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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전히 혼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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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례
    몹시 피곤한 날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다가 문득 친구가 선물해 준 원피스를 입어보고 싶었다. 브이넥이 깊게 파였고 알록달록 동그란 패턴이 인상적인 랩 원피스를 얼굴에 대봤다. 옷은 예쁜데 어쩐지 내겐 어색했다. 한창을 거울 앞에 서있는 나를 보고 엄마가 말했다. "그런 옷은 화장하고 입어야 해." 쉽게 말하면 옷에 치여 얼굴이 죽는단 말이다. 맞다. 예비 신부들이 드레스 투어를 갈 땐 화장을 진하게 하고 가지 않던가. 나는 원피스를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놓았다.
  • 김유례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걸쳐 입고 출근하기에도 빠듯하고 화장하는 일도 거의 없지만 화려한 옷을 입고 그에 맞게 화장을 하는 것 자체가 기쁨인 때가 있었다. 사실 남녀를 구분할 것 없이 보다 멋지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은 본능이고 이를 격식이나 예의라고도 하던데. 출근길에 어제 걸쳐본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며 나는 치장이 치레로 느껴졌다. 이것이 우리를 비극으로 이끄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 김유례
    특히 연애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한때 나 또한 연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체크하고 그가 칭찬했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때로 그의 취미를 그대로 답습했다. 우유부단한 나는 그 정도가 더 심했던 것 같다. 맞춰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새기고 적게 먹고 화장을 하며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물론 나는 성격이 급하고 끈기가 부족한 편이라 애석하게도 나의 의지도 만남도 오래가지 못했다. 매번 그랬다.
  • 김유례
    자주 입던 까만색 바지가 맞지 않는다. 욱여넣긴 하는데 울퉁불퉁 맵시가 나질 않는다. 아무래도 요 근래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인 탓이다. 살을 빼야 하는데 책상 앞엔 가방 안엔 초콜릿이며 사탕이며 가득하다. 오늘은 간식 유혹을 뿌리쳐야지. 틈이 나는 대로 걸어야지. 미리 알아둔 집 앞 헬스장에 등록해야겠다. 하지만 11월의 첫날부터 생리가 터졌다. 하는 수 없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집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요양을 해야겠다. 아직까지 나는 나를 맞춰가는 것도 쉽지 않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