글오글) 어쨌든 이렇게 긴 글을 너에게 남기는 이유는... 이후로도 김게이의 신혼일기 연재 기대할게(근데 넌 어차피 내가 부탁 안 해도 쓸 거잖아).

그럼 이제 난 네 결혼식 때 정장을 입을지, 캐주얼을 입을지 좀 더 고민해 봐야겠어.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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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nulife.com 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