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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민 7년, 이 부부가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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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인터뷰④] 프랑스 그르노블 곽원철, 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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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원철씨와 류리씨 ⓒ류리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년 간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이민자들을 만나고 있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하고자 한다.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에 살고 있다는 부부의 연락을 받았을 때, 처음 들어보는 낯선 도시 이름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부부의 집에서 이틀 밤을 보내며 긴 대화를 나눴다. 이번 인터뷰는 이민자로서의 정착보다 그들이 7년 동안 생활하면서 느낀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곽원철(44세), 류리(40세)

- 가족 : 부부

- 거주지 :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

- 프랑스 거주 7년 2개월 차

곽원철 TimeLine
1997년 대학원 졸업
1997년 ~ 2002년 한국오라클 근무
2002년 ~ 2004년 벤처 회사 근무
2004년 ~ 2006년 SK와이더댄 근무
2006년 결혼
2006년 ~ 2009년 한국오라클 근무
2009년 8월 출국
2009년 ~ 2011년 MBA
2011년 ~ 슈나이더 일렉트릭 근무

류리 TimeLine
2001년 대학 졸업
2002년 ~ 2003년 여성개발원 근무
2003년 ~ 2008년 국회의원 보좌진
2006년 결혼
2008년 대학원 졸업
2009년 9월 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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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노블 시내에서 차를 타고 10분이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30대 후반에 프랑스로 떠나다

2009년 여름, 부부는 프랑스로 떠났다. 곽원철씨는 37세, 류리씨는 33세였다. 두 사람 모두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였고, 상당한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직장 생활 또한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불만에 가득 찼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다. 그들은 왜 한국이 아닌, 프랑스를 선택했을까.

- 이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철 : 사는 나라를 바꾸는 건 인생을 바꾸는 결정이에요. 한 가지 요인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여러 요인들이 합쳐지면서 어떤 임계점을 넘었을 때 결정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더구나 그 결정이 30대 후반의 것이라면요.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다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상대에 맞는 요인을 들어 대답을 해요. 가령 저랑 정치적 스탠스(입장)가 비슷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이명박이 싫어서'라고 대답하고요. 보통은 그냥 '프랑스에는 나무랑 새가 많아서'라고 합니다.

리 : (2008년) 퇴근하고 집(광화문 인근)에 오는데 '명박산성'에 막힌 적이 있어요. 내가 내 집에 못 들어간다는 게 확 들어왔던 것 같아요.

원철 : 잘 모르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인간적으로는 아마도 훌륭한 분이었겠죠. 다만 그분으로 대변되던 물질적인 가치가 싫어서 떠난 거예요.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밀어 올리는 사회 분위기가 숨 막혔어요. '이명박 때문에 떠났다'는 게 본질은 아니에요. 여러 요인 중에 하나죠.

- 이민을 결정할 당시 두 분은 어떤 상황이었나요?
리 : 소득 수준도 꽤 좋았어요. 비슷한 경력에 비해 적은 편은 아니었죠. 나름 정점을 찍고 있을 때였는데 '이게 계속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런 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40대의 우리는 어떨까' 생각해 봤는데 선배들을 보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거예요. 롤모델도 없고요.

원철 : 직장 생활하다 보면 5, 7, 10년 차로 '카운트 업'하다가 15년 정도 하면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게 돼요. '내가 은퇴까지 얼마나 일할 수 있나. 이 속도로 가면 다다를 종착점이 어디인가.' 하고 말이죠. 제가 그때 부사장님께 보고하는 자리에 있었어요. 내가 지금 동료들을 경쟁에서 다 이기고 이 길로 잘 따라가면 저 자리인데, 아무리 봐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거예요. '내가 저 자리로 가려고 그렇게 기를 써야 하나' 다시 생각하게 된 거죠.

리 : 저의 가치관이 획일적인 잣대 안에서 평가받는 게 불편했어요. 나이와 직급에 따라 '과장이면 어떤 차 정도는 타야 한다' 그런 거 있잖아요. 또래의 친구들이 관심 갖는 명품과 성형에 대해서도 전 물음표였는데, 우리 아빠부터 "성형 안 하냐?"고 물어봐요. 나이 먹을수록 더 할 거 아니에요. 여기선 그런 스트레스는 안 받아요.

그리고 점점 더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갖는 걸 막 생각할 때였거든요.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되기만 하면 돼'하는 나라에서 '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하니까 아찔하더라고요.

