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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낸 생일에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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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은 참 이상한 달이었습니다. 제 생일 이후에나 내렸던 눈이 한 달간 세 번씩이나 내렸지요. 덕분에 우산 없이 싸라기눈을 맞았고 펑펑 눈이 쏟아지던 날엔 거리에서 가만히 서서 고요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도 11월은 심상치 않은 달이었습니다. 2년간 근무하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고 31살을 앞두고 방송 제작사 막내작가 일을 구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래에 비해 말도 글씨를 배우는 능력도 한참 뒤처졌고 또 어느 날은 연기를 하고 싶다며 단식 투쟁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살이 지나서는 세 번이나 전공을 바꿔서 부모님께 염려를 끼쳐드렸죠. 남들 공부할 시기에 대학로를 출퇴근하고 또 남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때 다시 학교로 돌아갔던 제가 부모님 보시기에 얼마나 걱정스러웠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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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결국 제 꿈에 두 손을 드셨던 부모님께 좋은 결과를 안겨드렸으면 이토록 죄송한 마음은 없었을 텐데. 늘 주기만 하느라 정작 본인 건강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부모님을 뒤로 하고 저는 또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방송작가 막내로 들어가게 됐다는 말을 꺼내면서, 얼마나 그 일이 박봉인지 떠들면서 또 짐을 얹어드린 것 같아 이내 후회했습니다.

꿈이라고 말했지만 굳이 가보지 않아도 눈 앞에 펼쳐진 미래가 꽤 암담합니다. 이미 서른이나 되어서 직종을 옮기는 흔치 않은 일을 두고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 일을 자처한 저 또한 움츠려 듭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너를 믿는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매번 그 진심을 부담스러워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늘 저는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지난 30년간 아무런 조건 없이 저를 가장 사랑해 준 두 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날이었겠지요. 유난히 감성적이고 예민한 큰 딸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었던 부모님께 오늘만큼은 진심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두 분을 '아빠' '엄마'라고 부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평생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을 더없이 소중한 선물처럼 여기겠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