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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도 사랑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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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드는 아침형 인간에게도 흐트러지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잠결에 알람을 꺼버린 아침은 그야말로 전쟁터. 화장과 스타일링을 포기하고 부랴부랴 겨우 지하철에 몸을 실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날 지하철에서 이상형을 만났다. 어차피 말 한마디 못 걸 소심한 성격이지만 어쩐지 못내 아쉬웠다.
  • 소심한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이)에게도 용감무쌍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스무살 때로 기억하는데 길 가다가 어떤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15년 차 장녀의 한 맺힌 투정도 받아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듬직한 체격에 남자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냥 지나치자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아서 두 눈 질끈 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는데 애절함이 닿았던 걸까. 그가 내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남겨줬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약 한 달간 만났으나 애석하게도 만남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내가 생각한 그의 이미지와 실제 그의 모습에 상당한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나는 헌팅 같은 것은 시도하지 않았다. 외모가 그 사람을 말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 헌팅(Hunting)은 고기나 가죽 등을 얻기 위한 사냥꾼의 활동을 말하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이성에게 호감을 느껴 데이트를 청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흔히 헌팅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꼽아보자면 길거리, 음식점, 카페, 지하철, 술집, 클럽 등이다. 생각지 못한 공간에서 수동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헌팅의 특성상 '가볍다' 혹은 '가벼운 사람'이라는 오해를 벗어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실제로 가벼운 의도를 가지고 헌팅을 악용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 앞에 이상형을 마주하고도 혹여 거절당할까 주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헌팅이 남녀가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계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우연'에 대한 환상과 기대감이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첫 만남 이후에 상대방을 알아가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떤 만남의 방식과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헌팅이든 소개팅이든 자신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애프터가 관건인 것 같다.
  • 일말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다 보니 헌팅을 미화시킨 것 같지만 혹 첫 단추가 무례하다면 당연히 성공 가능성은 제로다. 처음 본 이성을 친근하게 대할 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과 본인이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처럼 상대방 또한 그 요청에 답하지 않아도 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유념한다면 그 시작이 그리 불행할 것 같지만은 않다. 모든 진심은 장소과 시간을 불문하고 이내 통하기 마련이니까. 집에만 박혀있지 말고 밖에도 좀 돌아다니라는 충고가 썩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