- 한국에서 생활과 차이가 있었을 텐데 후회하지는 않았나요?
리 : 작년에 남편 회사에서 싱가포르 아시아 본부에서 일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급여가 상당히 높아서 3년 후 돌아오면 (프랑스에서) 집을 살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국에 있었으면 그것보다 더 벌었을 것 같은 거예요. 더 윤택하게 살고, 돈을 많이 벌려고 프랑스에 온 게 아닌데 그렇게 결정하는 건 다시 한국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더라고요.

원철 : 삶의 질을 보면 프랑스가 더 낫다고 판단한 거죠. 물질적인 욕심은 망망대해에 표류하면서 목마르다고 바닷물 마시는 것과 똑같아요. 잠깐 지나면 더 목마르거든요. 내가 연봉 1억 원이면 괜찮을 것 같죠? 그러면 3억 원 버는 사람들이 부러운 거예요. 3억 원 벌면 10억 원 버는 사람이 부러워지고요. 10억 원 벌면 '나는 뼈 빠지게 일해서 10억 원 버는데 저 놈은 부모가 부자라...' 이렇게 되는 거죠.

리 :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으로 갈 생각은 줄어들어요. 2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가는데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가족이 있긴 한데 공기도 너무 나쁘고 점점 머뭇거리게 돼요. 만나는 사람들도 직장,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우리 정말 행복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신기해해요. 그런 말을 TV 아닌 곳에서 듣기는 어려운 거죠. 제일 중요한 건 '한국에 있었으면 우리 부부 관계가 지금 같을까'예요.

원철 : 제가 '제일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제일 대화를 많이 하는 남편'이라고는 생각해요. 집에 오면 같이 산책하면서 낮에 회사에서 했던 일이나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다 해요.

리 : 한국에서 함께 산 3년은 지금의 깊이, 양과 비교가 안 돼요. 한국에선 하숙 생활도 아닌 같이 침대를 쓰는 룸메이트였죠. 밥도 거의 밖에서 먹었으니까요. (국회)의원실에서 저만 여자니까 살아남아야 한다고 더 일찍 나가고, 더 늦게까지 악착 같이 일했어요. 몸도 축나고 관계도 망가졌죠. 5년 동안 국회에 있으면서 친구 결혼식도 한 번 못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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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그르노블은 196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도시로 알프스 산맥과 맞닿아있다.

가장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결정에 이르자 둘은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큰 달력을 찢은 후 뒷면을 펼쳤다. 원철씨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마지막에 선택한 건 프랑스 경영전문대학원(MBA) 졸업 후 취업이었다. 취업 분야는 기존 IT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헬스케어나 에너지를 목표로 삼았다. 짧은 시간 입학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그는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 유럽 여러 나라 중에 프랑스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원철 : '브렉시트(Brexit)' 전에도 영국은 유럽이라기보다 별개로 보는 게 맞아요.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는 너무 규모가 작고요. 그러면 서유럽 4대국인데 이탈리아, 스페인은 그 나라 젊은이도 취업이 어려웠죠. 독일은 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어요. 근데 프랑스는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 학교를 나오면 내가 들이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독일은 평준화 사회인데, 프랑스는 지독한 학벌 사회예요. MBA 독일인 교수가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HEC(Hautes études commerciales de Paris) 교수라고 하면 프랑스에선 "오~" 그러는데 독일에선 신경도 쓰지 않는다.' 프랑스에선 HEC를 나오면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일에선 그런 메리트가 없고요.

원철씨가 졸업한 HEC는 다수의 프랑스 대기업 CEO를 배출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MBA 중 하나다. 그렇다고 졸업장이 취업을 약속해주는 건 아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 새벽에 일어나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부족한 공부를 채웠고, 공부 외에 다른 이벤트도 적극적으로 기획했다.

한창 '디자인 싱킹'이 유행할 시기였다. 원철씨는 GE, 필립스 같은 여러 글로벌 회사에 연락을 했다. 대부분 무시했지만 간혹 답이 왔다. 그러면 학교 강당에 학생들을 모아서 그 회사가 '크리에티브 리더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참여한 기업 담당자의 머릿속에 '곽원철'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원철 : "너 같은 한국 사람은 처음 봤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대부분 한국, 중국 사람은 공부만 하려고 해요. '내가 능력이 있으면 뽑아주겠지' 생각하지만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뭔가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아요.

