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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이 쉬운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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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고등학교 1학년, 반장이 되었다. 소위 '노는' 아이들을 자습시간마다 조용히 시키려면 기싸움에서 져서는 안 되었다. 조용히 하자고만하면 욕설이 섞인 대꾸가 돌아왔다. 17년 인생 욕 한마디 해본 적 없던 순둥이는 마침내 그들이 쓰는 언어를 쓰는 것 외에는 그들을 이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가 덕선이한테서 욕 배우던 장면이 생각나는가? 욕을 연습하는 건 그렇게 귀여운 게 아니다. "씨발", "미친년" 같은 무서운 단어들, 적대적이고 무언가 폭력적인 그 단어들을 눈 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에게 내뱉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들은 마치 화살과 같았다. 분노와 증오로 똘똘 뭉쳐진 날카로운 화살.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쏘아 날리는 잔인한 화살. 그래서 나는 그들이 욕설을 내뱉으면 그 욕설을 똑같이 따라 했다. "미친년아!" 하면 나도 "왜, 미.. 미친년아!" 하는 식으로. 먼저 그 화살을 쏘아붙일 용기는 없었지만 오는 화살을 쳐낼 자신은 있었고, 욕설은 생각보다 빨리 입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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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되어 부반장이 되었고, 책임질 일 없고 나쁜 소리 할 일 없는 그 자리가 성격에 더 잘 맞았다. 주변에는 1년 전 나처럼 욕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친구들뿐이어서 오히려 입이 거친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한번 입에 붙은 욕은 잘 떨어지지 않았다.

공대에 입학해서 자연스레 욕을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은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자애들은 걸핏하면 욕을 했다. 친해서, 기분 좋아서, 기분 나빠서, 술을 먹어서, 인사치레로 욕을 했다. 그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기보다는 나도 같은 언어를 쓰지 않으면, 충분히 거칠지 않으면 그들과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내 여중 여고를 나왔다가 간 공대 캠퍼스는 남자들 투성이었고, 이방인과도 같았던 나는 단지 내숭 떠는 여자애가 되고 싶지 않았다. 쿨해 보이려고, 세 보이려고 나는 언어를 바꾸었다. 그렇게 나의 감탄사, 부사, 형용사는 욕설이 되었다.

남자들이 욕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선하고 성실한 남자 선배 한 명은 '여자애가 그렇게 입이 거칠면 보기 좋지 않으니, 욕을 하지 않는 게 어떠냐'라고 충고해줬지만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충고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욕 하는데 여자 남자가 따로 있나? 내가 스스로 욕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자신의 분노를 욕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오히려 약하고 볼품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강한 사람은, 정말 마음이 센 사람은 욕을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정하게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이, 남을 상처 주는 약하고 비겁한 사람이 욕을 많이 한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갔다.

대학교 2학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같은 어학원에 다니던 한국 학생들 중 패션에 관심이 많은 언니 한 명과 친해졌다. 나는 그때 속눈썹 연장한 걸 생전 처음 봤을 정도로 패션이나 화장품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언니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근데 이 언니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매일 아침마다 내가 피부가 좋다느니, 화장이 잘 먹었다느니, 눈썹은 왜 이렇게 이쁘냐느니 하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칭찬에는 깊은 관심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그 언니에게 칭찬은 아침 인사였고, 가벼운 수다거리였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언니가 칭찬한 얼굴 부위에는 좀 더 자신감이 생겼고, 다음번에도 더 신경 쓰고 싶어 졌다.

몇 년 후, 학교를 졸업하고 외국계 제약회사의 마케팅 팀에서 잠시 일을 했다. '여성건강사업부'라는 조직이었고, 부장부터 오퍼레이션 계약직까지 전부 여자였다. 환경에 적응이 어렵진 않았지만,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은 어려웠다. 워낙 전공부터 공통점이 없는 데다 단기간 인턴이라 다 같이 친해질 만한 계기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떠오른 것이 그 언니의 칭찬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점은 관심만 있다면 깊은 유대가 없어도 칭찬할 수 있다. 거의 의식적으로 하루에 하나씩은 사람들의 장점을 찾아내서 말을 걸었다. 예쁜 치마, 그날따라 잘 어울리는 립스틱 색깔, 한 달 동안 자주 봤던 옷들과 다른 옷을 찾아내고, 머리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조금만 달라져도 칭찬을 했다. 사람들과 새로 나온 립스틱에 대해, 좋아하는 브랜드에 대해, 가을 옷과 겨울 옷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6개월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나는 부서의 모든 사람들과 금세 친해졌다. 나는 짧은 인턴 기간 동안 다음 직장 생활에서 실제 필요했던 귀한 교훈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칭찬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연습해야 하고, 습관이 되어야 한다. 눈인사만 꾸벅하던 상대에게 그 블라우스 진짜 예쁘네요, 어디서 사셨어요, 라는 말은 첫인사로 아주 쉽지만 입에서 막상 나오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 칭찬이 실제 먹혔을 때 상대방은 눈을 반짝거린다. 미소를 짓고 입을 열고 마음을 준다. 나의 작은 용기와 관심으로 타인과 작은 연결고리가 생기는 거다. 그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소중한 경험이다. 물론 넥타이 사셨네요, 했을 때, 아닌데? 하면 아 오늘따라 잘 어울리셔서, 하는 넉살도 같이 늘기 시작했다. 난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적당히 친해질 자신이 있다.

제약회사 인턴을 마치고 반도체 회사에 4년 넘게 일하면서 직장 동료들이 대부분 남자로 바뀌었다. 사실 남자들은 양복도 다들 비슷해서 칭찬하려면 더 매서운 눈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근데 힘들게 찾아낸 장점이나 변화를 칭찬하면 처음에는 다들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칭찬보다는 농담이, 그것도 농담의 수위가 심할수록 서로가 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상하 관계가 뚜렷한 많은 경우 수위 높은 농담에 기분이 상해도 웃어넘겨야 하는 일은 아주 흔하다. 그런데, 그게 정말 농담인가?

여자들끼리 서로 예쁘다고 칭찬하는 일이 가식적으로 보이는가? 친구의 못난 구석을 찾아내어 놀리는 게 친근함의 표시라고 여기는가? 거친 말투야말로 친한 친구들끼리의 당당함의 표시라고 여기는가?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많이 인용되는 이유는 흔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중요하고 또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외로운 가시로 연약하고 비겁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건 강한 게 아니다. 어차피 불행한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 행복한 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