헬스케어에 관심 있는 학생 한 명이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같은 회사에 연락한다고 답을 주겠어요? '당신 회사에 관심 있는 HEC MBA학생 스무 명이 방문해서 소개를 듣고 싶다' 이렇게 해야죠. 그러려면 일단 스무 명을 조직해서 돈 모으고, 교통편 알아보고, 방문 일정을 잡는 거예요. 교수 한 명에게 동행을 요청하고요. 그렇게 가면 대부분 받아 주고, 회사에서도 높은 직급의 사람이 응대를 해줘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이런 걸 조직하는데 노력과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나는 따라가서 담당자에게 어필해야지'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숟가락 얹는 나머지 19명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돼요. 그 기업 담당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락한 한 사람만 기억하는 거예요. 그러다 기회가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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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도 '워크홀릭'을 좋아한다

MBA를 마치고 원철씨는 프랑스 에너지 회사인 '슈나이더 일렉트릭'에 6개월 임시직(인턴)으로 채용됐다. 이 기간 동안 2, 3시간밖에 못 자는 날이 많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뽑으면 이건 내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애초에 내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원철씨는 자신이 일했던 전략기획실로 정규 채용됐다. 입사 초기엔 1년 체류증을 받아 매년 갱신하다가, 지금은 블루카드*(Carte bleue européenne)를 받았다. 3년의 블루카드 기한이 지나면 10년 체류증을 신청할 계획이다.

*EU 블루카드
유럽연합(EU) 소속 국가가 고숙련, 고연봉 외국인 근로자를 유치하기 위해 도입한 이민 유도제도. 프랑스는 학력, 연봉 등 자격이 까다로워 블루카드 받기가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 프랑스로 가면서 직무가 IT에서 전략기획으로 바뀌었어요.
원철 : 2009년(한국오라클 근무 당시) 오라클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74억 달러에 인수했어요. 그때 썬이 혼자 살아남지 못하는 건 명약관화했고, IBM의 인수가 예상됐어요. 근데 인수 무산 이틀 후에 오라클이 인수를 발표했어요.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이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지만 74억 달러 인수를 그냥 할 수는 없어요. 수뇌부가 최소한 6개월은 조사했을 거예요. 그걸 오라클 전 세계 직원은 몇 명이나 알고 있었을까요. 한국 오라클 사장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사장도 몰랐을 거예요. 그런 결정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국내 IT업계의 분위기에도 물려 있었고요. 어떤 새 기술이 나오면 반드시 필요해서 하기 보다는 경쟁사가 하니까 그냥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예를 들어 A은행이 차세대 시스템을 만들면 B은행도 따라 하는 거예요. "야 이거 안 했다가 우리가 경쟁사에 쳐지면 너가 책임질거야?"하니까요. 그런 게 견디기 힘들었어요. 저는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해야 하는 건' 못 참아요. 그걸 깨닫는 순간부터 동기부여가 되는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프랑스는 그게 가능한가요?
원철 : 프랑스 사람들은 '왜'를 진짜 많이 따져요. 한국에서 "너 왜 그거 했니"라고 물으면 "다들 그렇게 해서요"라고 하잖아요. 프랑스에서 그건 진짜 멍청한 답이 되는 거예요. 프랑스는 사소한 것이라도 이유가 있어요. 그냥 하라고 해서 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제가 한국에서 40년 가까이 살았지만 어떻게 해도 설명이 안 되는 게 꽤 많거든요. 이건 왜 이럴까. 왜 이런 문제가 있는데 왜 안 바뀔까. 사소하게는 액티브엑스(Active-X) 같은 거요. 전 국민이 다 싫어하지만 안 바뀌잖아요.

근데 프랑스는 다 따지고 보면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사는데 지루하지 않아요. 회사든 일상생활이든 내가 불합리하다고 느끼면서 꾹 참는 건 없어요. 저는 그걸 못 참는 사람이거든요. 회사 일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시켜서 하는 건 없어요. 다 따져서 결정된 것만 하는 거예요. "과연 그럴까? 정말 그래? 진짜야?"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제 취미생활이고 좋아하는데 이젠 직업이 되니까 만족하는 거죠.

- 프랑스 회사는 한국 회사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원철 : 한국에서 오해하는데 프랑스 회사도 직원이 일 많이 하는 걸 좋아해요. 제 팀장도 '워크홀릭'이에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에도 일하고 오후 8시 사무실 문 닫을 때까지 일해요. 그 사람은 집에 가서도 일해요.

휴가 때도 매일 이메일 체크하고 직원들한테 지시해요. 일의 양을 4분의 1로 줄이고 새로운 일을 안 벌릴 뿐 휴가 때도 쉬지 않더라고요. 여기도 그런 사람이 승진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 승부해 볼만해요. 한국에선 모든 사람이 열심히 하거나 최소한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하잖아요. 여기선 척은 안 하거든요.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는 사람이 있고, '난 가족과의 삶이 더 중요해'하는 사람이 있어요. 선택의 문제예요. 한국과 다르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명확하게 부각되는 거죠.

- 다른 건 어때요? 한국 회사 같은 사내정치는 없나요?
원철 : 얼굴 한 번 더 본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 하지만 상사 술자리 따라가고 그런 건 없어요. 전에 동료들이 큰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끝내서 맥주 한 잔 하자고 했는데 정말 맥주 딱 한 잔만 하고 헤어지더라고요

승진은 본인이 요구해야 돼요. 한국 기업에선 '알아서 기다리면 될 텐데 먼저 바란다'고 보잖아요. 유럽은 요구를 안 하면 '원하지 않나 보다'하고 안 줘요. 입사 2, 3년 후 '난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보상이 없는 것 같다'는 얘기를 동료에게 하니까 "너 그거 상사한테 얘기했어? 얘기를 해야 주지 이 사람아."라고 하더라고요. 상사에게 말하고 반년 후에 승진했어요.

- 휴가는 얼마나 쓰세요?
원철 : 1년에 45일 정도 나와요. '워킹데이'로 9주니까 두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죠. 법정 휴가는 25일이고요. 지식 노동자는 '9 to 5'(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로 업무가 끝나기가 쉽지 않으니 초과 근무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 부분을 회사가 인정해서 휴가로 대체해서 주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 많은 휴가를 어떻게 다 쓰지?'했는데 돌이켜 보면 저도 해마다 다 소진했어요. 평상시에는 열심히 일하지만 쉬는 기간 동안에 확실히 쉬는 거죠. 저희 회사에서는 근무 시간에 짬을 내서 개인 볼일 보는 걸 이상하게 생각해요. 은행이나 부동산 등의 볼일로 한두 시간 자리를 비울 일이 생기면 그냥 휴가를 내요. 근무 시간에는 다들 집중해서 일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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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리, 곽원철

프랑스는 절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 한국이 따라가기 어려운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원철 : 프랑스는 나이에 대해서 정말 신경 쓰지 않아요. 프랑스 경제를 총괄했던 에마뉘엘 마크롱(전 경제장관. 대선 출마를 위해 지난 9월 30일 사임)은 1977년생이에요. 회사도 마찬가지예요.

10년 전에 슈나이더 일렉트릭의 매출이 약 10조 원이었어요.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지금 CEO(장파스칼 트리쿠아. Jean-Pascal Tricoire)가 발탁되고 매출이 현재 30조 원으로 올랐어요. 지금 회사에서 이인자도 40대 중반으로 저보다 한 살 많아요. 미국도 이렇지는 않아요. 실리콘밸리는 조금 다르지만, 거대한 제조업 회사인 GE, GM은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사람이 CEO를 해요. 프랑스는 그런 게 결코 없어요.

아랫사람이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내 위로 올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한국에선 위로 올라갈수록 일 안 하고 관리만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능력도 출중하고 일도 더 많이 해요. 상사가 먼저 출근하는 것도 당연해요. 제 아래에도 자기 일만 딱 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올라갈수록 그렇지 않은 거죠.

- 프랑스 문화가 한국 문화와 가장 다른 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원철 : 다양성이요. 한국에선 다들 똑같은 걸 해야 해요. 기준이 있고, 그중에 가장 잘하는 사람을 뽑는 거예요. 그 기준에서 100점 맞은 사람을 뽑아요.

한국에선 1000가구가 딱 똑같은 아파트에서 살아요. 짓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그게 더 경제적이죠. 그리고 '나 말고 999가구가 똑같이 사는구나'하고 안심해요.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그런 걸 정말 싫어해요. 거기서 오는 비효율성을 귀찮아하지 않는 거죠.

우리 회사는 A, B 같은 사람은 있는데 C 같은 사람이 없어. 그러면 C 같은 사람을 뽑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선 남들이 하는 걸 안 하려고 해요. 한국은 남들이 하는 걸 다 해야 하지만요.

저는 여기서 비주류고, 이방인이고, 다양성에 기여하는 사람이에요. 그 점을 '밸류 애드'할 수 있는 곳을 찾은 거예요. 비주류인 나 하나로 인해서 내가 속한 집단의 다양성이 커지거든요. 저도 회사에서 하루하루 나날이 배우고 있어서 정체될 수가 없어요. 제 자체가 이질적이니까요.

예를 들어 A와 B라는 임원이 있다고 합시다. 두 사람 밑에 10명씩 있는데 A는 다 프랑스 사람이에요. B는 미국, 인도, 한국 사람이에요. 그러면 당연히 B가 더 힘이 세죠. 같은 보고를 해도 '글로벌 커버리지'가 가능하니까요. 우리 팀장은 차별이니까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나는 프랑스 사람은 절대 안 뽑는다'고 해요. "내가 프랑스 사람인데 왜 프랑스 사람을 뽑아? 가능하면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해야 다른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이 팀장과 4년째 같이 일하다 보니 이심전심 너무 말이 잘 통하게 됐어요. 팀장이 뭔가 요청했는데 제가 바로 딱 내놨고 결과물에 서로 만족을 하는 거죠. 아 하면 어하고 알아듣는 거죠. 그래서 최근에 '이제 우리가 헤어질 때가 됐구나'라고 서로 얘기하고 동의했어요. 팀장 입장에서도 다른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와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건데 너무 잘 맞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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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속도를 낮추기 위해 직선 도로를 휘어지게 설계했다. 그르노블 시내 도로는 30km 구간이 많다.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2009년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후, 두 사람의 목표는 명확했지만 오랜 기간 알아보고 준비한 건 아니었다. 학기에 맞추기 위해선 반년 만에 준비를 끝내야 했다. 숨 가쁘게 준비해 MBA 입학을 위한 토플, GMAT(경영대학원 입학시험)도 한 번씩 밖에 못 봤다. 프랑스 도착 후엔 생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들이 프랑스에 발을 디딘 8월은 휴가철이라 한 달여 동안 행정 업무는 물론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프랑스어를 못하는 부부는 하나하나 직접 부딪치면서 겨우 집과 차를 구했다. 원철씨는 그 한 달 사이 8kg가 빠졌다.

원철씨의 취업 전까지 아내 리씨는 최대한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5.5유로 닭 한 마리를 사서 살을 다 먹고 뼈를 우려서 칼국수로 사흘을 먹기도 하고, 배추 한 포기를 날짜별로 나눠 배춧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당장 적응하고 생활하느라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2년 동안 여행은 고사하고, 웬만하면 걸어 다니고 머리도 한 번 자르지 않았다. 1년 반의 MBA 과정과 6개월의 인턴 기간을 마치고 원철씨가 취업에 성공한 날도 그랬다. "오늘만큼은 축하하자"고 나갔는데 아는 식당이 없어 결국 맥도널드에서 외식을 했다.

- 생활면에선 한국과 달라진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리 : MBA가 있는 베르사유에서 살았을 때 산책 중인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세 가지였어요. 어떤 차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아이들이 울지 않고, 개가 짖지 않더라고요. 동네마다 다르지만 엄마 혼자 애 셋을 데리고 너무 편안하고 평화롭게 산책하는 건 정말 신기했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전반적으로 얌전해요. 그러다가 중학교 교과과정에 포함된 자기 권리, 자율성을 배우고 나면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하죠. 그때는 누가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아요.

그리고 세금을 많이 내죠. 매년 9월마다 세금신고를 하는데 대략 한 달치 월급을 통째로 내요. 그러다 보니 9, 10, 11월은 거의 죽음의 달이죠. 작년엔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흥분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프랑스에 와서 시험관 시술을 3번 했는데 모두 무료였어요. 두 번 입원했을 때도 한 푼도 안 냈고요. 산책을 할 때 길가에 꽃이 정비되어 있는 걸 보면 '내가 세금으로 이런 환경에 기여하는구나' 생각도 들고요. 한국 살 때는 4대강에 세금이 들어간 것에 분노했던 것에 비하면... 그리고 임신이 확인되면 출산에 대해서 어떤 비용도 들지 않아요.

프랑스에 와서 '드디어 아이를 가질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국회에서 일할 때도 시험관을 했는데 화장실에서 주사를 맞아야 했어요. 나의 모성성에 대해서 아무런 지원받지 못하는 근무 환경이었죠. 그르노블 와서는 일보다 아이 갖는 것에 집중하면서 몸무게 늘리고 건강을 챙겼어요. 한국 떠날 때는 41kg였는데 임신 때까지 48kg로 만들었어요. 만성 편두통도 사라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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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리, 곽원철

- 나이가 있는 이민자들은 향수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데 두 분은 어떠세요?
리 : 그런 분들이 주변에 꽤 있어요. 그래서 돌아간 분도 있고요. 저희는 거꾸로 해요. "한국에 안 들어와?"라고 물으면 "프랑스로 와"라고 초대해요. 같이 먹고 자다 보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돈독해져요. 한국에선 명절 때만 보지만, 여기 오면 한두 달 같이 있다 보니 부모님과도 더 돈독해지고요. 작년 5월부터 한 달에 두세 팀 씩 왔어요. 그리고 지금은 옛날에 비해서 향수병이 덜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스마트폰으로 메신저도 할 수 있고 언제든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저희도 여기서 한국 방송 봐요.

원철 : 어디를 목표로 향한다고 생각해야지 어디를 떠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한국은 짜증 나는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장점도 굉장히 많은 나라예요. 한국을 탈출하고 싶다보다 프랑스를 꼭 가고 싶다가 훨씬 더 성공 확률이 높아요. 종이 한 장 차이지만 달라요. 미국을 가고 싶다. 실리콘밸리를 가고 싶다. 이렇게 구체적일수록 좋죠.

- 만약 저희 같은 인문계 직업군이 프랑스에서 가고 싶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원철 : 프랑스에서의 시작은 학교를 등록하는 게 제일 좋아요. 어학은 조금 비싸지만 전공 석사 과정은 저렴하니 공부하면서 이 사회를 관찰할 수도 있죠. 그리고 프랑스 정부가 인재 확보 차원에서 외국인들의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해요. 6개월에서 1년 창업 준비 자금을 지원하고 비자도 줘요. 프랑스와 한국을 연계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어요.

- 프랑스 이민을 추천하나요?
원철 : 성인 중에 유럽에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유럽 사람들은 개인의 행복과 권리에 과도하게 집착해요. 집단? 그런 거 없어요. 미국은 애국심을 강조하지만 프랑스에선 안 통해요.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국가는 나의 행복을 받쳐주기 위해 존재하는 거죠. 회사도 마찬가지고요. 그냥 묵묵히 시키는 일만 하고 싶은 사람은 안 오는 게 나아요.

대신 지인에겐 '자녀를 유럽으로 보내라'고는 조언해요. 한국 초중고대 교육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 한국 교육은 의미가 없어요. 미국 대학은 좋은데 너무 비싸요. 그렇게까지 돈 내고 희생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고요. 그에 비해 유럽은 싸고 교육의 질이 높아요.

'세계화(Globalization)'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예요. 그런데 미국, 유럽은 차이가 있어요. 미국이 말하는 건 사실 '미국화(Americanization)'인데 유럽이 말하는 건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예요. 유럽에선 독일, 프랑스가 잘 나가도 어느 국가 기준에만 맞추는 게 불가능해요. 그래서 서로 보완하면서 사는 게 익숙한 거죠.

리 : 한국에 계신 분들한테 다양한 문의가 와요. 그분들에게도 기본적인 것만 얘기해요. 어떤 꿈과 어떤 필요에 의해서 왔다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돌아가신 분도 있거든요. 저희가 이렇게 했다고 다른 분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힘든 거고요. 저희가 지인을 초대하는 것도 다양한 삶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예요. 이런 모습을 보여 드리면 '한국에서 살더라도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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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화살표가 있는 곳이 그르노블이다. 구글맵스 캡처

[프랑스]
- 기본정보

o 수도 : 파리(Paris)
o 인구: 6,632만 명(2015년)
o 면적 : 551,695㎢(한반도의 2.5배)
o 종교 : 가톨릭, 무슬림, 개신교, 유대교
o 언어 : 프랑스어
o 화폐 : 유로
출처 : 외교부

- 이민 정보
o 5년 이상 프랑스 내에서 거주, 근무를 증명하면 10년 체류증 신청 가능
o 코트라(KOTRA)에서 '출입국 및 비자제도' 검색
o 워킹홀리데이 정보

글쓴이의 한 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6년 7월 18일부터 1년 세계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민 1~10년 차(미국->중남미->캐나다->호주->아시아) 분 중에 저희 인터뷰 콘셉트에 적합한 분을 알고 계시다면 추천해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눌러주세요.

*작가의 블로그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